G-18. 유대인의 결혼 풍습

유대인의 결혼 풍습

유대인들은 아내를 갖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도 받을 수 없으며, 선행도 쌓이지 않는다고 믿을 뿐만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만일 딸이 이방인과 결혼할 경우 그 딸의 장례식을 치루고 딸이 죽은 것처럼 취급하였습니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유대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유대민족의 전통에서 결혼은 인류를 번성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달성하는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 28)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명령을 따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랍비들은 “부부가 함께 기뻐할 일이라면 토라를 연구하는 것조차 멈추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결혼이 필요하며, 외로움을 달래는 해독제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 18)도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라고 하였고 탈무드도 “아내가 없는 자는 즐거움도 없고, 기쁨도 없고, 행복도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결혼을 하기 전에 약혼서약을 하게 되는데, 약혼 서약은 약혼증서를 주고받음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약혼증서를 주고받은 후에는 법적인 구속력을 갖게 되어 죽음이나 이혼 외에는 결혼할 것이라는 약속을 파기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의 전통에 의하면 결혼하기 1년 전에 약혼증서에 서명하였지만 최근에는 보통 결혼 직전에 약혼증서를 서명하고 교환합니다.

탈무드에는 3가지의 행위로 결혼이 성립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는 동거함으로 결혼이 성립되고, 둘째로는 결혼증서(케투바)를 주고받음으로써 결혼이 성립되고, 세 번째로는 남녀 간에 정표가 되는 물건을 주고받음으로써 결혼이 성립됩니다.

현대의 유태인들은 1950년에 공포된 이스라엘 혼인법에 의하여 결혼을 하게 되는데 결혼식은 반드시 랍비(rabbi)가 집례를 해야 인정됩니다. 그리고 결혼식을 앞둔 신랑은 결혼식 전의 안식일 아침 예배에 토라를 읽습니다. 이때 토라를 읽고 내려오는 신랑에게 사탕이나, 건포도를 뿌리는 풍습이 있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달콤하고 행복하게 살라는 기원이 담겨 있는 풍습입니다.

전통적인 결혼식 관습에 따르면, 사랑하는 두 연인이 결혼을 하기 위해서 우리들의 전통인 상견례와 비슷한 절차를 밟는데, 신랑의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함께 신부의 집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신랑이 될 사람은 약혼반지와 시계나 보석 같은 예물과 지참금을 가지고 방문합니다. 신부의 아버지가 예물과 지참금에 대하여 흡족해 하면 신부의 가족들은 간단한 연회를 베풀어 줍니다. 이제 그 집 온 가족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총각이 떨리는 마음으로 처녀의 잔을 가져다가 포도주를 가득 부어 다시 처녀 앞에 갖다놓고 기다립니다. 만약 처녀가 이 남자와 결혼할 의사가 있으면 그 잔을 들어서 마심으로 허락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고, 그잔을 마시지 않게 된다면 그 남자에게 시집가지 않겠다는 의사표시가 되는 것입니다.

이 남자에게 시집갈 작정을 한 처녀는 잔을 들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마십니다. 그러면 이러한 광경을 보던 모든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기뻐합니다. 결혼 허락을 받은 후 정혼(약혼)을 하게 되는데, 여자의 집을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에 남자는 여자에게 선물을 주고 떠납니다. 그것은 청혼을 받아 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이기도 하며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기억해 달라고 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약혼 기간은 보통 1년에서 2년 정도인 것이 보통입니다.

이 약혼기간 동안 짝을 이루게 될 남자와 여자는 거의 만나지 않지만 각자의 집에서 새로운 가정을 이룰 준비를 하게 되는 기간입니다. 이때부터 남자는 자기 집 옆에 조그마한 신방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신부는 언제 데려오느냐고 묻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는 신랑도 모르고 신부도 모릅니다.신랑의 아버지 외에는 그 때와 시간을 알 수 없습니다. 신랑의 아버지가 결혼 날짜를 정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 동안 신부는 신랑을 맞을 준비를 하고 기다립니다. 신랑이 신부에게 갈 때는 신부 집에 간다고 통보를 안 하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신부는 결혼식에서 입을 하얀 세마포 옷을 준비해서 침대 머리맡에 두고 어느 날이든지 밤에 신랑이 오면 바로 그 옷을 입고 나가 맞이할 마음을 가지고 잠자리에 듭니다.

