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5. 사도 바울의 절친이 된 노예 오네시모

로마에서 사도 바울의 절친이 된 오네시모

(빌레몬서 1:10~21)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나는 믿음의 아들 오네시모를 얻었습니다. 그를 위한 부탁이니 들어 주기 바랍니다. 그가 이전에는 그대에게 아무 쓸모 없는 종이었지만,  이제는 그대나 나에게 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제 나의 분신과도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내가 복음을 위해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나는 그를 내 곁에 두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나를 돕는 것이 바로 빌레몬 그대를 돕는 일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먼저 그대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은 내가 시켜서 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대 스스로 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오네시모가 잠시 동안, 그대의 곁을 떠났지만, 이 일은 어쩌면 그를 영원히 그대 곁에
두게 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종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귀한, 사랑하는 형제로서 대해 주십시오.  나는 그를 소중히 여기지만 아마도 그대는 주님 안에서 그를 한 사람, 한 형제로 사랑하기 때문에  나보다 더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그대가 나를 친구로 생각하거든 오네시모를 다시 받아 주고, 나를 맞이하듯, 그를 맞아 주기 바랍니다.  만일 오네시모가 그대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그 책임을 내게 대신 돌리십시오. 또 갚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도 나에게 돌리십시오. 이 편지는 나 바울이 직접 쓰는 것입니다. 오네시모가 그대에게 빚진 것은 내가 다 갚을 것이며, 나 역시 그대가 내게 은혜로 빚진 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여, 나를 위해 주님 안에서 이 부탁을 들어 주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마음이 평안해지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대는 내가 부탁한 것보다 훨씬 더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 편지를 씁니다.”

성서학자들은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Onesimus)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 때는, 사도 바울이 죄인으로 로마에 압송당하여 로마 감옥에 있을 무렵인 AD 60년경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지금의 터키 땅이며 “파묵칼레(목화성)”으로 유명한 “히에라폴리스”의 옆에 있던 도시 “골로새”에  사도 바울이 제 3차전도 여행 중에 세운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평신도 지도자였던 “빌레몬”이라는 사람의 개인 사유의 노예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빌레몬의 노예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노예로서 로마제국의 법에 따라 주인 빌레몬에게 충성하면서 살아가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네시모는 주인 빌레몬에게 물질적인 손해를 끼치고 로마로 도망쳤던 노예였습니다. 아마도 도망 칠 때 필요한 재물을 훔쳤던 것 같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의 노예 수는 대략 6,000만 명 정도로 자유 시민의 4배에 달하는 숫자였다고 하는데, 로마는 이처럼 많은 노예들을 효율적으로 다루기 위해 가혹하고도 철저한 법을 만들고 실행하였던 노예 제도를 만들었는데 당시 로마 법대로라면 오네시모의 행위는 당연히 사형에 해당하는 죄에 속하였습니다.

당시의 로마사람들은 노예를 부리기 좋게 하기 위하여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영혼이 없는 동물이라고 불렀으며, 말을 하는 도구라고 하였습니다. 노예는 주인의 사유재산이기에 주인 마음대로 죽일 수가 있었습니다. 더욱이 도망간 노예가 붙잡히게 되면 잔인하게 죽이는 일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주인이 자비를 베풀어 운이 좋은 노예는 죽임을 당하는 대신에 라틴어 “Fugitivus” 즉 도망자라는 머리글자인 “F” 자를 이마에 낙인찍힘으로써 일생 동안 핍박당하면서 살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오네시모는 그래도 회개하고 자기 주인에게로 돌아가 다시 섬기겠다고 목숨을 건 결단을 하였던 것입니다.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었던 사도 바울과 그의 믿음의 아들, 오네시모

도망친 노예로서, 게다가 주인의 재물을 훔치고 제국의 수도인 로마까지 숨어든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는 불안한 가운데 도피생활을 계속하던 중 그리스도인을 만나 사도 바울의 소문을 듣고 당시에 로마의 옥중에 연금되어 있었던 사도 바울을 찾아갔었는데 사도 바울로부터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접한 오네시모는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했고 이후 바울의 곁에 머무르면서 그의 시중을 들면서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오네시모를 가리켜 바울은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전에는 무익한 자였지만 지금은 유익한 자”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그의 주인이었던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기를 결정하고 오네시모를 위하여 빌레몬에게 특별한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빌레몬 또한 사도 바울의 제자로써 사도 바울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후 골로새 교회를 섬기고 있던 신실한 믿음의 인물이었습니다.

빌레몬에게 전하였던 편지에서 바울은 이제는 유익한 자가 된 오네시모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그를 믿음 안에서 형제로 받아들일 것을 구구절절 간곡하게 그리고 정중하게 부탁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빌레몬의 용서와 사랑으로 인하여 오네시모는 노예에서 해방이 되어 그와 함께 주님을 섬기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고 도망쳤던 쓸모없던 노예 출신 오네시모는 사도 바울과 같은 위대한 인물과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쓸모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에베소 교회의 위대한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전심으로 평생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헌신했는지는 그 일이 있은 후 50년이 지난 후에 위대한 그리스도인 순교자, 이그나시우스(Ignathius)의 편지의 기록에 의해서 입증이 되었습니다.

