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5. 물고기

물고기

(창세기 1:20~23)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물은 움직이는 생물을 많이 내어라. 새들은 땅 위의 하늘을 날아다녀라.” 하나님께서 커다란 바다짐승과 물에서 움직이는 생물과 날개 달린 새를 그 종류에 따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새끼를 많이 낳고, 번성하여 바닷물을 가득 채워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여라.” 저녁이 지나고 아침이 되니, 이 날이 다섯째 날이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땅과 하늘을 창조하시고 물과 뭍을 분리하신 후, 물과 뭍에 사는 모든 생물들을 그분의 뜻에 의하여 창조하셨습니다. 이렇게 창조된 물과 뭍의 생물들을 그 다음 날에 창조하신 인간들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물과 아주 깊은 관계를 가지며 살아가야 했던 인간은 언제나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인류는 물에 살고 있는 생물인 물고기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고대 바벨론의 전설에 의하면, 지혜의 신이 천지창조 이후 1년이 지난 후에 물고기의 모습으로 육지에 올라와서 인간에게 밭을 가는 지식을 가르치고 학문의 기초를 가르쳤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북아메리카 북서해안에 사는 원주민의 알류트족과 에스키모족과 같은 여러 부족들의 전설에는 연어의 큰 떼는 바다 저편에 사는 사람들이 연어로 모습을 바꾸어 해마다 정해진 계절에 행운을 가져오기 위해 찾아오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해마다 가장 먼저 강을 거슬러 올라온 연어를 극진히 대접하면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을 축하하면서 내년에도 또 다시 풍어를 기원하는 의례를 올렸던 전통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인도 신화에서도 신이 물고기로 변신하여 인류의 시조를 홍수에서 구출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처럼 물고기는 여러 지방의 신화에 자주 등장할 정도로 사람들과 친숙한 생물입니다.

신약 성경의 예수님의 이야기 중에도 물고기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12 제자 가운데에서도 7명이 물고기를 잡는 일을 생업으로 하였던 어부였습니다.

성경에는 물고기의 종류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구분을 하였다면 “정결한 물고기”와 “부정한 물고기” 뿐입니다. 물고기 또는 바다 생물로 표현되었던 히브리어 단어는 2개의 단어로 표현하였는데, “따그(dag)”, “따가(dagah)”입니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모든 종류의 물고기를 의미할 뿐만이 아니라 조개류, 갑각류 및 바다에 사는 포유류까지 모두를 포함하는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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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라피아(Tilapia)

(레위기 11:9)와 (신명기 14:9~10)에 기록되어 있는 음식법에서 “물고기”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고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으로 표현된 물고기 중에,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되 없는 것은 못 먹는 것”으로 분류되었습니다. 뱀장어, 메기, 미꾸라지 등은 비늘이 없는 생선이기 때문에 못 먹는 물고기로 분류되었고, 먹을 수 있는 생선 중에 “틸라피아(Tilapia)”라고 불리는 물고기는 “베드로의 물고기(Peter’s Fish)”로 알려져 오늘날 갈릴리 호수 가에 있는 식당에서 가시가 많고 별다른 맛이 없는 생선이지만 비싼 값에 관광객들에게 팔리는 물고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 시대,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식사는 빵과 물고기였습니다. 예수님이 5,000명의 군중에게 먹을 수 있도록 기적을 베풀어 주셨을 때 사용되었던 “다섯 개의 빵조각과 두 마리의 물고기”는 작은 아이의 하루 식사였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이적을 보여 달라고 할 때 예수님은 요나와 큰 물고기의 이야기를 인용하시면서
구원자이신 하나님은 요나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사흘 만에 부활할 것임을 미리 예표로 보여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2:38~40) “그 때, 몇몇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에게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악하고 죄 많은 이 세대가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한다. 그러나 예언자 요나의 증거 외에는 보여 줄 것이 없다. 요나가 삼 일 낮, 삼 일 밤 동안 꼬박 커다란 물고기 뱃속에 있었듯이, 인자도 삼 일 낮, 삼 일 밤 동안 땅 속에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갈보리 바위 산위에서 십자가의 피를 흘리심으로 돌아가신 후에 베드로는 자신의 옛 직업인 어부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밤이 새도록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물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일을 기억해 내고서는 “주님이다!”라고 외쳤던 일이 갈릴리 호수에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이 새도록 물고기를 잡고 있었던 제자들을 위하여 예수님은 생선을 구워 놓고 빵을 준비하여 아침상을 차려주셨습니다.