유대인의 결혼 풍습을 이해하면 예수님께서 떠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이해됩니다. (요 14:18)결혼식은 대개 밤에 치러지기 때문에 들러리들이 신랑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 기다리다 지쳐 졸다가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면 열 처녀의 비유에서 나오는 다섯 처녀처럼 되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는 신부 집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신랑의 집에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신랑이 신부 집으로 오는 것은 혼인 예식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부를 신랑의 집으로 데리고 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신랑 집에서 혼인 잔치 준비를 다 갖추어 놓은 다음 신부를 데리러 신랑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결혼식에서는 결혼행렬도 중요합니다. 결혼행렬은 신부의 집에서 신랑과 신부, 두 사람이 살 새 집으로 향하게 되는 행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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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파(Huppah, wedding arch)”는 유대인 결혼식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써 마당이나 회관 등에 4 개의 기둥을 세우고 사방 2 m 가량의 붉은 융단 가장자리를 엮어 네 귀퉁이에 고정시켜 세웁니다.

후파는 큰 천(비단, 공단 또는 벨벳)을 장식하여 네 개의 기둥으로 받친 결혼식용 천막을 말합니다. 후파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의 천막생활을 의미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실제로 베두인들은 지금도 신랑 신부를 위하여 특별히 제작된 천막을 치는 관습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후파가 탈무드 시대 결혼식 때 신랑 신부에게 씌워 주던 월계관을 상징한다고 주장하는데 후파(chupa)가 ‘화환으로 덮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여 신빙성이 있기도 합니다.

다른 학자들은 약혼 기간을 끝낸 신랑이 신부와 동거함으로써 마침내 결혼을 완성시키는 방, “신랑 집의 방(신방)”을 의미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후파를 세우는 것은 중세시대에 회당 안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면서부터 예식화 되었습니다. 결혼식은 반드시 이 후파 아래에서 이뤄져야 하며, 후파의 네 기둥은 신랑 신부의 가까운 가족들만이 들 수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신랑의 친구들이 장대를 붙잡기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대부터 야외에서 결혼식을 치렀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별들을 바라보라고 하시면서 하늘의 별만큼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데서 이러한 관습이 유래되었습니다. (창 22:17) 그 후 랍비의 진행 아래 결혼식이 시작되는데, 유대인의 결혼은 오직 랍비만이 주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결혼식은 두 사람의 증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졌는데 신랑 신부의 가족이나 친척은 증인으로 세울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후파에 들어가기 전 신랑은 신부의 얼굴에 베일을 덮어줍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신부를 가리다(이디시어 badekn die kalla)”라는 오래된 관습이 있습니다. 이 말은 면사포로 신부의 얼굴을 가린다는 말로써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 신부가 아직 분장실에 있을 때 신랑이 신부에게 와서 얼굴을 면사포로 덮어 주는 것입니다.

이때 랍비 또는 기도문 독창자는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찌어다.”(창세기 24: 60)라고 외칩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은 시종 엘리에셀을 하란으로 보내어 이삭의 아내가 될 처녀를 데려 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에셀이 리브가를 데리고 오자 이삭은 리브가를 맞으러 나왔고, 이때 리브가는 면사포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창 24:65)

동양의 유대인들은 투명하지 않은 천으로 면사포를 만들었으며, 신부가 천막으로 이동할 때 앞이 보이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따라서 신랑의 안내를 받아 식장으로 갈 수 밖에 없었으며, 이것은 곧 “이 남자를 온전히 믿고 신뢰하겠다.”는 고백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리고 베일을 씌워주는 행위는 신랑이 관심을 갖는 것은 언젠가 사라질 외모가 아니라 내적인 아름다운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신랑은 천막(후파) 아래서 순결함과 죄의 용서를 상징하는 키텔(kittel)이라는 흰 옷을 예복으로 입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 의하면 속죄일에 회당에서 키텔을 입었고, 유월절 밤 축제 때에도 집에서 키텔(kittel)을  입었었는데 키텔은 정결함을 상징하는 흰 옷으로서 지금도 많은 유대인들이 이 풍습을 지키고 있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후파가 있는 곳에 도착하면 신부가 신랑의 주위를 일곱 바퀴 돕니다. 신부가 결혼식에서 신랑 주위를 도는 이유는 악령이 신혼부부가 행복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고 믿는 데서 생겨난 전통입니다.신부가 신랑 주위를 일곱 번 또는 어떤 공동체의 경우에는 세 번씩 돕니다.  그렇게 하면 신랑을 공격하려던 악령들을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악마는 원을 뚫지 못한다). 군사들이 왕을 둘러싸고 보호하듯이 신랑을 왕처럼 보호하는 개념입니다.

