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

시작과 끝은 다릅니다. 시작이 좋다고 해서 끝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시작이 풍요롭다고 해서 끝까지 그 풍요로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도 있습니다. 약하게 태어났지만 건강하고 힘있는 운동선수들도 있습니다. 가난했지만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재벌이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시작이 미약함을 상처로 품고 있습니다. 난 어려서부터 아팠어.. 가난했어.. 사랑을 받지 못했어.. 그래서 지금의 현실을 운명이라 하고 이기려 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끝을 실패해서 상처가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사고, 실패, 이혼.. 이것도 운명 탓을 해 버립니다. 운명이라 말하고 속에는 상처로 남아 쓴뿌리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이렇게 설명하신 적이 있습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계 21:13). 말씀의 의미는 시작을 한것을 끝까지 책임지시겠다는 뜻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신 분이 그 주인의 책임을 끝까지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나를 사랑하신 분이, 내가 주님께로 멀어졌다 할지라도 끝까지 그 사랑을 지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이고, 또 그것이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입니다.

우리의 상처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괴로움과 아픔이 무엇입니까? 처음과 지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참 좋았는데 지금을 망쳐버려 좋았던 시작마저 저주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시작보다 끝이 좋아야 합니다. 끝이 좋아야 시작이 좋은 것이 됩니다. 끝이 좋지 않으면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 후회합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인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교우라는 공동체로, 친구로.. 그리고 그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라고 선포하셨는데.. 그만 내 감정으로, 상처로, 우리는 종이 찢듯이 막 찢고, 구기고 버렸습니다.

알파요 오메가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기억합시다. 아프지만, 힘들지만, 이것을 이겨내는 것이 신앙입니다. 상처로 품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사랑을 지키는 것이 신앙입니다. 지금 이 칼럼을 읽는 것은 내가 교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작보다 끝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아는 것입니다.

상대가 아파서 그렇습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해서.. 예수님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분이 말씀이 내 감정 밑에 깔려버려서…그것이 치매이든, 아픔이든, 미성숙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래서 나는 그것이 상처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나에게는 이 아픔이 끝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잘 다스려 다시 시작을 축복하고 시작보다 더 좋은 끝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 호흡을 주신 분의 뜻이니까.. 나는 할 수 있습니다. 하겠습니다. 순종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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