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0. 아람 사람과 아람어

아람 사람과 아람어

아람어(ארמית / 아라마야 / 아라미트)는 셈어(Semitic language)파에 속하는 언어입니다.
지금도 시리아에서는 이 문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이라크가 이 언어를 공용어로 지정한 바가 있습니다.

아람어

BC 6세기의 바빌론에서의 유배생활 이후에, 많은 유대인들이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말하고 이해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람어는 앗시리아와 페르시안 제국의 시대로부터 근동지역에서 통용이 되는 공용어였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바빌론에서의 유배기간 동안에 아람어를 배웠는데, 아람어는 히브리어와 깊게 관계되어 있는 셈어(Semitic language)였습니다.
구약 성경의 두 개의 책들, 즉 “에스라서”와 “다니엘서”는 부분적으로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이른바 “북서(Northwest) 셈어”에 속하는 언어로서,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비교적 공통점이 많습니다.
히브리어는 이스라엘 민족들만 사용한 언어로서, 유대인이 아닌 사람이 사용한 적이 거의 없는 언어입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의 대부분이 히브리어로 쓰였습니다.  또한 히브리어는 이스라엘 안에서도 바벨론 유배 이후부터는 점차 종교적인 용도로만 국한되어 사용되었습니다.

반면에 아람어는 문법이 히브리어와 비교하자면 단순하여서 배우기 쉬웠습니다. 또 아람어는 페르시아 제국의 공용어가 됨으로써, 고대 근동 세계에서 국제 공용어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게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공용어로서 사용된 아람어를 “제국 아람어(Imperial Aramaic)”라고 부릅니다.

그리하여 페르시아 제국의 영향권 안에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점차 아람어를 사용하면서 점차적으로 히브리어는 생활 언어로서는 잊혀져가면서 종교적인 언어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 8:8)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책을 백성들이 알아듣기 쉽게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설명해 주었으므로 백성들은 그들이 읽어 주는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조상들이 사용하여 왔던 히브리어를 이해하는 사람은 정규 교육을 받은 사제들이나 레위인들이었고, 일반 백성은 아람어를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성서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나사렛과 갈릴리 지방의 가버나움에서 주로 사역을 하셨던 예수님은 주로 아람어를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에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었던 구약 성경을 인용하여 말씀을 전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은 히브리어도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목수로서 일을 하실 때 집안에 목공소를 차려놓고 목수 일을 하신 것이 아니라 동네마다 다니시면서 가구나 집을 수리하였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이 사시던 지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면서 커다란 도시였던 세포리(Sepphoris)에서 주로 일을 많이 하셨다고 생각해 볼 때,  헬라어도 사용할 줄 아셨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성서 안에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말 중에서 아람어로 쓰인 곳이 많이 있습니다.  신약성서뿐만 아니라 에스라서와 예레미야, 다니엘서와 같은 구약성서에서도 히브리어 대신 아람어로 쓰인 부분이 많으며, 탈무드도 히브리어가 아니라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람어는 원래 시리아 지방에서 사용되었던 언어인데, BC 약 3,000년경부터 문자화되었습니다.  앗시리아 제국이 중동지방을 제패한 이래,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제국에서 행정언어로 아람어가 사용되었으며,  중동지역의 전체로 확산되었습니다.  BC 6세기경에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히브리어 대신 아람어를 주된 생활언어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아람어는 중동지방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으나, 이슬람교의 확산과 함께 아랍어로 대체되었습니다.  다만 몇몇 동방 기독교의 교회언어로서, 북부 이라크와 시리아 근방에서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언어로 남게 되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문자다운 문자의 역사는 BC 3,000여 년 경 수메르 사람들과 악카드 사람들이 살던 중동 지방의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사용되었던 언어의 기원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은 언어학자들도 아직까지 어려운 부분으로 남아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인류의 역사 이야기를 담고 있는 구약성경을 보더라도 인류가 에덴의 언어를 역사적으로 전혀 알 수가 없고, 노아 홍수 이후 바벨탑 사건이 있은 후 언어의 혼잡이 일어나면서 그 정확한 기원을 파악하는 일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부터 나타나게 된 히브리어와 아람어, 악카드어 등은 모두 셈어(Semitic language)에 속합니다. 그리고 이 셈어를 크게는 두 갈래로 나누는 데 동부 셈어인 고대 악카드어는 앗수르어와 바벨론어로 발전하였고, 서부 셈어는 페니키아어(영어의 원조), 우가리트어(히브리어와 같은 계통의 언어), 히브리어, 아람어 등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히브리어는 BC 11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우가리트어, 가나안어, 모압어, 페니키아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히브리어를 “’가나안 방언(사 19:18)”, “유다 방언(왕하 8:26~28, 느 13:24)이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헬라어(그리스어)로 기록된 신약 성경에서 “히브리 말”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 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어를 말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아람 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요 5:2), (요 19:20) (행 21:40), (행 22:2), (행 26:14)