신랑 주위를 세 번 도는 이유는 (호세아 2: 19~20)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즉 신랑을 상징하는 하나님이 신부를 상징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내가 너를 나의 영원한 아내로 맞아들이겠다. 너를 정의와 공평으로 대하고 너에게 사랑과 긍휼을 보여 주겠다. 내가 진실함으로 너를 아내로 맞아들이겠다. 그러면 너도 내가 여호와임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때에 “장가간다.”는 표현을 세 번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일곱 번 도는 이유는 7 이라는 숫자가 신성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은 칠일이고, 안식일은 한 주의 일곱 번째 날입니다. 성전시대에는 초막절의 마지막 날을 큰 구원이 있었던 날이라고 하는 호샤나 라바(Hoshana Rabba)이며 그때에는 제단 주위를 일곱 번 돌았던 관습에 따른 것입니다.

신부는 다른 모든 남성과 자신의 가문을 모두 내려놓고 이제 온전히 그리고 오로지 신랑과 하나가 되어 연합함을 의미하는 예식으로 후파(Huppah) 안으로 들어갑니다. 후파 안으로 들어간 신부는 신랑의 오른쪽에 서있게 됩니다.  (시편 45: 10)에 보면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 왕의 우편에 서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신부는 신랑의 오른편에 서게 되는데.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신부는 왕비로, 신랑은 왕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본래 신랑이 신부를 “얻는” 사업상의 거래로 생각되어졌습니다. 따라서 신랑은 거래가 성사되었다는 증표로 탈무드 시대의 가장 작은 화폐 단위인 1 페루타(peruta) 또는 그 이상의 은화 또는 금화를 주어야 했습니다. 예멘의 유대인들은 지금도 결혼식 중에 신랑이 신부에게  “보라. 그대는 이 동전과 함께 이제는 내 것이다.”라고 말을 하면서 동전을 건네는 관습이 있습니다. 요사이에 이 돈은 반지로 대체되었는데,아마도 로마의 문화에 영향을 받아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으로 보여 지는 관습입니다.

결혼식이 거행되는 가운데 신랑은 신부에게 반지를 끼워주는데 이 반지(슐라못 반지, 온전한 반지)에는 보석을 박거나 무늬를 새기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반지에 흠집을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는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반지는 가격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이아몬드나 루비 또는 장식이 있는 반지는 일반적으로 가격을 쉽게 정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보석이 있거나 장식이 되어 있는 반지를 주면 순진한 신부는 굉장히 가치 있는 물건을 받은 줄로 오해할 소지가 있으므로 유대교에서는 단순하고 간소한 반지를 사용하여 신부를 보호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을 뮤지컬로 표현한 영화 “Fiddler on the Roof”에서 보면, 신부의 어머니가 오른쪽 약지(Ring finger)에 반지를 끼고 있다가 큰딸을 시집보낼 때 반지를 그녀의 검지(index finger)로 옮겨 끼는 장면이 나옵니다.

유대인 남자가 결혼을 할 때 신부의 오른 손 검지(집게손가락, index finger)에 반지를 끼워줍니다. 이러한 유대인 관습은 15 세기에 독일계 랍비인 모세 민츠(Moshe Mintz)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오른손 집게손가락은 무언가를 가리킬 때 사용하므로 눈에 가장 잘 띄는 손가락입니다. 이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면 결혼식에 참석한 증인들이 신랑이 신부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고 있음을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혼식이 끝나면 신부는 반지를 왼손의 네 번째 손가락(약지, ring finger)으로 옮겨 끼게 됩니다. 왼손 약지에 끼는 것은 고대로부터 약지와 심장의 핏줄이 바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기독교도들은 그들의 관습에 의하여 결혼식 때에 결혼반지를 약지(ring finger)에 끼었지만 유대인들은 그들의 관습에 의하여 결혼식 때에 신부의 검지(index finger)에 결혼반지를 끼워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의 관습에 의하면 반지를 끼워주는 의식에서 신랑이 신부에게 끼워줄 뿐 신부가 신랑에게 반지를 끼워주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결혼증서도 오직 신랑이 신부에게 주었을 뿐이었습니다.

