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12. 속죄일 (Yom Kippur)

* 속죄일(Yom Kippur)

9월 29일이나 30일에 “나팔절”이라고도 불리는 “로쉬 하샤나(새해)”로부터 시작하여, 10월 8일경에는 “속죄일”이라고 불리는 “욤 키푸르”, 그리고 5일이 지나면 “초막절”이 시작되며, 초막절이 끝이 나면서 성전 시대에는 Tishrei 월의 22 번째 날(2015년에는 10월 4일이었다.)에 “쉬미니 아쯔레트(Shemini Atzeret (שְׁמִינִי עֲצֶרֶת –”Eighth day of Assembly”)”라고 불리는 화제를 드리고 토라를 읽었습니다. (Simchat Tor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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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는 이 3 절기를 반드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지키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 성과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린 이후와 로마가 제 2의 예루살렘 성전이었던 헤롯 성전을 완전히 파괴시켜버린 이후부터, 디아스포라가 되어 세계 각처를 떠돌면서 살고 있었던 유대민족은 해마다 유대 절기를 타국에서 지내면서 “내년에는 예루살렘의 예루살렘 성전에서 절기를 지키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10월이 되면 각처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많은 유대인 때문에 호텔비가 몇 배씩 올라간다고 합니다.

대제사장이 어린 양의 피를 가지고 1년에 한 번 들어가서 자신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는 날이었던 속죄일(욤 키푸르)이 되면, 지금은 예루살렘 성전이 이미 파괴되어 없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기도와 구제 그리고 율법이 명령하고 있는 행위적인 선행을 행함으로써 성전에서 드리는 희생 제사를 대체하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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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도 속죄일이 되면 옛 예루살렘 성전의 서쪽 벽이었던 “통곡의 벽”에는 여러 가지의 종교적인 행사들이 벌어지는데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까지 신발을 신지 않고 통회하며 기도하는 유대인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속죄일(Yom Kippur)에 “카파롯트(kapparot ; symbolic “atonement”)”라고 하는 속죄의식이 행하여지는데, 이와 같은 행사는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성전이 없어졌기 때문에 희생 제사는 드리지 못하지만 양과 염소 대신에 닭을 잡아 번제를 대신하여 드리게 되는 속죄 의식입니다.

닭을 죽이기 전에 기도문을 읽으면서 닭을 머리 위에서 3 바퀴 돌린 다음에 닭을 죽이는 의식입니다. 이와 같은 의식은 죄 때문에 죽어야할 나(제사를 드리는 사람)를 대신하여 닭이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에 속죄 의식을 드리면서 죽은 닭의 고기들은 주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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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일 당일이 되면 공공 차량을 제외한 모든 차량의 운행이 중단되며, TV 방송도 송출되지 않으며, 동네로 들어가는 어귀들도 차량들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전면 차단되게 됩니다. 이때에 어린 아이들은 텅 비어있는 도로에서 자전거를 마음대로 타면서 즐거워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카파로트 의식은 새해가 되는 날(Rosh Hashanah)과 속죄일(Yom Kippur)의 사이가 되는 때, “회개의 십 일(the Ten Days of Repentance)의 의식으로 치러집니다. 그러나 가장 절정이 되는 시간은 속죄일에 해가 뜨기 바로 직전입니다.

카파로트 의식을 치르는데 닭을 사용하는 데에는 몇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아람어(Aramaic)로 수탉을 “Gever”라고 하는데 이 “Gever”는 히브리어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Gever(아람어로 수탉)”을 “Gever(히브리어로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죽게 하는 제물(동물)로 사용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수탉이 비싸지 않게 흔히 구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카파로트의 제물로 삼은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수탉이 성전(the Holy Temple)에서 제사를 드릴 때 제물로 사용되지 않았던 동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이 이미 무너지고 없기 때문에 성전에서 제물로 사용되지 않았던 동물을 제물로 대신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카파로트 의식에 사용되는 수탉은 (이사야서 1장)의 말씀에 의하여 하안 색 수탉입니다.

(이사야 1:18) “여호와의 말씀이다. “오너라, 우리 서로 이야기해 보자. 너희 죄가 심하게 얼룩졌을지라도 눈처럼 깨끗해질 것이며, 너희 죄가 진홍색처럼 붉을지라도 양털처럼 희어질 것이다.”

