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5. 사마리아 지방

사마리아 지방

(왕상 16:23~24) “아사가 유다의 왕으로 있은 지 삼십일 년째 되는 해에 오므리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오므리는 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는데 처음 육 년은 디르사에서 다스렸습니다. 오므리는 세멜에게 은 두 달란트를 주고 사마리아 언덕을 샀습니다. 오므리는 그 언덕 위에 성을 쌓고 그 성을 원래 주인이었던 세멜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라고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솔로몬 왕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갈라졌는데, 북쪽은 북이스라엘이라고 불렀고, 남쪽은 남 유다 왕국이라고 불렀습니다.

북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오므리 왕이 세멜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땅을 사서 도시(성벽)을 건설한 곳이 사마리아 언덕이었습니다. 이 사마리아 성은 세겜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20 Km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해안 도로(Via Maris)와 연결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나라를 다스리는데 좋은 위치에 있었던 도시였습니다.

이 사마리아 성과 세겜, 그리고 이 부근에 살고 있었던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남 유대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에 세겜을 중심으로 하여 그 부근을 사마리아 지방이라고 불리던 곳은 므깃도, 이스르엘 평야로 확대되어 감으로 인하여 요단강 서쪽에 있었던 므낫세 지파의 땅을 통틀어 사마리아 지방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이 사마리아 지방은 북이스라엘의 정치와 문화적인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건국된 지 254년이 되던 해에 그곳을 점령한 앗시리아(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은 북이스라엘의 중심 지역이었던 사마리아에 살고 있었던 북이스라엘의 지도자층의 사람들을 앗시리아로 이주시키고,  사마리아에는 앗시리아 제국이 정복한 여러 곳에서 데려온 이방 민족들을 이주시켜서 정착시킨 후 앗시리아의 총독에 의해서 그곳을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

(왕하 17:24) “앗시리아 왕은 바빌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해서 사마리아의 여러 성에서 살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여러 성에서 살았습니다.”

그 이후에 사마리아 땅에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이방 민족과 혼혈하게 됨으로써 이스라엘의 혈통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마침내 그들은 남 유대 사람들로부터 경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후 남 유대 왕국도 바벨론에 의하여 점령당하게 되었는데, 이때에 유대의 수많은 지식인층과 지도자층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신흥제국이었던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패하여 점령당하였을 때,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 의하여 유대 사람들은 고국인 이스라엘로 돌아 올 수 있게 되었으며 다시 이스라엘의 성벽을 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쌓은 후 성전을 다시 세우려고 할 때, 사마리아에 살고 있었던 사마리아 사람들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데 동참하려 하였으나 유대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하게 되면서부터 유대 사람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서로 반목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유대 사람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이 서로 반목하고 있는 모습이 (요한복음 4장)에 기록된 예수님이 사마리아 지방을 지나면서 야곱의 우물 가에서 수가 성에 사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요한복은 4:9)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께 “당신은 유대 남자고, 나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나에게 마실 것을 달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처럼,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과의 적대관계의 골은 매우 깊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 위에 세워졌던 그들의 성전에서 피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 사마리아 성전은 BC 2세기경, 하스모니아 왕조 시대에 요한 히르카누스 왕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되어 다시 재건되지 못하고 폐허로 남아 있었는데, BC 30년경에 이스라엘 땅을 다스리던 분봉왕 헤롯 대왕 시대에 헤롯 대왕은 사마리아 성을 재건하고 로마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그 도시의 이름으로 그의 이름을 붙여서 “세바스티아(Sebastiya)”라고 불렀습니다.

세바스티야의 아고라 광장 유적지의 돌기둥

북이스라엘의 중심 도시였으며, 헤롯 대왕에 의해서 새롭게 건설되었던 세바스티야의 지금 모습은 폐허로 변해 버린 이후 아랍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주 작은 마을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1960년대에 요르단 정부에 의해서, 또 영국 황실 고고학 발굴단에 의해서 발굴작업이 시작되어 1984년부터는 성서 고고학 발굴단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사마리아 사람들의 역사적 흔적을 따라 사마리아 성의 유적과 그리심 산의 유적들이 발굴되어 가고 있습니다.