결혼식에서 반지를 끼워주는 관습은 유럽으로 전해지게 되었고 다시 유럽에서 미국으로 전해지게 되었는데 20 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결혼반지는 결혼한 여성들만 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신부도 신랑에게 반지를 끼워 주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신랑도 그 반지를 끼기를 원하였습니다.

신랑은 “케투바(Ketubah)”라고 하는 결혼 증서에 서명을 하고 낭독을 합니다. 케투바(유대인 결혼 계약서)는 시므온 벤 쉐탁(Simeon ben Shetach)이 BC 80년에 작성하여 만들어낸 결혼증명서로서 당시 모든 법률 문서들이 그랬듯이 대중이 사용하는 아람어로 작성되었습니다.

Ketubah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Ketubah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 문서에는 신랑이 죽거나 이혼하게 될 경우에 신랑이 신부에게 져야 할 의무들을 자세히 나열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신부가 신랑에게 져야 할 의무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이 케투바는 여성의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였던 고대 유대 사회에서 신부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써 신부에 대한 신랑의 의무들을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케투바 맨 위에는 주로 왕관이 그려져 있는데 거기에는 “현숙한 여인은 남편의 왕관”이라고 히브리어로 쓰여 있습니다. 양쪽으로는 신랑과 신부의 그림이 있고 신랑신부 아래로 12개의 별자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 결혼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게 되는데, 이것이 없으면 결혼 자체가 아예 성립이 되지 않을 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신부는 이 케투바(Ketubah, 결혼 증서)를 평생 동안 간직하여야 했습니다.

옛날에는 결혼을 하려면 신부를 데려오기 위하여 신랑이 지참금을 내야했는데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으면 결혼하기도 어려웠습니다. BC 1세기 랍비 시몬 벤 쉐타흐는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하여 신랑이 지불해야할 금액을 결혼계약서에 기록하는 것으로 대신하도록 하였습니다. 실제로는 돈(지참금)을 지불하지 않지만 그렇게 한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결혼계약서는 여성을 위한 제도입니다. 이 케투바(Kethubah, 결혼계약서)는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혼인에 앞서 신부에게 장래의 몇 가지 권리를 보증하여 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종교법은 남자가 언제, 어떤 이유에서건 아내와 이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케투바는 고대에 보장 받지 못하였던 여성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남편이 이혼의 대가를 비싸게 지불하도록 하려는 목적에서 작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만일 남편이 아내와 이혼을 하거나 아내를 내쫓으려면 결혼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던 금액을 남편이 아내에게 지불해야만 하였습니다. 결혼할 때는 지참금을 지불하지 못하였어도 결혼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었지만 이혼을 하려면 큰 액수를 지불해야 하는 이 규정은 힘이 없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결혼 예식이 끝난 후, 두 개의 잔으로 서로 축복을 한 후에 포도주를 마십니다. 유대인 전통에 의하면, 두 개의 잔은 각각 부부가 살면서 경험하게 될 기쁨과 슬픔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부부가 두 개의 잔으로 마시는 것은 동등한 입장에서 인생의 어려운 길을 함께 하겠다는 표현입니다.

결혼식 발로 유리잔 깨기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ê²°í˜¼ì‹ 발로 유리잔 깨기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신랑이 후파(Huppah)에서 (시편 137:5)의 말씀을 암송하면서 흰 보자기로 싼 유리잔을 오른 발로 밟아 깨뜨립니다. 신랑이 결혼식 마지막에 유리잔을 깨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의 설 가운데 공통적인 것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 깨뜨린다.”는 것입니다.

가장 일반적이고 잘 알려진 설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것을 한탄하고 슬퍼하는 마음을 유리잔을 깨뜨려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인 결혼 날에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것을 기억하고 과거 선조들의 힘겨웠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깨어진 유리를 복구할 수 없듯이 결혼도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맺어주시는 가정은 그분이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는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설은 유리잔이 깨질 때의 소리를 경고 메시지 즉, 결혼식 같이 기쁜 순간에도 냉정한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인생에는 결코 기쁜 날만 있는 것이 아니며, 결혼식 날의 행복도 무한정 계속되지는 않으며, 언젠가는 겪게 될 어려움들을 젊은 날에 예비해야 한다는 경고의 소리라는 것입니다.이와 같은 해석은 위대한 학자 랍비나(Rabbina)가 그 아들의 즐거운 결혼식에서 갑자기 비싼 흰 도자기를 깨뜨려 하객들을 놀라게 했다는 탈무드 이야기 때문에 생겨난 해석입니다.