남자는 수탉은 취하고 여자는 암탉을 취합니다. 그리고 각자 따로따로 한 마리씩 취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가난하여 닭을 살 수 없는 형편일 경우에는 그 닭을 여러 번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모인 무리들 돌아가면서 그 닭을 사용하지만, 다른 무리들을 위해서 재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한 가족이 한꺼번에 카파로트 의식을 행할 때에는 남자들을 대표하여 수탉 한 마리를 그리고 여자들을 대표하여 암탉 한 마리, 이렇게 두 마리를 의식의 제물로 사용합니다.

만약에 임신을 한 여성이 카파로트 의식을 행할 때에는 3 마리의 닭(2 마리의 암탉, 1 마리의 수탉)을 사용합니다. 1 마리의 암탉은 여성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암탉 1 마리와 수탉 1 마리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암탉과 수탉을 1 마리씩 사용하는 이유는 태어날 아기가 남자 아이인지, 여자 아이인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난하여서 닭을 3 마리를 구할 수 없는 형편이면 암탉 1 마리를 앞으로 태어날 여자 아이와 겸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인정되어 암탉 1 마리와 수탉 1 마리, 이렇게 2 마리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또 만약에 닭을 살 형편이 되지 못한다면, 다른 새 종류(kosher fowl)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둘기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비둘기는 성전에서 제물로 드렸었던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살아 있는 물고기의 머리를 잘라서 의식을 행하기도 하며, 닭 한 마리에 해당하는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구제를 하는 방법으로 카파롯트(kaparot) 의식을 행합니다.

카파로트 의식은 다음과 같은 순서에 의해서 진행됩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사람의 자녀들…”이라고 말하면서 닭을 손으로 들어 올립니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교환물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닭을 잡은 손을 머리 위에서 한 번 돌립니다. 또 다시 “이것은 나의 대체물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닭을 잡은 손을 머리 위에서 또 한 번 돌립니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나의 속죄물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세 번째로 머리 위에서 돌립니다.

이런 방법으로 2 번 더 하게 되므로, 모두 아홉 번 닭을 잡은 채 머리 위에서 돌리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닭 위에 두 손을 올려놓고 성전에서 번제를 드릴 때와 마찬가지로 안수를 한 다음, 닭을 피 흘려 죽게 합니다. 흙을 한 움큼 취하여 피로 덮기 전에 축복의 기도문을 암송합니다.

“Baruch attah Adonai Eloheinu melech haolam, asher kidishanu b’mitzvotav v’tzivanu al kisui hadam be’afar.(축복하노라, 우주의 왕이시며, 그의 계명과 땅과 함께 피로 덮으심으로 우리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

만약에 닭을 잡아서 들어 올리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다른 사람이 대신하여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라고 할지라도 그 자신의 속죄를 위하여 전통적으로 카파로트 의식을 행하여야만 했는데 그의 부모가 어린 아이가 “이것이 나의 교환물입니다.”, “이것은 나의 대체물입니다.”, “이것은 나의 속죄물입니다.”라는 말을 하는 동안 어린 아이의 머리 위에서 닭을 잡아 돌릴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카파로트(kapparot) 의식은 의미적으로 사람들의 죄를 닭에게 전가시켜서 죽게 함으로 속죄의 제사를 의미하는 관습입니다. 이 카파로트 의식은 속죄일 바로 전에 행하는 일종의 제사 의식과 같은 의식인데, 이때에 성경의 (이사야서 11:9)과 (시편 107:10), (시편 107:14), (시편 107:17~21) 그리고 (욥기 33:23~24)을 암송합니다.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속죄일에 행하는 카파로트 의식은 율법서(Torah, 모세 5경)이나 탈무드에서 언급되어 있지 않은 속죄의식입니다. 이 카파로트 의식은 AD 9세기경에 율법학자들에 의해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유대교 백과사전에 의하면 Rabbi Solomon ben Abraham Aderet과 같은 유대교의 랍비를 비롯한 많은 현자들이 이와 같은 속죄 의식을 강하게 반대하였다고 합니다.

