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4. 갈릴리 지방 (이스라엘의 북부 지방)

갈릴리 지방

갈릴리 지방은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하여 북서쪽 지역과 남서쪽 지역을 말합니다.
갈릴리 지방의 북쪽으로는 페니키아 지방이 있고, 동쪽으로는 골란 고원지대와 시리아 국경 지대가 있습니다.

갈릴리 지방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은 남쪽에 위치한 사마리아와 유대 지방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과 비교하여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던 지역입니다. 갈릴리 지방은 예수님이 자라고 성장하였던 나사렛 동네가 있는 곳이고,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에 주로 많이 사역하였던 곳이었으며, 그의 제자들 대부분이 이 갈릴리 지방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지중해 바다보다 약 200 m(700 ft)정도 낮은 곳에 있는 호수이며, 그 모양이 하프(히브리어로 키노르, Kinor)와 비슷하게      생겨서 이 호수를 “키네사렛 호수”라고 불렀습니다.

이곳은 수산업이 발달되어 있었고 가버나움, 게네사렛, 디베랴, 막달라, 거라사, 등 15개나 되는 부두가 갈릴리 호수 변에 건설되어 있었으며 고기잡이배는 물론 갈릴리 호수를 건너 동서남북으로 왕래하던 배들이 갈릴리 호수 주변의 도시를 연결해 주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호수 주변은 예수님의 발자취로 가득한 곳입니다. 산상수훈을 말씀하셨던 곳, 제자들을 부르셨던 곳과, 베드로에게 사도권을 주신 곳, 오병이어 기적과 같은 수많은 기적들을 보여주셨던 곳,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던 곳, 귀신들린 여인을 고쳐 주셨던 곳, 한센병 환자도 고쳐주신 곳,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을 찾아오신 곳, 등이 갈릴리 호수 주변에 있습니다.

19세기 초, 갈릴리를 탐험하였던 고고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사역하셨던 갈릴리 주변에서 예수님의 흔적을 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계속하여 왔습니다. 그 성과로서 고기 배를 정박시킬 수 있는 선착장이었던 검은 색의 기초돌 무더기들과 선착장으로 가는 도로와 방파제와 닷, 그리고 생선의 무게를 다는 저울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역사가 요세프스의 기록과 탈무드와 같은 랍비들의 문헌에 의하면, 예수 시대에 갈릴리 호수에는 수 백 척의 크고 작은 고깃배들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막달라 마을에는 많은 배를 만드는 곳과 목재를 공급하였던 곳도 있었다고 합니다.

막달라에 있었던 선착장의 유적은 프란체스칸 수도사들에 의해서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1 세기의 건축물 유적과 광장의 유적지도 발견하였습니다. 이 마을의 한 집터에서는 1세기 당시의 배 모양을 모자이크한 바닥도 발굴되었습니다. 갈릴리의 작은 배들을 정박할 수 있는 선착장의 돌무더기가 1970년대에 거라사(Kursi)지방에서 발굴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선착장은 우기에는 물에 잠겨 있어서 볼 수 없었지만 건기인 여름이 되면 볼 수 있습니다.

1989년과 1991년에 있었던 심한 가뭄으로 인하여 갈릴리 바다의 수위가 크게 낮아지면서 더 많은 선착장의 유적들이 발굴되었는데, 그 중에는 티베리아스(Tiberias)도시의 선착자도 새롭게 발견되었습니다. (요 6:23)에 의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기 위하여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 디베랴로 왔다가 그곳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아서 다시 가버나움으로 갔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릴리라는 말에는 “둥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 주변을 갈릴리 지방이라고 부르는데, 이 지역을 상부 갈릴리, 하부 갈릴리, 그리고 서부 갈릴리로 다시 나눕니다. 갈릴리 지방은 현대 이스라엘 땅의 1/3의 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최북단에 있는 헤르몬 산으로부터 시작하여 헤르몬 산자락에 있는 단(Tel Dan)으로부터 서쪽으로는 갈멜 산과 남쪽으로는 길보아 산의 능선, 그리고 동쪽으로는 요단강까지를 말합니다.

