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0. 헤롯 성전의 서쪽 문들

헤롯 성전의 서쪽에 있는 성전 문들

로마 지배 아래에 있었던 헤롯 대왕 시대(37 BC – 4 BC)에 헤롯 대왕은 유대의 3 대 절기에 많은 사람들이 성전에 나와서 제사를 드리면서 예배할 수 있도록 예루살렘의 제 2 성전을 크고 웅장하게 증축하였습니다. 헤롯 대왕은 여러 곳에 문들과 성전으로 들어 올 수 있도록 육교(다리)들을 건설하였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증축을 해오면서 드디어 완성을 하게된 헤롯 성전은 로마를 대항하는 유대인들의 폭동이 있었던(70 AD) 그때에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 군대에 의해서 헤롯 성전의 문들과 다리들은 허물어지고 폐쇄되어 버리면서 땅 속에 묻히거나 잊어지고 말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19 세기에 이르러서부터 발굴 작업이 진행되기 시작하였고, 이때부터 헤롯 성전의 문들과 많은 폐허들이 되살아나기 시작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유대인대로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 성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으며,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도들대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찾기 위하여 노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문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AD 1 세기의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에 의하면, 예루살렘 성전의 서쪽 벽에는 4 개의 성전 문이 있었습니다.

South-West bridge : 로빈슨 아치(Robinson’s Arch)
Western bridge: 윌슨 아치 (Wilson’s arch)
Warren’s Gate (윌슨 아치 북쪽의 40 m, 서쪽 벽에 있는 터널 부분)
Barclay’s Gate (성서학자들에 의해서 Kiphonus (rose garden) Gate로 알려져 있는 문)입니다.

그리고 그 밖에도, 동쪽으로는 South-Eastern bridge, 황금 문, Shushan Gate (황금 문 부근 어느 곳에 있다고 전해지는 문), 남쪽으로는 Hulda Gates가 있으며, 북쪽으로는 성벽의 북쪽 어느 곳에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2 성전 시대에 완전히 막혀서 찾을 수 없는 Tadi Gate 등입니다.

로빈슨 아치(Robinson Arch)

“Robinson arch”는 성전 산과 성전 밑에 있었던 곳을 연결하여 주기 위하여 건설된 육교인데, 계단으로 올라가서 성전으로 올라갈 수 있었던 다리(육교)였습니다. 이 Robinson arch는 성전의 남서쪽에 있었던 문으로 연결시켜주고 있었던 육교입니다.  이 Robinson이라는 이름은 1838년에 이 곳이 성전으로 들어가는 육교였다는 것을 발견한 고고학 발굴가 Edward Robinson의 이름을 본 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로빈슨 아치의 1898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838년 Edward Robinson이 성벽에 돌출된 부분이 육교의 한 부분이었음을 밝혀 냈습니다.

위 사진은 1838년 미국의 에드워드 로빈슨이 통곡의 벽 남쪽 연장선상에서 발견한 돌출구조물(높이 15 m,폭 12 m)로서 당시의 사람들은 지진으로 인하여 헤롯의 서쪽 축대의 돌이 튀어나온 것으로 생각해왔지만, 에드워드 로빈슨은 헤롯 성전에 있었던 성전구조물로 생각하였으며, 마침내 성전 문으로 연결되는 아치 구조물(Robinson’s Arch)이었음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robinson arch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948년에 독립하게 된 이스라엘이 1967년 6일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어 이곳을 이스라엘이 얻게 되자 발굴 작업을 통하여 로빈슨 아치의 밑 부분을 발굴하게 되었습니다.