이 “아람 어”는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사용하였던 언어로써 예수님이 쓰신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 막 5:41), 에바타(열려라, 막 7:3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이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등이 아람어입니다.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한 이후로 유대 땅으로 다시 돌아온 히브리인들은 아람 어를 널리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탈리타 쿰(Talitha cumi, Ταλιθα κουμ, טְלִיחָא קוּמִי) = Little girl, I say to you, arise!
엡파타(Ephphatha, Εφφαθα, אֶתְפָּתַח) 또는 에바다 = be open
아바(abba, Αββα, אַבָּא) 또는 압바 = daddy
라카(rhaka, Ρακα, ריקה) 또는 라가 = You worthless, good-for nothing. empty head.
맘몬(Mammon, Μαμωνας, מָאמונָא) = riches
라보니(rhabboní, Ραββουνει, ) = master, Teacher
마라나 타(Maranatha, μαρανα θα, מרנא תא) = Our Lord has come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Ηλει Ηλει λεμα σαβαχθανει, אלהי אלהי למא שבקתני)
욧과 티틀(ἰῶτα ἓν ἢ μία κεραία) (일점일획으로 번역)
고르바나스(κορβανας) 또는 고르반
시케라(σικερα)
호산나(hōsanná, ὡσαννά, הושע נא) = save, rescue, savior
보아너게스(Βοανηργες) 또는 보아너게
케파스(Κηφας) 또는 게바
토마스(Θωμας) 또는 도마
타비타(Ταβειθα) 또는 다비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Mene, Mene, Tekel, Upharsin, מנא, מנא, תקל, ופרסין)”(단 5:25)
“겟세마네”(기름 짜는 틀), “골고다”(해골의 곶)
“마모나” 개역개정 성경에는 “제물”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마 6:24) (눅 16:13)
“파스카” 개역개정 성경에는 “유월절”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마 26:2) (막 14:14)

구약성경의 에스라서 일부(4:8-6:18; 7:12-26)와 예레미야서의 한 구절(10:11), 그리고 다니엘서 일부(2:4 하반절-7:28)는 아예 아람 방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밖에도 성경 여러 곳(창 31:47) (막 5:41) (막 14:36)이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헬라어는 그리스에서 기원 이전에 사용하였던 언어입니다. 헬라 시대 당시 수많은 도시 국가들이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는데 주요 방언들은 “아틱(Attic), 이오닉, 애올릭, 도릭”이라는 네 개의 방언이 있었습니다.

이 중에서 아테네 지역에서 쓰던 “아틱 방언”이 고전 헬라어였습니다.  이 아테네의 방언인 “아틱 방언”은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전쟁으로 중동의 공식 언어(Common language)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고전 헬라어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방언과 언어들(라틴어 포함)의 영향을 받아 다소 단순화된 문법으로 수정이 되는 데, 이것이 바로 “헬레니스틱 헬라어” 또는 “코이네(Koine= 공통의) 헬라어”라고 불리는 헬라어입니다.

