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5. 게데스 (Kedesh, Cades)와 텔 단(Tel Dan)

게데스 (Kedesh)

지금까지는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하여 호수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지금 부터는 갈릴리 호수의 북쪽 부분으로 가 보겠습니다.

Zaanannim Kedesh, israel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지금은 폐허가 되어 있는 고대 가나안의 도시였던 게데스(Kedesh)는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국경지대에 있는 Malkiya 정착촌(Kibbutz Malkiya)부근에 있습니다.

게데스는 구약 성서의 여호수아서에서 본의 아니게 살인을 한 사람이 법정에서 재판을 할 때까지 복수당하는 일에 대하여 보호 받을 수 있는 “도피성”의 하나로 언급되어 있는 가나안의 요새였습니다. (여호수아 20:7)

가나안 땅을 점령한 여호수아는 한 사람이 가나안의 어디에서든지 하루 안에 도달할 수 있는 곳, 즉 요단강의 서쪽에 3 군데(게데스, 세겜, 헤브론)와 요단강의 동쪽에 3 군데(골란, 길르앗 라못, 베셀)에 도피성을 마련하였는데 그 6 곳 중의 한 곳이 게데스(Kedesh)였습니다.

הקירות שנשארו מהמקדש הרומאי בתל קדש.JPG

북이스라엘의 왕 베가(Pekah) 때에 앗시리아의 왕 디글랏 빌레셀(Tiglath-Pileser)이 쳐들어와서 북이스라엘의 영토였던이곳 게데스(Kedesh)와 더불어 여러 도시들을 점령하였던 기록이 있습니다. (열왕기 하 15:29)

BC 145~143년 조나단 마카비가 셀루시드 왕조의 데메트리우스 왕에게 대항하여 싸울 때, 이곳 게데스(Kedesh)를 정복하였던 역사의 기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부터 지금까지 폐허로 남아 있는 곳입니다.

File:PikiWiki Israel 42706 Tel Kedesh in upper galilee.JPG

케데쉬의 폐허에 버려져 있는 무덤의 돌 석관

단 (Tel Dan)

“심판”이라는 뜻을 가진 도시 단(Dan)은 갈릴리 바다에서 북쪽으로 약 65 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이곳은 벧엘과 마찬가지로 북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우상숭배를 하였던 산당이 있었던 곳입니다.

단은 고대 이스라엘 북단에 있던 도시로써 헬몬 산 남쪽 기슭에 있으며 두로에서 다메섹으로 가는 길목에 남북으로 갈라지는 지점에 있으며 “텔 단(Tell Dan)”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을 생각하면 메마르고 척박한 광야가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텔 단(Tel Dan)”은 마치 에덴(Eden)동산을 연상케 하는 곳입니다. (출애굽기 3:8)에서 소개되고 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마치 이곳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것들이 풍요로워 보이는 곳입니다.

헤르몬 산을 항상 덮고 있는 만년설의 눈이 녹은 물이 모여 흘러나오는 샘들로 인하여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이로 인해 숲속은 뜨거운 한 여름에도 14.5도를 유지할 만큼 시원한 곳이기도 합니다.

tel dan, israel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텔 단(Tel Dan)은 약 260 km의 요르단 강이 시작되는 최북단에 있는 곳입니다. “요르단”이란 말은 “단에서 흐르다”, 즉 “단 지방에서 흘러내린다.”는 뜻입니다. 텔 단(Tel Dan)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223 km, 갈릴리 호수가의 도시 티베리아스로부터는 약 65 km 북쪽에 있으며 레바논 국경 가까이에 있는 곳입니다.

tel dan, israel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단(Dan)에는 맑은 물이 솟아 오르는 샘이 많이 있습니다.

“단”은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한 지파로서 야곱과 야곱의 두 번째 아내 라헬의 여종인 “빌하”를 통해 낳은 야곱의 다섯 번째 아들 이름을 딴 곳입니다. 텔 단(Tell Dan)지역은 구약 성경에서 처음으로 등장할 때의 이름은 “라이스”라고 하였던 곳이고, 가나안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던 땅이었습니다.

청동기 중기 시대(BC 2,200년)의 가나안 사람들의 도시로 들어가는 문, 아마 아브라함도 이곳을 통하여 가나안으로 들어 왔을까?

단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의 최북단의 경계도시였는데, 우리나라의 영토를 말할 때 “백두에서 한라까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구약시대에서 이스라엘 영토를 말할 때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고 하였습니다.

자연 공원으로 가꾸어진 곳에서 두께가 3.6 m되는 옛 성벽이 발굴되었는데, 므깃도, 하솔, 게셀, 아스돗, 라기스 등의 성벽에 있는 성문들은 6개 방을 가진 성문 형태를 취하고 있고, 브엘세바와 텔 단은 4개 방을 가진 성문(Wall Gate)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그 높이는 약 6 m정도의 높은 성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북이스라엘 당시에 금송아지를 숭배하여 제사를 지내던 제단도 발굴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제단이 있었던 곳

tel dan, israel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여로보암의 산당이 있었던 곳

텔 단(Tell Dan)은 이스라엘 북단 경계 지점으로 여로보암이 세웠던 금송아지 신전이 있었던 장소라는 점보다도 더욱 매혹적인 것은 1993년 7월 21에 발견된 “텔 단 석비” 때문입니다.

