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6. 다윗의 망대 (Tower of David)

다윗의 망대 (Tower of David)

예루살렘 옛 시가지 성벽의 자파 문의 남쪽 성벽 위에 있는 이 망대는 유대인들이 BC 2세기에 처음 망대를 세운 것입니다. 그 후에 기독교도, 아랍, 맘룩(Mamlukes), 오스만터키 제국 등 예루살렘을 통치한 여러 세력들이 이곳을 군사적 요새로 활용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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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4,000년 예루살렘의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정리하여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습니다. 입구의 영상실에서 동영상을 통하여 설명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가나안 시대부터 제 1 성전시대, 제 2 성전시대, 로마 통치시대, 비잔틴 시대, 십자군 시대, Mameluk 시대, 오스만 터키 시대, 영국통치시대, 이스라엘 국가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 별로 예루살렘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장의 옥상에 마련되어 있는 전망대를 통하여 고색 찬란한 옛 예루살렘과 신시가지의 스카이라인 그리고 힌놈의 골짜기가 한 눈에 들어오는 경치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수시로 미술 전시회가 있고 월요일, 수요일, 목요일, 토요일 밤 7:00(겨울)에는 “Jerusalem Light the Night”이라는 레이저 빔으로 Light Show가 펼쳐집니다. 이스라엘 군대와 블레셋 군대가 전투하는 모습, 다윗 왕이 하프를 연주하는 모습, 로마 군사와 오스만 터키 군사들이 마치 전쟁을 하면서 뛰어 다니는 장면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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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135년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예루살렘 성을 로마의 도시 아우렐리아 카피톨리나로 바꾸어 버렸을 때,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서 무너져 버린 원래의 탑이 있던 자리에 11세기에 십자군에 의해서 다시 세워졌습니다.

이렇게 십자군이 다시 건축한 이 탑을 우스만 터키의 슐레이만 대제가 예루살렘 성의 성벽을 재건할 때, 많은 부분을 손질하였습니다. 원래의 망대 자리는 헤롯 대왕이 그의 동생을 위하여 탑을 쌓았던 자리였는데, 이 망대에 “다윗의 망대”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다윗의 시대에 세워진 망대라는 의미가 아니라 군사적, 행정적인 중심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다윗의 망대는 예루살렘 구시가지(Old City)의 자파 문(Jaffa Gate) 옆 성벽에 위치한 요새와 망루를 가리키는 곳입니다. 아랍어로는 부르즈 다우드(Burj Daud)라고 부릅니다.

다윗의 망대는 예루살렘의 방어를 위해 가장 전략적인 장소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고학적 유물의 연대는 BC 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새와 망루가 본격적으로 세워진 것은 BC 2세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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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에 그려진 다윗의 망대

BC 2세기에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오늘날 서쪽 언덕(Western Hill)으로 불리는 지역까지 확대되었으며, 여기에는 오늘날의 아르메니안 지구와 시온 산(Mount Zion)으로 알려진 유대 지구가 포함됩니다. 그 후 히스기야(Hezekiah, BC 715 혹은 716-687 재위)왕이 773 m에 달하는 북서쪽 언덕 위의 성벽을 경계로 하여
최초의 요새를 쌓았으며, 헤스모니안 왕조(Hasmonean dynasty, BC 140-37)시기에 요새 가장자리에 망대 여러 개가 세워졌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고대 역사학자 요세푸스 플라비우스(Josephus Flavius, AD 37-100)의 기록에도 나타나있습니다.

헤스모니안 왕조를 멸망시킨 헤롯(Herod, BC 73-BC 4 재위) 왕은 BC 37년부터 약 3년에 걸쳐 예루살렘의 방어 및 시온 산기슭에 위치한 왕궁 보호를 위해서 세 개의 거대한 망대를 이 요새에 건설하였습니다.

헤롯 대왕은 약 44 m에 달하는 가장 높은 망대를 자신의 형의 이름을 따서 파사엘(Phasael)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다른 망대는 그의 두 번째 부인의 이름을 따서 미리암(Miriam)이라 불렀으며, 그녀의 사후에 망대의 서쪽에 매장하였습니다. 세 번째 망대는 헤롯 대왕의 친구의 이름을 따서 히피쿠스(Hippicus)로 불렀습니다. 이 세 망대 중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것은 파사엘 망대뿐입니다.

AD 70년에 로마가 예루살렘을 정복한 뒤에 다윗의 요새는 로마군 병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승인한하였던 4 세기 이후로는 수도사 공동체가 망대에 기거하였습니다.

아랍인이 638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한 뒤, 무슬림 지도자들이 다윗의 망대를 보수했으며, 이 다윗의 망대의 구조가 매우 견고해서 1098년에 있었던 십자군 공격을 막아내기도 하였습니다. 십자군 통치기간 동안에 십자군은 다윗의 요새 외벽에 해자를 만들었으며, 이곳을 거점으로 하여 자파 문을 통과하는 순례객과 대상(상인들)들을 통제하였습니다.

1187년에 살라흐 앗딘(살라딘)이 예루살렘과 다윗 망대를 점령하였습니다. 그 후 1260년에 맘룩에 의해 망대가 파괴되었으나 오스만터키 제국이 1537년부터 1541년에 걸쳐 재건하였습니다. 이렇게 요새가 재건된 이후 약 400년 동안 이곳은 오스만터키 제국 군대의 병영으로 사용되었으며, 당시에 세워진 이슬람 사원과 첨탑이 현재까지 남아있습니다.

오스만터키 제국이 제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뒤 영국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되었으며, 영국 행정당국은 예루살렘의 역사적 유산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다윗의 망대를 보수하고 복원하였습니다. 1930년대에 다윗 망대 내에 팔레스타인 민속박물관이 개관되었습니다.

1948년 제 1차 중동전쟁에서 요르단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다윗 망대를 군사적인 용도로 활용했으나, 1967년에 제 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통치하면서 다시 문화적 기능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오늘날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명소로서, 내부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을 함께 들러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예루살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전경을 두루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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