이 코이네 헬라어로 신약 성경이 기록된 것인데 오늘날에는 사용되지 않고 있는 그리스어입니다.  신약 성경 시대 당시에 아람어는 지방 언어이었으며, 라틴어는 정부 공식 언어였고, 헬라어는 일반 백성들이 누구나 사용하는 통상 언어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히브리어, 헬라어, 아람어, 라틴어를 잘 아셨고, 로마 시민이면서 지식인이었던 사도 바울은 이들 모든 언어에 능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라틴(Latin)어는 언어 분포 상, 인도유럽어계에 속하는 언어로 본래 이탈리아 반도 서북부 Latium 주민의 방언이었는데 이 방언을 쓰던 라티움 족이 BC 8세기에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 지방에 정착하여 로마(Roma)를 창건하고(BC 753년), 로마가 세계를 정복하면서 라틴어가 헬라어를 대신하여 세계 언어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라틴 민족의 언어들(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루투갈어, 루마니아어)은 라틴어의 변형으로 보아도 무방하며 게르만과 앵글로색슨계의 언어(독어, 영어)도 어휘의 40-50%의 뿌리는 라틴어에 두고 있습니다.  실제 라틴어를 배워보면 영어의 50% 이상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Hebrew)인”이란 명칭은 창세기 1-14장 초반까지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 후 아브람 시대에 들어서면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창 14:13)”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하게 됩니다.

이 “히브리 사람”이라는 이 명칭이 어떻게 유래되었는지에 대하여는 몇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첫째, 고대 메소포타미아 마리(Mari)라는 문서에 히브리어와 유사한 하비루(Habiru)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들 “하비루”들은 유프라테스 중앙 초원지대를 유랑하면서 목축업을 하였던 무리들이었는데, 이 “하비루”를 히브리 사람들(유대인들)로 보는 견해입니다. 또한 라스 사무라(Ras Shamra) 문서의 사본에도 이브림(Ibrim)과 하피리(Hapiri), 아피림(Apirim)이란 이름을 찾을 수 있는데 이들 명칭을 히브리 족속과 연관 되어 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둘째는 아브라함의 조상, 에벨(Eber, 창 10:21)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가설입니다.
히브리어는 모음과 발음 기호가 없는 자음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므로 “에벨”이 “히브리”로 변형되어 발음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아람의 후손들

아람(Aram)이라는 사람은 노아의 세 아들 중의 하나였던 “셈”의 다섯 아들 중의 하나입니다. 또 그런가하면 아람(Aram)은 지리적으로는 통상적으로 요단강 동북부에서부터 티그리스(힛데겔) 강과 유프라테스(유브라데)강 유역에 이르는 지역을 말합니다.  (“메소포타미아” 라는 말은 이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라는 뜻입니다. )

아람은 지금의 시리아에 해당되는 “수리아”라고도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람 지방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도시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시리아의 다마스커스(다메섹)였습니다.(삼하 8:6) (대상 18:6) (사 7:8) 그래서 (이사야서 7:8)에서는 다메섹을 “아람의 머리”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히브리 민족의 조상으로 여기고 있는 아브라함도 하란을 떠나 헤브론에 가는 도중 다메섹에 들렀다고 기록되어 있고(창 15:2), 훗날 통일 이스라엘의 다윗 왕은 아람 땅 다메섹을 정복하고 수비대를 그곳에 배치하였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삼하 8:5-6), (대상 18:5-6)

현대에 와서는 1967년 6일 전쟁 당시,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기습 점령한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이곳을 이스라엘 조상들의 땅이었다고 주장하면서 그곳을 완충지대로 삼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람의 땅은 오랫동안 그저 “아람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던 지방을 가리키기 때문에, 명확하게 그곳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라고 경계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앗수르의 비문”의 기록에 의하면 아람 땅을 유브라데스 강의 동부 지방에 국한하고, 서쪽은 히타이트(Hittites)나  아모리 사람의 땅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아람의 후손들은 지금의 시리아 땅을 중심으로 하여 부유하고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아람 족의 흥망

아람(Aram)은이라는 말은 “높고” “고귀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히브리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되었던 “70인 역 성경”에는 아람을 “수리아(시리아, Suriva, Syria)”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아람(Aram)이라는 곳은 성경에서 뿐만 아니라 역사의 기록 속에도 자주 등장하였습니다. 역사 기록에 아람(Aram)이 최초로 등장하는 곳은 “이집트 제1왕조” 시대(BC 3100 경)에  아카드어로 기록(BC 27세기~23세기 경)된 문헌에서입니다.