“토라(Torah)”라고 불리는 성서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책들인 “모세 5경”을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과는 조금 다르게 “사마리아 5경”이라고 부르면서, 텍스트의 내용의 의미적인 면에서 조금 다르게 해석되었습니다. 예를 들면,“거룩한 산”이라고 하면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의 “성전 산”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유대인들과 “절기”를 지키는 내용들도 조금씩 달랐습니다. 예를 들면, 유월절 행사를 지내게 되는 날짜도 사마리아 사람들의 유월절 절기의 날짜를 사마리아인의 월력을 기준으로 하여 (출애굽기 12장)에서 말하는 첫 달의 14일째 되는 날에 유월절 행사를 갖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유월절 제사의 행사 내용은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출 12:3~4)의 기록에 따라 사마리아 사람들의 공동체 인원에 비례하여 희생제물이 될 어린 양의 수를 결정하고, 어린 양을 선택한 다음 그리심 산위에 있는 성전으로 가져 옵니다. 오후가 되면 양을 구울 수 있는 구덩이에 불을 집히기 시작합니다. 해가 지기 직전에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한곳에 모인 후 기도문을 낭독하며 기도를 시작합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선택되어진 어린 양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고 그 가죽이 벗겨지게 됩니다. 그런 다음 양의 내장을 빼어내고 태워버립니다. 잘 씻은 고기에 소금을 뿌려서 고기에 남아 있는 피를 완전히 빼어냅니다. 약 2 시간에 걸쳐서 양을 구운 다음 자정쯤이 되었을 때 그 양고기를 쓴 나물과 무교병(누룩을 넣지 않고 만들어 구운 빵)과 함께 제단 부근이나 혹은 집안에서 먹습니다.

(출 12:10)의 말씀에 의하여 혹시 먹고 남은 것이 있으면 태워서 없애버립니다. (출 12:7)에 언급되어 있는 대로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집안에서 양의 고기를 먹는 관습대로 양고기를 먹습니다. 그리고 양의 피를 어린 아이들의 이마에 바르는 행사도 갖습니다.

유대인들과는 다르게 사마리아 사람들은 “페삭 세데르(유월절과 관련된 성경의 이야기와 기도문을 읽는 것)” 행사를 갖지 않습니다. 그 외의 유월절을 지키는 일들은 사마리아 사람들도 유대인들과 거의 같이 지킵니다. 보다 구체적인 사마리아 사람들의 유월절 행사의 내용은 차후에 한 번 더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안식일을 지키며 회당 예배를 드립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회당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신발을 벗습니다. 회당 안에는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없는데  그 대신에 바닥에 앉을 수 있도록 카펫을 깔아 놓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기도를 할 때에 몸이 향하고 있는 방향이 예루살렘 성전의 방향이 아니라, 그리심 산에 있는 사마리아 성전의 방향이었습니다.

(레위기 23:24)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일곱 번째 달의 첫째 날을 새해의 첫 날(나팔절)로 지킵니다. 유대인들은 새해의 첫 날과 속죄일에 나팔을 불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은 나팔을 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나팔은 새해 첫 날과 속죄일에 “성전에서 만” 불어야 하는데 그들의 그리심 산위에 있었던 성전이 무너진 이후부터는 더 이상 나팔을 불지 않는 것입니다.

속죄일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절기인데 그날에는 하루 종일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초막절에는 유대인들은 집 밖에 초막을 만들어 절기를 지키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은 집안에 초막을 만들어 절기를 지킵니다. 이러한 관습을 오랫동안 핍박을 받아오면서 집 밖에 초막을 지을 수 없었던 환경적인 관습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사마리아 사람들도 집 밖에 초막을 짓고 초막절을 지키는 사람들도 더러 있습니다.
초막을 지을 때에는 지붕에 종려나무 가지를 올려놓아 지으며 초막 안에는 여러 가지의 과일들을 가지고 장식을 합니다.

그리심 산 위의 거룩한 바위에서 유월절 희생 제사(1900년)

(레 23: 39~43) “일곱째 달 십오 일에, 곧 너희가 땅에 심었던 것을 거두어들이고 나서, 여호와의 절기를 칠 일 동안 지켜라. 초하루와 팔 일은 완전한 안식일이다. 너희는 첫째 날에 좋은 나무에서 열매를 거두어들이고, 종려나무 가지와 잎이 무성한 나무가지와 시냇가의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서, 칠 일 동안,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여라. 해마다 이 절기를 여호와 앞에서 칠 일 동안, 지켜라. 이것은 지금부터 영원히 지켜야 할 율법이다. 너희는 이 절기를 일곱째 달에 지켜라. 칠 일 동안 초막에서 지내라.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모든 백성은 칠 일 동안, 초막에서 지내라. 이것은 내가 너희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던 때에 너희를 초막에서 살게 하던 일을 너희 후손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이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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