유대교의 랍비들은 사람들이 속죄의식을 잘못 이해할까 하고 걱정하여 반대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죄를 새에게 뒤집어씌운 다음 죽임으로써 죄의 문제를 해결하였다는 믿음이 그들이 가르치고 있었던 내용과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사람들의 죄가 씻어졌다면 “Yom Kippur”과 같은 “속죄의 날”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13 세기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속죄 의식은 미신이라고 여겨져 왔으며, Ramban과 Rabbi Joseph Caro와 같은 유대교 랍비들은 이러한 관습은 이교도로부터 유대교에 흘러들어온 것으로써 유대인들이 금해야할 “바보 같은 관습”이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신비주의자들이었던 랍비 Isaac Luria나 랍비 Isaiah Horowitz에 의해서 이러한 관습은신비한 의미가 있는 의식이라고 인정되면서 많은 유대인들에게 매력적으로 여겨지게 되었으며, 그러한 관습이 속죄일에 성전에서 드렸었던 속죄 제사를 대체하는 속죄 의식으로써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1년을 주기로 돌아가는 7개의 절기가 (레위기 2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절기들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절기는 “속죄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절기는 다른 절기와 달리 이때에 드리는 희생제사는 500명의 제사장의 도움을 받으며 대제사장이 직접 주관하는 것이 특이합니다.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죄 사함을 위한 번제의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예루살렘의 성전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에 성전에서 이와 같은 속죄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었지만, 성전 시대 그 당시에는 속죄 제사가 있은 후 이때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1년의 이스라엘의 운명이 이 날 대제사장 한 사람의 어깨에 달려있었습니다. 하나의 순서라도 뒤바뀌면 희생제사는 무효가 되기 때문에, 대제사장은 속죄일이 되기 1주일 전부터 예루살렘에 있는 자신의 집을 떠나 성전의 제사장의 뜰에 있는 대제사장 전용 집무실에서 기거하며 속죄일에 이루어질 희생제사의 순서를 철저히 복습하고 리허설을 하였습니다.

속죄일의 번제 제사는 대제사장이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허물로 인한 죄 사함을 위한 희생제물의 피를 들고 성소 안에 있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유일한 날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이 속죄일의 번제 제사를 위하여 아브라함의 천사가 내려와서 중요한 제사를 주관하는 대제사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돕는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9:6~7) “이 모든 것이 성막 안에 준비되어 있어서 제사장들은 언제나 첫 번째 방에 들어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방에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또 대제사장도 피 없이는 결코 그 곳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 피를 자기 자신과 백성의 죄를 위해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모르고 지은 죄를 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신성한 속죄일에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 등, 몇 가지가 금지됩니다. 그 중의 한 가지가 가죽신을 신는 일입니다. (이 외의 금지사항들은 목욕, 음식 먹는 일, 성적 쾌락 등입니다.)

옛날에는 가죽 의복을 사치로 여겼으므로 속죄일을 “고통의 날(레 23:27)”로 보내기 위해서는 가죽신을 벗고 그 대신에 고무로 만든 신이나 캔버스 운동화(천으로 만든 운동화)를 신는 풍습이 생겨났습니다.

유대교에 있어서 종교적인 의무를 지키는 것은 엄중한 일이지만, 만약 그것이 건강을 위협하는 일이라면 지키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속죄일에 금식하는 일도 바로 그러한 경우에 해당됩니다.

유대교의 계명들은 생명을 위태롭게 해가면서 지켜야 하는 계명은 없습니다. 따라서 의사가 건강 상태에 따라 속죄일에 음식을 먹도록 권한다면 음식을 먹는 것이 좋습니다.

콜 니드레(Kol Nidre, 속죄일 전야)는 유대 절기가운데에서 아주 특별한 밤입니다. 이 밤이 얼마나 거룩한지 강조하기 위해서 유대인들은 어두운 밤인데도 불구하고 기도 숄(탈릿, talit)을 씁니다.

유대인들이 기도 숄을 쓰는 정확한 시간은 해지기 전의 낮 동안뿐입니다 왜냐하면 기도 숄을 쓸 때는 축복기도문을 낭송할 때인데 전기가 없던 옛날에는 밤에 그것을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흔히 “알 헤트(Al Chet, 죄를 위하여)”라고 부르는 죄의 고백(Confession of Sins)은 여러 가지 죄를 나열해 놓은 긴 목록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알 헤트”를 낭독하다가 “죄를 지었다”라는 구절이 나오면 오른손을 쥐고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을 쳤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회개하는 마음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샴누(Ashamnu, 우리는 죄를 지었다) 기도”를 낭독할 때에도 같은 방법으로 가슴을 칩니다.