발굴 작업의 결과로서 이곳은 로마병사들에 의해 파괴되었던 아치형 다리의 잔해를 확인하게 되었는데, 마침내 로빈슨의 생각이 옳았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지금은 이곳의 땅속에서 로마 군병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할 때 성전 벽 이래로 던져 버린 돌들로 인하여 땅속에 묻혀 버렸던 상점들과 도로들 등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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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클레이 문 (Barclay’s Gate)

Barclay's Gate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통곡의 벽의 여성들이 기도하는 곳(통곡의 벽 여성 구역)과 Mugrabim (North-African) Gate 사이에 있었던 성전 문입니다.

19 세기가 끝나갈 무렵 미국의 영사관으로 근무하면서 성전 산을 연구하던 Barclay에 의해서 발견되어 그의 이름을 인용하여 Barclay Gate라고 불렀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성전 문이  AD 2 세기의 미쉬나(Mishna)에서 언급되었던 Kiphonus(rose garden) Gate라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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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사진에서 설명한 것처럼, 약 50 톤 정도 되는 문 위를 받치고 있는 7 m X 2 m 크기의 문 위에 놓인 돌(lintel)이 문 위에 있었고, 그 밑에는 작은 돌들로 채워서 막아 놓은 곳은 문틀(door-post)이었으며, 문의 크기는 폭이 약 5.6 m 정도이고, 높이는 약 11.2 m 정도이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땅속에 묻혀 있습니다.  이곳을 발굴하는 작업이 2009년에 시작되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윌슨 육교(다리) (Wilson Arch)

또 다른 헤롯 성전의 육교가 1867년 영국의 탐험가 Charles Wilson에 의하여 통곡의 벽 부근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성전 산의 아래 부분(Lower City)에서 윗부분(Upper City)으로 연결되는 약 100 m 정도 되는 교량의 기초가 발굴결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wilson arch jerusalem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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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산의 서쪽 벽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아치는 약 13 m의 폭이었고 지금은 통곡의 벽 회당의 기도하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는 곳입니다.

Charles Wilson의 발굴 단원이었던 Charles Warren은 통곡의 벽 밑을 조사하기 위해서 아치의 밑 부분을 파들어 가다가 두 개의 수직 축(vertical shafts)과 수평으로 터널이 있었음을 발견하였고, 이 터널은 헤롯 성전의 서쪽 벽 보다 8 m 정도 위에 커다란 기초 돌을 놓아서 세워서 만든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Warren shafts(워렌 축)”은 헤롯 성전의 대부분의 돌들과 같이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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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슨 아치의 다른 끝 부분은 통곡의 벽에서 조금 떨어진 곳, 지금 현재 통곡의 벽으로 가는 북쪽 입구로 사용되는 곳에 있습니다. 이 아치는 아마도 헤롯 성전 시대에 건설되었던 곳에 아랍 시대(AD 8세기~11세기)에 재건된 것 같으며, 바닥에 깔려 있는 돌길은 로마/비잔틴 시대(AD 2세기~6세기)에 아치 밑으로 깔았던 로마식 길인데, 이 길은 다메섹 문의 북쪽에서 분 문(Dung Gate)로 연결되어 있었던 길입니다.

워렌 게이트 (Warren’s Gate, 지성소를 향하여 있었던 성전 문)

윌슨 아치(Wilson’s Arch)로부터 북쪽으로 약 40 m 가량 떨어져 있으며 현재 땅속에 있는 Warren’s Gate는 헤롯 성전 시대의 위에 있었던 도시의 길 높이에 맞추기 위하여 성전 바닥의 높이에 맞추어 세웠습니다. 즉, 현재에는 땅속(Western Wall Tunnel)에 있는 문입니다.

Warren's Gate jerusalem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Charles Warren에 의해서 1867년에 처음으로 발견된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지성소를 받치고 있었던 초석을 마주 보게 됩니다. 이 Warren’s Gate는 서쪽 벽 터널(Western Wall Tunnel) 안에 있습니다.