한 발굴자가 성문 밖 광장의 나지막한 돌담을 파헤치던 중 잘 다듬어진 검은 돌 조각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대부분 구조물들이 석회암이었기 때문에 이 조각은 쉽게 눈에 띄었습니다.하지만 이 돌을 들어낸 순간 지금까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관련 이미지

사진에 있는 글자의 아랫 부분에 하얗게 표시하여 둔 곳이 “House of David”이라고 쓴곳의 다윗 왕의 이름

그 뒷면에는 히브리어와 모양이 비슷한 고대 아람어 기록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이 고대 아람어로 기록된 비문을 발견하기 전까지 성서학계에서는 다윗의 역사성이 문제가 되어왔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성서에서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탁월한 왕이었다면 같은 시대 고대 근동의 문헌에서 다윗의 이름이 거론되어야 하는데 성서 이외에 어디에서도 언급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람어로 기록된 길이 32 cm 폭 22 cm의 이 석비(Tel Dan Stela) 조각에는 당시 (열왕기상 19:15~18)에 기록되어 있는 다메섹의 왕 하사엘의 비문이 13줄로 새겨져 있었는데, 이 비문의 8째 줄에는 “베잇트 다비드(House of David)”  즉 “다윗 왕조”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어서 다윗 왕의 역사성에 대한 의문은 풀리고 말았습니다.

비록 부서진 조각이기 때문에 전체 내용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아람의 한 왕이 이스라엘의 왕을 죽이고 정복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이러한 사건은 (열왕기상 15:16~22)의 기록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건입니다.

(열왕기상 15:16~22) “아사와 이스라엘 왕 바아사 사이에는 늘 전쟁이 있었습니다. 바아사는 유다를 공격하기 위해서 올라왔습니다. 그는 어느 누구도 유다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또 유다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라마 성을 굳건하게 쌓았습니다. 아사는 여호와의 성전과 자기 왕궁의 보물 가운데 남아 있는 금과 은을 다 모아 신하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냈습니다. 벤하닷은 다브림몬의 아들이고, 다브림몬은 헤시온의 아들입니다. 벤하닷은 다마스커스 성에서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아사의 말을 벤하닷에게 전했습니다. “내 아버지와 그대의 아버지는 평화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대에게 금과 은을 선물로 보냅니다.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맺은 조약을 끊고, 그가 내 땅에서 떠나게 해 주십시오.” 벤하닷은 아사 왕의 말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군대를 보내어 이스라엘 마을들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그는 이욘과 단, 아벨벧마아가와 긴네렛 전 지역과 납달리 지역을 침입했습니다. 바아사가 그 소식을 듣고는, 라마 성 쌓는 일을 멈추고 디르사로 돌아갔습니다. 아사는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을 내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바아사가 라마 성을 쌓을 때 쓰던 돌과 나무를 나르게 했습니다. 아사는 그것으로 베냐민 땅에 있는 게바와 미스바 성을 건축하였습니다.”

BC 9세기 초,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치열한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었습니다.두 왕국의 끊임없는 전쟁은 유다의 아사 왕이 아람 세력을 끌어들임으로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습니다.

유다의 아사 왕은 자신의 적, 북 이스라엘을 징벌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의 금고에 보관된 은과 금을모두 끌어 모아 다메섹 아람 왕에게 조공으로 바쳤습니다.아람의 왕 벤하닷은 아사의 부탁을 받고 단을 비롯해서 이스라엘 북부지역을 점령하게 되었고 그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서 바로 텔 단(Tell Dan)에 승전비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석비 조각이 단에서 발견된 지 1년이 지난 1994년 6월 두 개의 작은 비문 조각이 더 발견되었습니다. 이 비문에는 북이스라엘의 왕 요람과 다윗 왕조, 즉 남 유다의 왕 아사 왕이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점이 발견된 부분은 비문의 내용과 이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성서의 내용이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성서에서는 쿠데타를 일으킨 예후가 이 두 왕(요람과 아사)을 차례대로 살해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왕하 9:21-28), 단의 석비 조각에는 아람의 왕이 이 사람을 죽인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어느 기록에 더 역사적 신빙이 있을까 하는 문제가 성서학자들의 토론꺼리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실제로는 예후가 죽였겠지만 예후의 쿠데타 자체가 이미 아람 왕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이뤄졌기 때문에 아람 왕 하사엘은 자신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두 왕을 죽였노라고 기념비에서 당당하게 밝힐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비문은 성서 이외의 문헌에서 다윗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첫 번째 문헌이며, 그 원본은 현재 이스라엘 국립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관련 이미지

Tel Dan으로 들어가는 성문이 있었던 곳

Dan israel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단은 이스라엘이 솔로몬 왕 이후 남북으로 갈라졌을 때, 북 이스라엘 왕국의 첫 번째 왕이었던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남 유다 땅에 있었던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서 예배드리지 못하도록 베델과 단에 금송아지 산당을 만들어 숭배하게 하였던 곳이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은 단에 성벽(두께 3.6 m, 높이 12 m)을 웅장하게 쌓았고 성문도 건축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로 18.7 m 세로 18.2 m 그리고 제단으로 오르는 계단의 폭이 8 m나 되는 제단을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산당에 만들어 놓았습니다.

단은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북이스라엘의 중요한 성소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단은 북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 앗시리아와 붙어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앗시리아의 침입을 빈번하게 받아오다가  BC 721년에 북이스라엘 왕국은 아시리아에 의해 정복당한 후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