속죄일에는 성서의 “요나서”를 낭독하는데, 이 요나서가 속죄일의 오후 예배(Mincha) 때에 낭독하는 “하프타라(haftara)로 선택되었기 때문입니다. 요나서가 속죄일의 예배에 적합한 또 다른 이유는, 사람이 악한 길(자기 멋대로 하는 일)을 떠나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인다는 주제와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는 속죄일의 주제가 서로 맞아떨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속죄일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예배인 “네일라(Neila) 예배”가 끝나면 금식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쇼파(shofar, 양각나팔) 소리가 길게 한 번 불게 됩니다. 긴 나팔소리는 긴 기도의 날을 보내면서 더욱 성장한 예배자들의 영성을 축복하고, 동시에 금식을 마친 사람들에게 한 해 동안 더욱 의미 있는 생활을 하도록 촉구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속죄일 금식을 마치게 되면 청어(Blue Fish)를 먹는 관습이 있는데 그 이유는, 속죄일에 24시간 동안 금식하면서 물을 전혀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러 약간의 소금기가 들어 있는 청어를 먹음으로 해서 갈증을 더욱 일으킴으로써 몸에 필요한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도록 유도하려는 의도 때문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사탄은 속죄일이 끝난 후에 유대인들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발버둥 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이제 속죄일이 끝났다”고 하며 잠시 나태해진 틈을 사탄이 이용하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유대인들은 스스로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하게 됩니다. 그래야 사탄이 유혹에 빠뜨리기 위한 그의 작전이 실패하였음을 인정하고 물러가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굳건히 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유대인들은 속죄일 다음날 새벽기도에 참석하곤 합니다.

일 년 중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날이 속죄일입니다. 이 날은 대제사장이 입고 있었던 화려한 대제사장복이 아닌 독특한 흰옷을 입는데 허리띠마저 흰색으로 일반 제사장들이 입고 있었던 흰 옷과도 달랐습니다.

흰 세마포로 만든 옷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는 속죄일에 요구되는 완전한 순결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손과 발을 씻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몸 전체를 정결 탕에 담그는 의식을 마치고 흰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레위기 16:4) “아론은 거룩한 속옷을 입고, 그 안에는 맨살에 모시 속옷을 입어라. 허리에는 모시 띠를 띠고, 머리에는 모시 관을 써라. 이것은 거룩한 옷이다. 그러므로 아론은 그 옷을 입기 전에 몸 전체를 물로 씻어라.”

선지자의 예언서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에서, 하나님 앞에 가까이 서 있는 자들이 늘 흰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도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슥 3:3~4)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었다. 여호와께서 자기 곁에 서 있던 다른 천사들에게 말했다. “저 더러운 옷을 여호수아에게서 벗겨 내라.” 그러고 나서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했다. “보아라. 내가 네 죄를 없앴다. 이제 너에게 새 옷을 주겠다.””

(단 10:5) “그 곳에 서서 눈을 들어 보니, 한 사람이 모시옷을 입고 있었고 허리에는 순금으로 만든 허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단 12:6) “한 사람이 모시옷을 입은 사람, 곧 강물 위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때까지 얼마나 더 있어야 합니까?””

속죄일의 제사

속죄일의 번제 제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제물로서 두 마리의 염소(양)을 선택하여 제단으로 끌고 와서 여호와를 위한 번제 제사를 위한 염소(서쪽), 아사셀을 위한 염소(동쪽)를 결정하기 위하여,
대제사장은 제비가 들어있는 항아리에 손을 넣고 운명적인 제비뽑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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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안에는 각각 “여호와를 위하여”, “아사셀을 위하여”라고 씌어있는 두 개의 제비가 있는데, 제비뽑기에 의해서 피 흘려 죽어서 지성소에까지 피가 뿌려지게 될 “여호와를 위한” 염소를 서쪽에 두게 되고 또 멀리 떨어져 있는 황량한 광야로 끌려가 놓임 받게 될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정해져서 동쪽에 놓이게 됩니다. 제비뽑기로 각각의 염소가 정해지면, 아사셀 염소는 “뿔”에, 여호와의 염소는 “목”에 붉은 색의 천을 묶음으로써 구분 짓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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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16:7~10) “그러고 나서 염소 두 마리를 여호와 앞, 곧 회막(성막) 입구로 끌고 가거라. 아론은 제비를 뽑아, 두 염소 가운데서 여호와께 바칠 염소와 아사셀에게 바칠 염소를 정하여라. 아론은 제비를 뽑아 여호와께 바치기로 정해진 염소를 속죄 제물로 바쳐라. 제비를 뽑아 속죄의 염소로 정해진 다른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끌고 가거라.  제사장은 그 염소를 여호와 앞에 산 채로 두었다가 이스라엘의 죄를 씻는 예식에 써라. 그러고 나서 그 염소를 광야로 내보내어라.”