AD 107년에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었던 이그나시우스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바울처럼 로마로 끌려가서 맹수에 의해서 찢겨 죽게 하는 처형을 당하였는데, 잡혀가는 도중에 그는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들과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캅”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가운데 에베소에 보낸 편지에서 그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그들의 감독에 대해서 부탁의 말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받아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을 본받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감독으로 모실만한 자격 있는 분들이며, 여러분의 감독이 된 그분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그나시우스 감독이 언급한 그분이 누구이겠습니까? 그분이 바로 오네시모였습니다.
결국, 오네시모는 후년에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되어 자신의 일생을 주님의 노예로 헌신하며 바쳤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 당시 시대에 로마의 노예제도에 대하여 기록으로 남겨진 이야기들과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였을 때 어떠한 사랑의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를 알아 보았습니다.

카토(Cato)라는 사람은 농장을 경영하는 일에 관하여 기록하였던 그의 글에 의하면,  늙은 소는 팔아버리고, 병든 짐승과 쓸모없는 양털과 가죽, 낡은 짐수레나 농기구들, 그리고 늙고 병든 노예는 없애버리도록 농장 주인들에게 권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 시대 당시에는 로마의 노예들의 수는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에 제국의 영토를 넓혀가던 중이었으므로 대개는 전쟁 노예였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예수께서 출생하던 시기에 어떤 사람은 폭동으로 인하여 그의 재산 손실을 막대하게 입고 나서도 여전히 4,160명의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었고, “트리말키오”라는 사람은 새로 태어나는 노예만도 하루에 남자아이가 30명이고 여자아이가 40명이었다고 기록하여 두기도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노예들이 물건처럼 매매 되고 있었는데, 팔고자 하는 사람들은 노예를 물건처럼 진열해 놓고 있었고, 사고자 하는 사람들은 벌거벗은 노예를 얼마나 건강한지 알아보기 위하여 찔러 보기도 하고, 입을 벌려 보기도 하고, 주위를 걸어 보게 한 후에 값을 흥정해서 구매하였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노예들은 사소한 잘못에도 잔인한 벌을 받곤 하였습니다. 로마를 제국으로서 그 기초를 다졌던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는 애완용으로 길들인 메추라기를 우연히 죽게 한 노예를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하기도 하였습니다.

AD 90년 경 사도 요한의 때에 기독교를 심하게 박해하였던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는 그의 목욕물을 너무 뜨겁게 데웠다고 노예를 화로에 태워 죽였던 일도 있었으며, 베디우스 폴리오는 수정으로 만든 잔을 실수로 떨어뜨려 깨뜨린 노예를 연못에 집어던져 칠성장어에게 산채로 뜯겨 죽도록 하였습니다.

먼지 한 점 묻은 것, 은 조각 하나 잘못 닦은 일, 파리를 쫓지 못한 일, 식탁을 바로 놓지 못한 일,  의자를 바로 놓지 못한 일,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재채기하거나 기침하거나 말 한마디 속삭인 일,  술시중이나 목욕물의 온도를 조절하지 못한 일 등으로 노예들은 채찍을 맞거나 매를 맞는 형을 감수하여야 했습니다.

여주인들도 자기 하녀들이 시키는 대로 머리를 만져주지 못하면 손톱으로 하녀를 할퀴거나 채찍질하는 일은 보통이었습니다. 만약에 주인이 처형당하게 되면 노예들도 함께 처형당하였습니다.  한 예로써, 페디아누스 세쿤두스가 죽임을 당하게 되었을 때에 처형된 그의 노예가 무려 4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노예들을 학대하였던 것은 아닙니다. 반면에 그들에게 친절했던 주인들도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형제라고 믿었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노예들과 식탁을 함께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플리니는 자신의 병든 노예를 치료하기 위해서 이집트에 보내기도 하고, 회복을 위해서 친구의 농장에 보내어 쉬면서 회복하도록 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노예가 너무 늙기 전에 해방시켜 주어 자유의 몸이 되게 하여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또 몇몇 지식인들이 노예들에게 친절을 베풀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친절이 동정의 범위를 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바울 당시의 사람들이 노예를 어떤 식으로 취급했는가를 정확히 알면 알수록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에게 취한 태도는 진흙 속에서 빛나는 진주 같은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노예로서 주인인 빌레몬에게 상당한 손해를 입히고 로마로 도망친 죄수였습니다.  로마의 법대로 하자면, 오네시모는 불에 달군 쇠로 이마에 F자를 새기고 채찍을 맞은 후에 십자가에 매달려야 마땅하였습니다.그러나 사도 바울의 그에 대한 태도는 달랐습니다.

사도 바울은 도망자 노예 오네시모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했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복음 가운데 진정한 자유와 해방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었던 것입니다.  참 자유와 해방은 주인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임을 일깨워 주었던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에 걸맞은 새롭고 변화된 삶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노예 신분의 변화 없이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을 뿐만 아니라 노예문서를 불태우고 반란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Good News”를 전하여 주었던 것입니다.

주인이라 할지라도 노예처럼 비참한 삶이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으며, 노예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복음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주인도, 노예도 형제가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으며 여기에 첨가해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친아들처럼 진정으로 사랑하였습니다.  참다운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여 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새 사람이 된 오네시모를 사랑하였을 뿐만 아니라, 복음의 동역자로 함께 일하기를 원하였으며,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노예로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써 맞이하여 줄 것을 정중하게 간청하는 편지를 썼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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