대부분의 갈릴리 지방은 돌이 많은 해발 500 ~ 700 m의 산지들이며, 그리 높지 않은 기온과 많은 강수량으로 인하여 우기에는 수많은 꽃들이 만발하며 초목이 무성하여 철새들의 서식지로도 유명합니다.

구약 성서에 의하면, 솔로몬 왕이 성전 건축을 도와주었던 두로의 왕 히람에게 납달리 산간지방 중에서 상부에 있었던 평야 지역(상부 갈릴리 지역)을 선물로 주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왕상 9장)(이사야 9장)에서는 이곳을 “갈릴 하고임(이방인의 갈릴리)”라고 불렀던 지방입니다.

헬라의 셀루시드 왕국이 유다 마카비 혁명에 의하여 몰락된 시대에 이 지역은 유대 독립운동의 본거지가 되었으며 이 지역에 살고 있었던 많은 이방인들이 유대인으로 개종하기도 하였던 곳입니다.

로마 시대에는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가 예수님이 사역하시던 시대에 이곳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AD 638년 아랍 이슬람의 칼리프가 갈릴리 지방을 정복한 후부터 이곳 갈릴리 지방은 요르단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군 시대인 AD 11세기에는 “갈릴리 공국”으로 이스라엘의 가장 영향력 있던 영주가 이곳을 다스리기도 하였습니다.

오스만 터키 제국이 이곳을 다스리던 18세기에는 갈릴리의 통치자 드하레크 엘 오마르가 갈릴리 지방을 튼튼한 성벽을 둘러쌓았는데 지금도 디베랴스에는 당시의 성벽 유적을 볼 수 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아랍 사람들이 주로 많이 살고 있었던 이곳 갈릴리 지방에는 드르스 족과 유대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하게 되면서 이 갈릴리의 모든 지역은 이스라엘의 영토가 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주위의 아랍 국가로부터 수많은 공격을 받기도 하였던 지역입니다.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제자들을 만난 곳이 “타브가”라는 곳인데 이곳은 갈릴리 호수로 물이 들어오는 곳이라서 다른 곳보다 더 따뜻하였기 때문에 “베드로 물고기”라고 불리는 생선이 봄과 겨울철에 많이 잡혔던 곳입니다.
그들이 이곳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던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셨던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 북쪽에는 “베드로 수위권 교회”라고 불리는 교회당이 있는데, 그 주위에는 바위가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교회당 안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생선을 구워주셨다고 전해지는 커다란 바위
(Mensa Christi, 주님의 식탁)가 교회당의 제단 앞에 놓여 있습니다.

 

왜, 갈릴리 호수의 물은 바닷물이 아닌데, “갈릴리 바다”라고 부를까요?

알라스카에 살고 있는 에스키모 사람들은 1년의 60~70%의 시간을 눈(Snow)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항상 함께 보면서 지내게 되는 눈을 표현하는 단어가 무려 15개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평생 눈이라고는 한 번도 볼 수 없는 아프리카의 열대지방 사람들에게는 아예 눈(Snow)라는 단어 자체가 없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물이 부족한 광야와 사막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온 광야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물이 모여 있는 곳”을 “Yam(얌)”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을 표현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지중해를 히브리어로 “얌-하티콘”, 갈릴리 바다 또는 호수를 “얌-하갈릴”, 사해를 “얌-하멜라흐”라고 부릅니다. 하다못해 솔로몬 성전의 번제단과 성소 사이에 놓여 있었던 놋으로 만든 커다란 물두멍에 항상 담겨 있었던 물도 “놋 바다(얌-무자크)”라고 불렀습니다.
커다란 대야에 물이 많이 담겨 있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다”라고 부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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