남쪽 성전 문들 ( Hulda Gates)

성전 산의 남쪽에 있었던 문을 “Hulda Gates”이라고 불렀었는데, 이 훌다 문은 두 개의 서로 다른 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편에 있었던 문은 3 개의 아치로 된 문이었는데 이 문은 성전으로 “올라가는 문”이었고, 서편에 에 있었던 문은 2 개의 아치로 된 문이었는데 이 문은 성전에서 “나오는 문”으로 사용되었습니다.

The southern wall of the Temple Mount--Har Habayit.The triple Hulda Gates that led up to the Temple Mount Plaza are in the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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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의 아치로 된 동편 문은 15 m 정도의 넓이로 세워졌고 기둥은 장식된 기둥이었지만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 기둥은 없어지고 문은 돌로 막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서편에 있는 2 개의 아치로 된 문은 중세 시대에 성전 벽에 새롭게 건축된 건축물에 의해서 현재에는 대부분이 가려져 있습니다.

2 개의 아치로 된 성전 산의 문 위 오른쪽 부분에서 로마 시대에 세워졌었던 Antoninus Pius의 동상의 받침돌로 사용되었던 돌이 재활용되어 문을 막을 때 사용되었던 것으로써 막힌 문에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하드리안 황제가 AD 135년에 있었던 유대인 항쟁을 다스린 다음에 쥬피터 신전에 세웠던 동상들 중의 하나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 동상 받침대에 새겨 있었던 Hadrian’s inscription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TITO AEL HADRIANO To Titus Ael[ius] Hadrianus
ANTONINO AUG PIO the f[ather] of the f[atherland], pontif[ex], augur.
P P PONTIF AUGUR Antoninus Aug[ustus] Pius
D D D[ecreed] by the D[ecurions]

The Eastern Gate Temple Mount Wall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성전 산의 남쪽 벽을 수리할 때 글씨가 새겨진 동상의 돌 받침을 재활용하였기 때문에 글자가 거꾸로 된 채재 활용되어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곳에 하드리안 황제에 의해서 세워졌었던 쥬피터 신전은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제정하였던 콘스탄틴(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서 파괴되었는데 그 때 파편이 되어 방치되어 있었던 돌들을 무슬림들이 “바위의 돔”과 Al-Aqsa Mosque를 건축할 때 재활용되어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성전 동쪽 벽에 있었던 문 (The Eastern Gate Temple Mount Wall)

예루살렘 성전의 동쪽 문은 “황금 문(The Golden Gate)”입니다.  그리고 성전 산의 남쪽 방향으로 동쪽 끝에 아치로 된 계단을 통하여 들어 갈 수 있는 문이 하나 더 있었는데 이 문에는 성전 산으로 희생 제사를 드리러 가는 사람들을 문으로 안내하는 아치형 계단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의 구조물은 서쪽에 있었던 Robinson’s Arch와 비슷한 형식으로 건축된 것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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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 대왕이 스룹바벨 성전을 증축하면서 건설한 헤롯 성전의 성전 산 서쪽 벽에 길이가 32 m 되는 육교(다리)를 덧붙여서 건설하였다고 한 것인데 성전 벽의 서쪽의 아래 끝부분에 남쪽 벽과 만나는 곳에 있었던 Robinson Arch와 비슷한 형식으로 돌 계단으로 된 아치형 다리가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The Eastern Gate Temple Mount Wall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그러나 지금은 그 흔적 초차 없어지고 말았지만 벽부분에 다리가 걸쳐 있었다는 희미한 흔적만 찾을 수 있을 뿐입니다.  이곳은 문을 막아버리기 위하여 작은 돌들로 채워진 흔적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발굴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치로 된 이 다리를 건너서 성전 산으로 들어가게 되면  “솔로몬의 마구간(Solomon’s stables)”로 알려져 있는 지하의 넓은 Hall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벽의 밖으로는 다리가 연결되어 있어서 성전 산의 동쪽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계단을 통하여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 연결되었으며 이곳에서 키드론 골짜기로 내려 갈 수 있는 길도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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