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7. 라헬의 무덤(Rachel’s Tomb)

라헬의 무덤(Rachel’s Tomb)

1870년대의 라헬의 무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910년대에 촬영된 라헬의 무덤

구약 성서 창세기에 따르면 야곱과 라헬은 세겜으로부터 헤브론으로 가는 길에 있었던 마을, 지금은 베들레헴이라고 부르는 에브랏(Ephrath)으로 가는 길에서 야곱의 막내 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죽어서 그곳에 장사지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35:16~19 ) “야곱과 그의 일행은 벧엘을 떠나갔습니다. 그들이 에브랏에서 얼마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에 라헬이 아기를 낳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기를 낳는 고통이 너무나 컸습니다. 라헬이 아기를 낳느라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고 산파가 라헬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요. 또 아들을 낳게 될 거예요.” 라헬은 아들을 낳고 죽었습니다. 라헬은 죽어가면서 그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 아들의 이름을 베냐민이라고 불렀습니다. 라헬은 에브랏으로 가는 길에 묻혔습니다. 에브랏은 베들레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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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대에 촬영한 라헬의 무덤

1870년대의 라헬의 무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930년대에 촬영된 라헬의 무덤

1870년대의 라헬의 무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West-Bank지역의 분리장벽이 완성 되기 전에 볼 수 있었던 라헬의 무덤

1870년대의 라헬의 무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West-Bank지역의 분리장벽이 설치된 이후 라헬의 무덤(왼쪽에 분리장벽이고 오른 쪽이 라헬의 무덤)

분리 장벽과 라헬의 무덤

야곱 일행이 베델을 떠나 에프라타(베들레헴으로 가는 길)로 가면서 라헬이 해산을 하게 되었는데 산고가 심해 아들 베냐민을 낳으면서 숨을 거두었던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라헬은 죽기 전에 아이의 이름을 “벤 오니(내 슬픔의 아들)”라고 불렀으나 야곱은 불길한 이름 대신 “벤 야민(내 오른손 같은 아들, 즉 행복의 아들이란 뜻)”이라고 불렀습니다. 벤 야민은 야곱이 나이 들어 가나안에 들어와 낳은 유일한 아들이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에프라타 곧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가에 묻고 비석을 세웠습니다. (창세기 33:16-20 )
야곱으로부터 애틋한 사랑을 받았던 라헬은 에프라타 땅, 즉 장차 유다 민족의 기원이 되는 베들레헴에 묻히게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족장의 길”이라고 부르는 베들레헴의 고대 도로 옆에 전통적으로 라헬의 무덤이라고 하는 둥근 돔으로 덮인 무덤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족장의 길”가에 있었던 라헬의 무덤이 이제는 건물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스라엘의 West Bank 장벽을 설치함에 따라 막혀있지만 이 무덤은 여인들이 아기 순산을 위해서 기도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던 곳이었습니다.

1870년대의 라헬의 무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옛날에는 길가에 있었던 라헬의 무덤이 이제는 건물 안으로 들어 와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1967년 6일 전쟁 후, 이스라엘에 의해 군사점령 당한 팔레스타인 지역인 웨스트 뱅크(서안지구)에 위치해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 기구의 한 도시입니다. 인구 3만 명의 작은 도시가 지금 분리 장벽에 둘러싸여 큰 감옥과 같은 모습으로 되어 있습니다.

라헬의 무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루살렘 터미널에서 163번(이 버스 라인의 종점이 라헬의 무덤입니다.) 버스나 개인 차량을 이용하여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 라헬의 무덤은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는 검문소 근처에 있습니다. 검문소에 들어가기 전 오른쪽 분리 장벽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라헬의 무덤이 있는 곳이 나옵니다. 차량만 들어갈 수 있으며 보행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남쪽으로 불과 10 km 떨어져 있는 베들레헴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검문소를 거쳐야 하는데 이는 마치 국경을 넘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안전 요원들이 방탄 유리건너편에 앉아 여권과 허가증을 요구하고 주변에는 무장을 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빨간불과 파란불로 조정되는 회전문을 여러 번 거쳐야 하고, 안전대를 지나야 하며, 곳곳에는 감시카메라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가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특별허가증을 받아야 하는데 허가증 받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검문소를 나오면 8~9 m 높이의 거대한 콘크리트 벽(분리 장벽)을 만나게 됩니다. 국무총리 샤론 (Ariel Sharon)은 2001년 6월 국가안보위원회를 구성하고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도록 요구하게 되었으며, 이어 2002년 4월 국가안보 장관회의에서 테러리즘을 제어하고 방어하기 위하여 서안지구(West Bank) 팔레스타인 지역과 이스라엘 사이에 분리 장벽을 쌓는 안이 결정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뉴욕에서 일어난 9-11 사건으로 촉발된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하여 2002년 8월부터 분리 장벽 쌓기를 본격화 하게 되었습니다. 분리 장벽의 길이는 700 km에 이르며 벽의 진로는 약간씩 변경되고 있으나 팔레스타인 지역을 완전히 둘러싸는 것으로 2006년 말까지 450 km가 완성되었습니다.

1870년대의 라헬의 무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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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헬의 무덤 옆을 지나가고 있는 이스라엘의 분리 콘크리트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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