그리고 “아람 사람”에 관하여 보다 분명한 언급된 곳은 마리에서 출토된 “아모리어 텍스트”와, 우가리트에서 출토된 토판(土板)에서 발견됩니다. 또 BC 23세기에 기록되어진 것으로 알려진 “아카드 왕 나람신(Naram-Sin)의 설형 비문”에서는 분명하게 “아람 족”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BC 14세기 중엽 아카드어(신 바벨론어)로 저술된 기록 중에서, 이집트에서 발견된 유명한  “아마르나 서신(Amarna Letters) 토판”에서도 아흘라메(Ah˘lame=연합자)라는 이름으로 아람 족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I 세(BC 1115-1076년)는 앗수르의 서부 지역에 침입한 아흘라메(Ah˘lame)를 물리치면서, 아흘라메(Ah˘lame)를 아람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앗수르 제국이 점점 더 강성해짐에 따라 아람의 도시들은 하나 둘씩 앗수르에게 점령을 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앗수르 사람들은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점령한 후(BC 722년) 북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람 족속이 살던 땅으로 이주시켰고, 북 이스라엘 땅에는 반대로 아람 사람들을 이주시켜 살게 하였습니다.  앗수르에게 많은 땅을 빼앗긴 아람 족속들은, 한때 신 바벨론을 도와 앗수르에 대적하기도 하였지만 아람 족속은 오히려 바벨론에게 동화되어 점차적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솔로몬 왕 이후에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었던 때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헤시온, BC 940-915년, 왕상 11:23-25) , 다브림몬(BC 915-900년, 왕상 15:18), 벤하닷 1세(BC 900-860년, 왕상 15:18-20),  벤하닷 2세(BC 860-841년, 왕상 20장), 하사엘(BC 841-806년, 왕하 8:15), 벤하닷 3세(BC 806-770년),  르신(BC 750-732년) 등으로 이어지던 아람 왕국은, 이스라엘보다 10년 먼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광활한 메소포타미아 지역(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걸쳐 있던 아람 족의 행동반경은,  지금의 시리아 지역으로 축소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오랜 기간 타민족의 억압과 핍박을 견디어 온 시리아는,  1946년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비로소 지금의 시리아로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의 히브리 민족

성경에 보면 아람과 이스라엘 민족은 같은 셈의 후손이면서, 근접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하여 끊임없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람의 주요 도시였던 하란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 이주한 땅이었으며(창 11:31), 아람 땅 하란은 나홀과 그 자손들,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 하란의 아들 롯, 브두엘, 라반의 고향이기도 하였습니다(창 22:20-24)(창 24:4, 7) (창 10장) (창 25:20) (창 28:2).

아브라함과 그 가족은 롯과 함께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창 12:4).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을 자신의 고향, 내 족속이 있는 곳이라고 하면서 그의 아들 이삭의 아내를 얻기 위하여  하란 땅, 밧단 아람으로 보내었던 적도 있습니다. (창 24:4).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하란에서 사촌형 브두엘의 딸 리브가를 데리고 와서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창 24장).

모세는 자기 조상에 대하여 말하였을 때, “유리하는(떠돌아다니며 살던) 아람 사람”(신 26:5)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브두엘도 당연히 아르박삿의 후손임에도 성경은 그를 아람 족속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창 25:20; 28:5).

이삭과 리브가의 아들 야곱도 밧단 아람에 사는 그의 외삼촌의 딸,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이 하였습니다(창 28:2-5). 야곱과 같이 가나안으로 돌아온 여자들 중 적어도 레아와 라헬은, 히브리 사람의 조상이 된 아람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인 라반의 딸들과 결혼을 한 것입니다.

