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월 둘째 주

요양원에 계시는 아버지를 뵙고 왔습니다. 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계십니다. 마음을 졸였습니다. 나를 알아보실까.. 간호사의 도움으로 휠체어를 타고 나오셨습니다. 아버지.. 무릎을 꿇고 눈을 맞추었습니다. 저를 보는 순간 눈동자가 확대되었습니다. 누구시더라… 그거 있잖아… 더듬거리며 눈을 맞추지 못하고 요양원을 떠나는 시간까지 저의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셨습니다. 정말인지, 아님 저를 위로하려 하는지, 간호사의 말이 미국에 있는 아들이 보고 싶다고 가끔씩 혼잣말을 하셨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아들이 앞에 있는데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아득한 표정으로만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원장의 말이, 치매는 뭉쳐있는 기억이 여러 조각으로 쪼개지고 있다고 설명을 해줍니다. 그리고 설명은 이어집니다. 치매 초기에는 기억력이 감퇴하고 언어 능력이 저하 되기 시작하지요. 그래서 대화를 나눌 때 고유 명사 대신 대명사를 사용하는 비율이 급격히 높아지죠. 치매라는 병은 환자의 기억 속에서 가족과 주변 사람의 이름을 가장 먼저 지워버립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입술에서 내 이름이 지워지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습니다. 세월은 우리를 에워싼 모든 것을 허물어 버립니다. 살아가는 일은 마치 서서히 사라지는 일인 것만 같습니다.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은 그리움을 낳습니다. 그리움의 활동 반경이 조금씩 커집니다.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어머니 몰래 눈물을 떨굽니다. 그렇게라도 그리움을 쏟아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기억도 녹아 흘러내리는 걸까요.. 아님 머릿속에 안개가 자욱해지는 것일까요.. 그 안개 속에서 말을 던졌습니다. 훈이 가정 잘 살고 있습니다. 이레도 하은이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며느리도 병원 잘 운영하고, 아이들 잘 키우고 있습니다. 하은교회 건강하게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뉴질랜드 준이네 가정도 모두 건강하게 잘 지냅니다.

던져진 말이 조각배가 되어 흘러 갔으면 좋겠습니다. 파도가 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의 기억 속에 닿아 조금이라도 기억이 떠올랐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안수해 드렸습니다. 가족의 이름은 잊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잊지 않으시기를…
안식월 2주를 이렇게 보냈습니다. 이제 1주 보내고 뉴욕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추워졌다지요.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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