이 풍습이 계속 이어져 온 진짜 이유는 미신 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중세시대에는 관습적으로 일곱 개의 결혼을 위한 축복 문이 낭독되면 신랑이 먼저 포도주를 맛보고 신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신부도 그 포도주의 맛을 보고 나면 신랑이 북쪽 벽을 향해서 잔을 던졌는데,  유대교의 미신적인 전승에 의하면 악령들은 북쪽에서 오기 때문에 북쪽 벽을 향하여 던진 것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악령과 귀신을 물리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유리잔을 깨는 것과 같은 큰 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유대교 신비 철학 카발라(kabbala)도 비슷하게 해석하였는데, 악마들은 새로 맺어지는 부부가 행복해지는 것을 방해하는 일에 여념이 없다가 갑자기 유리잔이 깨어지는 소리를 듣게 되면 그것으로 만족하여 더 이상 방해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벽에 유리잔을 던지는 풍습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근래에는 마시던 포도주잔을 던지지 않고 따로 잔을 준비해 두었다가 발로 밟아 깨뜨리는 풍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소리가 악령의 세력을 막는다고 믿었습니다. 교회의 종소리도 원래는 악령들을 물리치기 위해 울렸으며 새로 만든 배를 진수(進水)시킬 때에도 선체에서 병을 깨뜨려 소리를 내었던 풍습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유리잔을 발로 밟아 깨뜨림과 동시에 하객들은 함성을 지르며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축하해주는 사람들이 “마잘 토브(mazal tov)” 또는 “시만 토브(siman tov)”라고 외칩니다. 중세시대부터 결혼식이 끝날 때 사람들은 신랑과 신부를 축하하면서 프랑스의 아시케나지 유대인들은  “마잘 토브”, 스페인의 세파르디 유대인들은 “시만 토브”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축하해 주었습니다.

성서시대와 탈무드 시대에 “마잘(mazal)”이라는 단어는 12궁 별자리 중의 하나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별의 위치에 따라 사람의 운명이 달라진다고 믿었기 때문에 “좋은 별”이라는 뜻을 가진 “마잘 토브”를 축하하여 주면서 외친 것입니다. 이 말은 후에 “좋은 행운”이라는 뜻도 갖게 되었습니다. “시만 토브”는 “좋은 징조”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 말은 탈무드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스페인의 세파르디 유대인들은 축하하는 인사로 이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비로소 신랑과 신부가 이제 부부가 된 것이 선언되고 신랑은 신부에게 키스를 한 후 본격적으로 잔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결혼식이 끝날 때 축하객들은 신랑 신부에게 쌀과 견과류를 던집니다. 쌀과 견과류는 일부 문화권에서 다산의 상징으로 이용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결혼식 하객들은 (창세기 1: 28)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쌀과 견과류를 신혼부부에게 던지는 것입니다.

결혼을 할 때 신부는 신랑에게 탈릿(기도 숄)을 선물합니다. 신부가 신랑에게 “탈릿(남자들이 기도할 때 쓰는 숄)”을 선물하는 풍습은 성경의 두 구절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생겨났습니다. (신명기 22: 12)에 보면 “입는 겉옷 네 귀에 술을 만들지니라.”라는 구절이 있는데, 탈릿은 이 구절에 근거하여 생겨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구절에 “누구든지 아내를 취하여”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신부가 신랑에게 탈릿을 주는 것은 좋은 일로 믿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탈무드 시대에는 기도할 때 결혼한 남자들은 탈릿을 머리 위로 덮어 씀으로 결혼 여부를 표시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이러한 내용이 확대되어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아예 탈릿을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러한 풍습은 여러 정통파 유대인들 사이에 지켜지고 있는 풍습입니다.