사사시대를 거쳐 통일 왕국의 다윗 왕 시대에 이르러 아람은 이스라엘과 치열한 전쟁을 하였던 기록들이 (사무엘하 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다메섹의 북쪽 레바논 산중에는 “소바”라고 하는 강력한 왕국이 있었는데 이 소바 왕국과 다윗 왕이 전쟁을 하였습니다. 이때에 소바 왕국을 돕기 위하여 다메섹의 아람 사람들이 참전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에 다윗 왕이  아람 사람들을 22,000명이나 죽이면서 전쟁에 승리하게 되어 이때부터 아람은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기 시작하여 솔로몬 시대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부의 아람 장군들이 다윗 왕의 수하에 들어와서 다윗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는데, 다윗의 37용사 가운데 “이갈”이라는 장군은 “소바 왕국”출신이었습니다.(삼하 23:36)

다윗 왕 시대부터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치던 아람 왕국은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리된 이후부터는 북 이스라엘 왕국에 큰 위협이 되는 세력으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특히 북이스라엘의 7대 왕 아합 당시, 북이스라엘은 벤하닷 1세가 통치하던 아람과 큰 전쟁을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아람에게 빼앗겼던 길르앗 라못을 정복하려고 전쟁을 벌이다 결국 아람 병사의 화살을 맞고 죽고 말았습니다. 선지자 엘리사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문둥병을 치료받고 돌아간 나아만 장군이, 바로 이 당시 아람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아람 족은 끊임없이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 왕국과 전쟁을 치렀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만 보아도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을 비롯하여, 3대 왕 바아사, 9대 왕 여호람,  10대 왕 예후, 11대 왕 여호아하스, 12대 왕 요아스, 13대 왕 여로보암 2세 통치 때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남 유다 왕국과 아람(시리아)이 벌렸었던 3번의 커다란 전투(4대 여호사밧, 6대 아하시야, 8대 요아스 왕 시절)의 승리자는 아람이었던 기록이 있습니다. (왕하 8:28-39) (대하 18:28-34) (대하 22:5-6).

아람어와 유대인 그리고 신약성경

아람어는 주전 2세기 초까지 인도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제국(특히 바사 제국)의 언어로 사용된 셈어(Semitic language)였습니다. 따라서 아람어는 동방계 셈어(아카드 방언)나 남방계 셈어(에티오피아 및 아랍어 방언)와 구별되고, 북서방계 가나안어(히브리어, 페니키아어, 우가리트어)와도 구별되는 언어입니다.  비록 아람 족이 중동 지방의 강대국이 되지는 못하였으나, 그 지리적 특성상 언어를 통한 문화적 매개 역할을 충실히 감당한 민족이 되었던 것입니다.

BC 6세기경 바벨론의 포로가 된 유대인들도, 70년 동안 바벨론 지역에서 살면서 조상(히브리인)들의 고유 언어인 히브리어를 표기하는데 있어서 당시 중동 지방의 공용어였던 아람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후에도 일상생활에서 아람 방언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그 영향은 예수님 당시까지 이어져,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아람 방언을 통용어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AD 7세기 이슬람교가 교세를 넓혀 가면서 정복 전쟁을 하면서 중동 지역을 이슬람이 장악한 이후 아람어는 급격하게 쇠퇴되어갔습니다. 아람어 사용 지역들은 대부분 아랍어로 대치되었으며, 오늘날 아람어는 겨우 쿠르드족과 일부 시리아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을 뿐입니다.

아람 땅과 사도 바울

아람 땅은 놀랍게도 이방인 선교에 사명을 받은 사도 바울의 최초 선교지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잡아 예루살렘으로 끌어 오기 위하여 시리아의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그에게 비쳐 왔던 그 순간 사울은 땅에 쓰러져버렸습니다. 그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괴롭히느냐?”라는 음성을 들으면서 사울은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이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지 못하였습니다.  주님은 사울에게 “네가 할 일을 알려줄 사람이 있을 것이니 일어나 다메섹 시내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눈을 떴으나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던 사울은, 동행하던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 사흘 동안 보지도 못한 채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회심하고 눈이 먼 그가 도착한 곳은, 다메섹의 직가라는 거리였습니다.

다메섹에는 다소 사람 바울의 회심 사건을 환상으로 보았던, 주님의 한 제자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아나니아”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눈이 먼 바울에게 안수(按手)하여 그가 눈 뜨는 것을 도와주었을 뿐 아니라, 세례를 주고 다메섹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를 소개해 주었습니다(행 9:10-18).

이렇게 하여 사울(‘큰 자’라는 뜻)은 바울(‘작은 자’라는 뜻)이 되었으며, 사도로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행 9장). 이렇게 전통적으로 아람 땅은 최초의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게 되는 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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