여호와를 위한 염소를 피 흘려 죽게 한 후 그 피를 가지고 대제사장이 성전의 가장 서쪽에 있는 거룩한 방인 지성소의 법궤 위에 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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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은 두 손을 아사셀을 위한 염소의 머리에 얹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낱낱이 고백합니다. 이후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성전의 가장 동쪽에 있는 “수산 게이트”를 통해 나와서 동쪽에 있는 황량한 유대 광야로 향하는 길고도 긴 여정에 오르게 됩니다. 마침내 황량한 광야의 무인지경에 이르게 되면 그곳에 아사셀 염소를 풀어주고 돌아옴으로써 아사셀 염소와 관련된 예식을 마치게 됩니다.

(레위기 16:21~22) “아론은 살아 있는 숫염소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고백하여, 그 죄를 숫염소의 머리에 두어라. 그리고 미리 정한 사람을 시켜 그 숫염소를 광야로 내보내어라. 그렇게 하면 그 숫염소는 백성의 모든 죄를 지고 광야로 나갈 것이다. 그리고 광야에서 멀리 떠나가게 하여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동쪽’에 있는 무인지경의 광야로 보내진 아사셀 염소와 도살되어 그 피가 ‘서쪽’의 지성소에 있는 법궤 위에 뿌려진 여호와의 염소, 이렇게 두 마리의 염소들은 각각 동쪽과 서쪽으로 향하면서 삶과 죽음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한 두 마리의 희생 염소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과가 “동(東)에서 서(西)가 멀리 떨어진 것처럼” 죄가 멀리 옮겨진 것을 상징하는 의식입니다.

(시편 103:12)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그분은 우리로부터 죄를 멀리 치우셨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속죄일의 제사에서 특이한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대제사장이 염소의 머리 위에 안수를 할 때,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게 될 여호와의 염소가 아닌 광야에 놓여 질 아사셀 염소의 머리 위에서만 행하게 되는 일입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지고 광야로 가게 될 아사셀 염소에게 대제사장이 안수하여(죄를 전가하여)멀리 보내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완전히 씻김 받은 게 아니라 일시적으로 유보된 것을 의미하는 의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희생 제물이 되셔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피 흘려 죽으심으로 단번에 영원히 해결하시게 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해마다 속죄일의 아사셀 염소 의식을 통해 이스라엘과 온 인류의 죄를 간과하시고 유보하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3:23~25)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시는 속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는 판단을 받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내어 주셨으며, 누구든지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지은 죄에 대해 오래 참으심으로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의로우심을 보이셨습니다.”

(히브리서 10:1~5) “율법은 앞으로 오게 될 좋은 것들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참된 것의 완전한 모양이 아닙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은 해마다 똑같은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 제사를 가지고 예배드리러 나오는 사람들이 완전해질 수는 없습니다. 만일 율법이 그들을 완전하게 할 수 있다면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깨끗하여져서 더 이상 죄의식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며, 제물을 드리는 일도 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는 해마다 자기의 죄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것은 황소나 염소의 피로는 죄를 깨끗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나를 위해 한 몸을 예비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에게 세례를 받고 나아오는 예수님을 향하여 속죄일의 아사셀 양(염소)와 관련된 표현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요한복음 1:29~31) “다음 날, 요한은 자기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이분이 바로 내가 ‘내 뒤에 오시지만, 그분이 나보다 더 위대하신 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존재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분입니다. 나도 이분이 누구신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물로 세례를 주러 온 이유는 이분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무인지경인 광야에 버려졌었던 아사셀 염소가 예수님 당시에는 유대 광야에서 가장 높은 삼으로 알려진 “몬타르 산(Har Munttar)”의 높은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이는 방법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아사셀 양의 처리 방법이 바뀌게 된 이유는, 광야 시대에는 염소를 멀리 보내 버린 후에, 이스라엘 민족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길을 잃고 광야의 짐승들에게 죽게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난 후 부터는 무인지경의 광야에 버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근처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던 마을로 되돌아오게 되는 경우가 많아짐으로 다른 방법이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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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bal Munttar (사해가 내려다 보이는 몬타르 산)