그런가하면 탈릿을 후파(chupa)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전통은 17세기 독일과 프랑스에서 신랑이 자기의 탈릿을 신부의 머리 위에 펼쳐 보임으로써 앞으로 신부를 잘 보호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였기 때문에 여기에서 탈릿을 후파로 사용하는 관습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독일계 유대인들은 이 풍습이 (에스겔서 16: 8)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는데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라는 성경 구절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프랑스계 유대인들은 (룻기 3: 9)에서 룻이 보아스에게 한 고백 즉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에서 이러한 관습이 생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 이스라엘에서 군인이 결혼을 할 때는 탈릿을 네 개의 라이플 총으로 받쳐 후파를 만들기도 합니다.

현재의 이스라엘 결혼식은 화려하게 치러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신랑은 흰 남방과 검은색 바지를 입고 신부의 의상은 수수한 하얀 드레스를 입어서 검소하게 차려입고 결혼 예식을 치릅니다. 신랑의 친구들과 하객들도 평범하고 검소하게 차려입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어떤 정통파 유대인들은 결혼하기 가장 좋은 날로 화요일을 꼽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의 기록에 의한 것인데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셋째 날에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이 두 번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창 1:10-12). 한 주의 세 번째 날은 화요일입니다.

어떤 신랑 신부는 결혼이라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면서 금식하고 기도하는 전통을 따릅니다. 이들은 지난날의 죄를 회개하면서 금식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탈무드에 보면 왕이나 왕자, 그리고 신랑의 죄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날에 용서된다는 전승에 의하여 결혼식 날에 금식하는 관습이 생긴 것으로 보여 집니다.

일반적으로 신랑과 신부가 함께 금식을 하지만, 때로는 신랑만 금식하는 공동체도 있습니다. 신랑이 금식하지 않으면 친구들과 함께 혼전 축제에서 술에 취하여 결혼식을 제대로 마치지 못할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우, 신부 친구들이 신부에게 술을 권할 가능성은 낮으므로 신부는 금식하지 않아도 됩니다. 결혼 예식은 밤에 열리고, 첫 별이 보일 때쯤 금식도 끝나게 됩니다.

남자가 결혼을 할 신부의 이름이 자신의 어머니의 이름과 같을 경우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세페르 하시딤(Sefer Chasidim)”을 쓴 랍비 예후다 하카시드(1150-1217)는 어떤 남자가 자기 어머니와 이름이 같은 여자와 결혼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즉 남자가 자기 부인의 이름을 부르는데 엉뚱하게도 자기 어머니가 대답하는 부끄러운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유대인의 전통에서 볼 때 아들이 부모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과 오순절 사이에 결혼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유월절과 오순절 사이의 7 주간은 애도 기간이므로 결혼을 하는 것이 금지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한 가지 설은 민속학을 연구하는 학생들이 주장하는 것인데, 세피라(유월절과 오순절 사이의 7주) 기간이 5월 중에 있는데, 로마인들이 5월에 결혼을 하면 안 된다는 미신을 믿고 있었다는 것 때문입니다. 로마인들은 5월에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이 세상으로 돌아와 살아있는 사람들을 괴롭힌다고 믿었습니다.