갈릴리 호수가의 도시인 가버나움에서 성전세를 걷는 사람이 베드로에게 와서 성전세를 납부하지 않았다고 할 때, 갈릴리 호수에서 잡힌 물고기의 입에서 은돈 하나를 얻어 성전세를 내었던 이야기, 이렇게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야기 중에는 물고기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ΙΧΘΥΣ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헬라어의 머리글자를 인용하여 단어를 만든 “물고기(ΙΧΘΥΣ)”는 1세기 로마의 카타콤(Catacombs)의 프레스코 벽화에서 발견된 후, 고대 그리스도인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Symbol로서의 이 물고기에 대한 언급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가 저술한 파이도고구스(Paedogogus ;교사, III ,xi)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물고기는 헬라어로 잌투스(ΙΧΘΥΣ)로서 “예수(Ιησoυs), 그리스도(Χριστοs), 하나님(θεοs), 아들(Υιοs), 구세주(Σωτηρ)”의 첫 머리 글자를 인용하여 만든 글자인데, 그 뜻이 “물고기(ΙΧΘΥΣ)”라는 글자와 일치하기 때문에 이 그림이 그리스도인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물고기 모양은 오늘날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 되었듯 초대교회에서 기독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근래에 와서도 역시 이 상징물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 거의 모든 초대 그리스도인의 가족 무덤에는 빠지지 않고, 물고기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초대 교회시대에(AD 64년부터 250년간)로마는 교회를 향하여 큰 박해를 가하였습니다. 이때에 사람들은 이러한 박해를 피하여 지하 공동묘지인 카타콤 등에 숨어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카타콤()은 외부인들이 익숙하지 못한 장소로서 비록 그들이 카타콤 내부에 들어온다 할지라도 출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진 곳으로서 현지의 지리에 익숙한 기독교인들이 숨기에는 가장 적당한 곳이었습니다.

물고기 153 마리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들이 미로에서 길을 찾는 표식이 바로 물고기 모양이었습니다. 물고기 그림의 몸통에는 “ΙΧΘΥΣ” 라는 글이 쓰여 졌는데 이 미로와 같은 동굴 길에서 물고기의 머리가 향하는 방향을 따라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예배장소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박해가 한창일 때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서로의 신분을 은밀하게 밝히기 위하여 “물고기(ΙΧΘΥΣ)”를 나타내는 그림을 그려 보이거나 물고기 모형의 조각품을 소지하고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물고기 그림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신분을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리는 일종의 암호였습니다. 한 그리스도인이 물고기의 반을 그려 놓으면 다른 사람이 나머지 절반을 거기에 그려 넣음으로서 서로가 한 신앙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던 것입니다.

또 이렇게 물고기가 그리스도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신약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여러 사건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림으로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낚은 일(요한 6:1-13),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과 함께 고기를 구워먹은 일(요한 21:1-13), 성전세를 낼 돈이 없어 예수님의 일행이 곤궁에 빠졌을 때 시몬 베드로가 물고기의 입에서 금화를 찾아낸 이야기(마 17:24-27)등 입니다.

(마가 1:19)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실 때에 그들은 고기잡이를 모두 마치고 그물을 정리하면서 깁고 있었습니다. 이 때 사용된 “그물을 깁다”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카타르티조(καταρτίζω, katartizo)” 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이 말은 “완전하게 하다.”, “교회를 온전케 하다.” 혹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다.”라는 말로 사용되었던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마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도록 하여라.”

(벧전 5:10 앞) “힘든 고난은 잠시 동안입니다.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바르게 세우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뒤에서 받쳐 주시고 든든하게 세워 주셔서, 결코 넘어지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히 13:21) “바로 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좋은 것들을 내려 주셔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을 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안에서 그의 기뻐하시는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길이길이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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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데에 그물을 던지고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물고기를 잡았을 때의 “고기를 잡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받아들이는 전도를 의미하는 말이며,  “그물을 깁는다.”는 것은 그물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하는 필수적인 보수 작업이며, “성도(교회)를 온전하게 하다.”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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