이 때 붉은 실타래를 아사셀 염소의 뿔과 바위 사이에 묶고, 염소의 눈을 가린 다음에 뒤로 밀어서 떨어뜨림으로 염소가 느낄 공포감을 최소화하였다고 합니다. 이 때 염소가 떨어져 죽고 난 후 바위에 묶여서 남아 있었던 붉은 실타래가 흰색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이와 같은 일은 곧 백성들의 죄가 사해진 것을 의미했다고 합니다.

(이사야 1:18) “여호와의 말씀이다. “오너라, 우리 서로 이야기해 보자. 너희 죄가 심하게 얼룩졌을지라도 눈처럼 깨끗해질 것이며, 너희 죄가 진홍색처럼 붉을지라도 양털처럼 희어질 것이다.”

성전시대에는 속죄일 제사 의식을 모두 마친 후에는, 여자들이 흰옷을 입고 마을에 있는 포도원에 모여 큰 원을 만들면서 춤을 추며 노래를 했다고 합니다. 이는 죄가 깨끗하게 씻김을 받은 것에 대한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는 행사였습니다.

이 행사에는 젊은 남자들도 참여해서 구경을 했는데, 이곳에서 선남선녀들의 짝짓기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같은 지파 안에서의 결혼이 장려되었던 시대에,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의 포도원 축제에서는 어느 지파의 사람인가에 대한 구분 없이 각처에서 모여든 선남선녀들이 서로의 배우자를 찾을 수 있는 특별한 날이었던 것입니다.

(삿 21:16~21)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말했습니다. “베냐민의 여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소. 살아남은 베냐민 사람들에게 줄 아내를 어디서 더 얻을 수 있겠소?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문을 이어가기 위해 자녀를 가져야 하오. 그래야 이스라엘에서 한 지파가 끊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오. 그러나 우리는 누구든지 베냐민 사람에게 딸을 주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맹세했기 때문에, 우리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줄 수 없소.”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좋은 생각이 있소. 벧엘 북쪽에 있는 실로에서는 해마다 여호와의 축제가 열리오.  실로는 벧엘에서 세겜으로 가는 길의 동쪽에, 르보나 성의 남쪽에 있소.” 이스라엘 장로들이 베냐민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가서 포도밭에 숨어 있으시오. 실로에서 젊은 여자들이 나오는 것을 잘 지켜 보다가, 젊은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올 때, 포도밭에서 달려 나오시오. 그리고 각 사람이 젊은 실로 여자 한 사람씩을 붙잡아 베냐민 땅으로 가시오.”

사사기 말기에 베냐민 지파의 패역함으로 인해 일어났었던 이스라엘의 내전의 결과로 베냐민 지파는 600명만 남고 전멸 당하게 됨으로써 자칫 한 지파가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장로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길르앗 야베스에서 400명의 처녀를 충당하고, 나머지 200명은 실로의 포도원 축제에서 처녀 서리(?)를 함으로써 충당하였던 일이 있었는데, 여기에 나오는 실로의 포도원 축제 역시 속죄일의 제사 의식이 모두 끝난 후에 있었던 행사였습니다.

속죄일과 금식

속죄일과 관련된 성전시대 유대인들의 공통된 의무에는 “금식”이 있었습니다. 속죄일의 금식은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유일한 공식적인 “금식의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단순하게 “금식하는 절기”라고 표현하면 곧 속죄일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였습니다.

(행 27:8~9) “우리는 해안가를 따라 어렵게 항해하여 라새아라는 도시에서 가까운 ‘아름다운 항구’라 하는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시간을 많이 빼앗긴데다가 이미 금식 기간도 지나 더 이상 항해하는 것이 위험했으므로 바울이 그들에게 충고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고 있었던 시기는 속죄일 절기(금식하는 절기)인 일곱 번째 달(티슈레이 월, 10월)경이었는데, 지중해에는 이때부터 시작하여 12월까지는 풍랑이 거세었던 시기였으므로 로마시대에는 항해가 금지된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성서에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여 정해 주셨던 “금식의 날” 이외에도 이스라엘이 성전 파괴와 바벨론 포로 생활을 거치면서 복잡한 금식의 절기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이 파괴된 것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국가에 흩어져 포로생활을 하게 된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영적인 자각을 의미하는 행위로서 금식의 날들이 제정된 것입니다.