현대 학자들이 설명하는 주장에 따르면, AD 134년 혹은 135년의 유월절과 오순절 사이에  바르 코크바(Bar Kochba) 군사들이 유대 땅을 차지하고 있던 로마군을 상대로 반란전쟁이 일어났을 때 바르 코크바의 군사들의 대다수가 랍비 아키바의 제자들이었는데, 그들은 이 전쟁에서 패배하여(탈무드는 전염병 때문이라고 한다.)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던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7주간은 애도의 기간이므로 따라서 결혼도 금지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피라의 7주간 중에서 애도 기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제 33일절(라그 브 오메르, Lag B’Omer), 이야르월의 초생 달이 뜨는 날, 시완월의 첫 달이 뜨는 날부터 오순절까지는 모든 공동체들이 결혼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또 신년(로쉬 하샤나)과 속죄일(욤 키푸르) 사이에 결혼을 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지만, 전통적으로 이 기간에는 결혼을 잘 하지 않습니다. 신년과 속죄일 사이의 10일 동안은 엄숙한 자기반성의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우울한 기간에 결혼식 같은 축복의 행사를 가진다는 것은 잘 어울리지 않으므로 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해마다 여름에 해당하는 담무스(히브리어 Tamuz, 양력 6-7월 해당)월 17일부터 압(히브리어 Av, 양력 7-8월 해당)월 9일까지의 3주간은 결혼이 금지됩니다. 그 이유는 BC 586년, 이 기간에 예루살렘 성벽이 바벨론에 의해 무너졌고 성전도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참한 일들을 기념하기 위해 ‘티샤 브아브(Tisha B’Av)’ 이전의 3주간은 애도 기간으로 지켜집니다.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에서 돌아 와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친구와 가족들이 신혼집 앞에 모여 있다가 신혼부부에게 빵을 건네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앞으로 이들에게 양식이 부족하지 않기를 축복하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유대교는 이혼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랍비들은 탈무드에서 결혼이 신성한 계약인 반면, 이혼은 부정한 행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서의 (말라기 2:14~15)에는 “그러면서 왜 제물을 받지 않으십니까? 라고 물었다. 그것은 네가 젊어서 결혼한 네 아내와 어떻게 지냈는지 여호와께서 다 보셨기 때문이다. 그녀는 네 동반자이며 언약으로 맺어진 네 아내인데도 너는 네 아내와 맺은 약속을 어겼다. 여호와께서는 남편과 아내를 만드시고 둘이 한 몸과 영이 되어 하나님의 것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께 성실한 자녀를 낳기를 바라셨다. 그러므로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가 젊어서 결혼한 아내와 맺은 언약을 어기지 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아내와 이혼하면 제단(하나님)도 눈물을 흘린다.”고 하는 산헤드린의 기록도 이혼을 부정한 행위로 보는 원인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신명기 24: 1)에 보면, 남자가 아내와 이혼할 경우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남편과 이혼하는 경우에 대한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성서의 구절을 근거로 하여 남자는 이혼을 제안할 수 있으며, 아내의 동의가 없어도 이혼이 성립된다는 율법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약 1,000년 전에 존경받던 랍비 라베누(Rabbenu Gershom ben Yehuda, 965-1028)는, 아내의 동의 없이는 이혼을 할 수 없도록 율법을 바꾸었으며, 유럽의 유대인 사회는 의무적으로 변경된 결정사항(takana)을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의 종교법정은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경우, 아내의 이혼 요청을 받아들여 남편에게 이혼을 승낙하도록 강요할 권리가 있게 되었습니다. 마땅한 이유란 남편이 부부관계를 거부하거나, 생활비를 충분히 주지 않거나, 아내에게 불성실하거나,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견딜 수 없는 병(나병 등)이 있을 경우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이혼할 때 “겟(get)”이라는 문서를 발행하고 서로 교환합니다. “겟(get)”은 “이혼 서류”의 히브리어 표현인데 “법원이 발행한 영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결혼을 남편과 아내가 법적인 계약을 통해 이룬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 계약을 파기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법적인 영장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겟(이혼 서류)”은 반드시 손으로 써야 했습니다. 이러한 관습은 (신명기 24: 1)에 나오는 대로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라는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랍비들은, “겟”은 서기관이 손으로 쓴 것이어야 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결혼 서류인 “케투바(ketuba)”가 처음에는 손으로 쓴 서류였으므로 이를 무효화시키기 위해서도 손으로 쓴 다른 서류가 필요하다는 해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서류(겟)는 작성할 때와 전달할 때에 반드시 목격자(증인)가 있어야 합니다.

“겟(이혼 서류)”를 작성하고 나면 몇 조각으로 자르는데, 이러한 관습은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리던 시대(AD 117년-138년)에 시작되었던 관습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모든 법적인 권한을 로마에 빼앗긴 상태였기 때문에 유대 법정은 비밀리에 일을 해야 했으며, 만약 로마 당국에 발각되면 유대인들은 “잘랐기 때문에 법적 효력이 없는 것”으로 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편으로부터 잘린 “겟”을 받은 아내는 그것을 유대 법정에 돌려주어 보관하게 하였으며, 유대 법정은 아내에게 이혼을 입증하는 서류를 새로이 만들어 주었습니다.

개혁파 유대인들은 “겟(get)”은 법적인 이혼 서류로서 민사상의 이혼 서류가 아니므로 오히려 민사법에 의해서 이혼만 하고 “겟(get)”은 발행하지 않아도 재혼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더 이상 “겟(get)”을 발행하지도 않아도 이혼이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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