(스가랴 8:19)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다. 너희가 금식하기로 작정한 날, 곧 넷째 달과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과 열째 달의 금식하는 날이 유다에서 기쁘고 즐겁고 흥겨운 잔치가 될 것이다. 너희는 진리와 평화를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점차 “금식을 통한 회개”가 변질되고 바래지면서 “금식”이라는 종교적인 행위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의 포로들이 귀환한 이후에 활동했던 스가랴 선지자의 선포를 통해 볼 때, 이미 속죄일 이외의 4개의 금식일이 선포되었으며 보편적으로 지켜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추가되어 선포되어진 4개의 “금식의 날”은 그 날에 일어났었던 슬픈 기억들을 포함하고 있는 날이었습니다.

넷째 달의 금식: 유대력으로 넷째 달인 탐무즈 월 17일에 행하여지는 금식의 날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점령당한 날,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가지고 내려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우고 경배하였을 때 모세가 십계명을 던져서 깨뜨려 버렸던 날입니다.

다섯째 달의 금식: 유대력으로 다섯째 달인 아브 월 9일에 행하여지는 금식의 날입니다.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날, (민수기 14장)에서 언급되었던 내용으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이집트에서 나온 모든 백성이 광야에서 죽을 것이라고 선포된 날입니다.

일곱째 달의 금식: 유대력으로 일곱째 달인 티슈레이 월 2일, 미스바에서 그달랴와 동료들이 암살된 날(렘41:3)입니다.

열째 달의 금식: 유대력으로 열 번째 달인 테벳 월 10일,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 포위가 시작된 날입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에는 이와 같이 추가된 4개의 큰 금식일 외에도 22개의 추가적인 금식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에 있었던 이와 같은 금식들의 행위는 자신의 종교적 열심을 대내외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경건과 외식의 대표적 수단으로 사용된 것들이 많았습니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목요일은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시내 산에 올라간 날이고, 월요일은 율법을 받고 내려온 날이라고 하였는데, 예수님 시대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금식일 외에도, 유월절과 칠칠절 사이와 초막절과 수전절 사이의 기간 동안 월요일과 목요일의 주 2회를 추가적으로 금식하는 등의 “금식의 날들”을 지키며, 보통 사람들은 감히 흉내도 낼 수도 없는 종교적 열심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금식은 해가 지면서 다음날 해가 질 때까지 지속해야 했는데, 모든 음식과 음료수 일체를 금했다고 하는데,금식과 관련된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유행을 알고 복음서를 읽으면 예수님의 말씀을 보다 쉽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마 9:14~15) “그 때,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말했습니다. “우리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주 금식을 하는데,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전혀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텐데, 그 때는 금식할 것이다.”

(마 6:16~18) “금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초췌한 모습을 보이지 마라. 그들은 자신들이 금식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초췌한 모습을 드러내려 한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그들은 이미 자기의 상을 다 받았다.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렇게 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금식하는 것을 나타내지 말고 오직 숨어 계시는 아버지께만 보여라. 숨어서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갚아 주실 것이다.”

(누가 18:10~14) “두 사람이 기도하려고 성전에 올라갔는데, 하나는 바리새파 사람이고, 하나는 세리였다.
바리새파 사람이 서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저는 다른 사람 즉 사기꾼, 죄인, 간음을 행하는 자와 같지 않고 이 세리와 같지 않은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며 모든 수입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한편,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말했다. ‘하나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사람이 저 바리새파 사람보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없는 현대 이스라엘에서도 속죄일만큼은 “안식일 중의 안식일”로 불리며, 가장 거룩한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정통파 종교적인 유대인들이 몰려 사는 마을에 차량 운행을 금지하여 차량 통행을 막고 있는 Barricade가 설치되며, 응급 환자를 실어 나르는 응급차량 이외에는 아무런 차량의 운행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날은 각 가정의 어린이들이 자전거를 끌고 나와 모든 도로를 점유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날만큼은 많은 세속적인 유대인들도 회당에서 회개기도를 드리며, 24시간 금식에 동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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