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3. 므깃도 (Tel Megiddo)

므깃도 (Tel Megiddo)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교만을 상징하는 므깃도(Megiddo)는 예루살렘 성에서 북쪽으로 약 120 Km 지점에 있는 이스르엘 골짜기의 남부에 있습니다.

므깃도 언덕(Tel Megiddo)은 카르멜 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903년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는 네 군데에서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표기되고 있는 곳으로 알려진 므깃도, 하솔, 브엘세바는 오늘날 이스라엘에 위치한 고대도시 유적으로 청동기와 철기시대의 도시 유적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도시들이자, 고대 근동의 중요한 무역 길의 일부였던 이곳들은 역사적, 문화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므깃도(Megiddo)는 BC 4,000년으로부터 BC 6세기에 이르기 까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최고(가장 오래된)의 요새로서 가장 많은 전쟁을 치렀던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이곳은 이집트에서 출발하여 다메섹을 거쳐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주요 국제 도로인 “해변의 길(Via Maris)”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으면서 그 길의 가장 중요한 통로로서 동서남북으로 사통팔달 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므깃도의 4,000년 역사가운데 건물들이 세워졌다가 다시 무너지고 또다시 세워졌다가 무너지고 하기를 무려 20번 이상 반복되었던 곳입니다.

신약의 요한계시록에는 헬라어로 “아마겟돈 (Armegeddon)”이라고 등장하는데, 종말의 시대에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곳으로 표현되어 있는 곳입니다. 신약 성경의 요한 계시록(계 16:16)에는 선한 영과 악한 영이 이곳 아마겟돈에서 싸움을 하게 되는 계시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아마겟돈”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Har-Megiddo (Mount-Megiddo, 므깃도 산)”를 헬라어로 표현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6:14~16)  “이 악한 영들은 귀신들의 영이었습니다. 그들은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 영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심판 날에 대비하여 함께 싸울 온 세계의 왕들을 모으러 나갔습니다. 그 때, 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보아라! 내가 생각지도 못한 때에 도둑같이 너희들에게 갈 것이다. 깨어서 옷을 단정히 입고 있는 자는 복이 있으리니, 벌거벗은 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 악한 영들은 히브리 말로 아마겟돈이라는 곳에 왕들을 다 집결시켰습니다.”

Tel Megiddo, israel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 도시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이집트 카르낙 신전 벽면에 부조되어 있는 투투모스 3세의 승전 기록인데,  그는 BC 1,468 년 므깃도에서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이 도시는 여호수아에 의해 점령되지 못할 만큼 가나안의 강한 요새였으며(삿 1:27~28),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다윗 왕의 시대에 와서야 완전히 정복되었고, 솔로몬 왕에 이르러 므깃도에는 견고한 성벽이 쌓여 세워지게 되었는데이때에 이스라엘 땅의 북방을 방어하는 가장 강력한 요새가 되었습니다.

(왕상 9:15-19) “솔로몬 왕은 일꾼들을 불러모아 성전과 왕궁을 지었습니다. 솔로몬은 일꾼들에게 밀로와 예루살렘 성벽 쌓는 일을 시켰습니다. 또한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 성을 다시 쌓는 일도 시켰습니다. 옛날에 이집트 왕이 게셀을 공격하여 점령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집트 왕은 게셀을 불태우고 거기에 살던 가나안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 성을 자기 딸의 결혼 선물로 솔로몬에게 주었습니다. 솔로몬은 게셀과 아래쪽 벧호론과 바알랏과 유다 광야에 있는 다드몰을 세웠습니다. 솔로몬 왕은 또 곡식과 그 밖의 물건을 저장해 둘 수 있는 성과 전차를 두는 성과 전차 모는 군인들을 위한 성도 세웠습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가 다스리는 모든 땅에 원하는 것을 다 지었습니다.”

Tel Megiddo solomon horse, israel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므깃도에서 발굴된 “솔로몬의 마병장(Solomon’s Stables)”입니다.

megiddo Solomon's Stables , israel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특히 솔로몬 왕이 세운 마병장과 기병대는 국제 무역도로(Via Maris)를 장악하여 이스라엘의 국제적인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므깃도에서의 중요한 발굴은 “솔로몬의 마병장(Solomon’s Stables)”입니다. 약 450마리 정도의 말과 150대의 병거를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였으며, 중앙에는 말에게 물을 먹이던 돌을 깎아서 만든 큰 물통들과 여물 통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것을 “솔로몬의 마병장”이라고 부릅니다. 솔로몬 왕은 그 당시 군사력의 상징인 기병대를 육성하여 “병거성(City of Chariosts)”과 “마병의 성(City of Horsemen)”들을 이곳 므깃도에 건설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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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발굴된 솔로몬 시대의 성문은 그 이전의 구조와 다른 자형(字形)으로 설계됐는데 이 이유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이에 맞는 성문을 고안해 내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곳에서 발굴된 마병장에는 말들의 고삐를 매어 놓았던 구멍이 뚫린 돌들이 말구유와 함께 늘어서 있는 넓은 장소도 있었습니다.

앗시리아와 바벨론이 서로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었던 시기에 북이스라엘은 BC 721년 앗시리아에 의해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BC 609년 이집트와 앗시리아 연합군은 바벨론을 공격하기 위해서 가던 중, 남 유다 왕국의 요시아 왕과 전투가 있었는데 이때 요시아 왕이 이곳 므깃도에서 이집트의 느고 왕과의 전투를 지휘하던 중에 전사하였습니다.

앗시리아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는 BC 605년 바벨론에게 패하였으며 결국에는 남 유다 왕국도 BC 597년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여 예루살렘 성은 파괴되고 많은 유대인 지식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근래에 와서는 세계 제 1 차 대전 때였던 1917~1918년 영국의 알렌비(Allenby) 장군이 이곳을 점령하고 있었던 오스만 터키 군과 싸워서 이긴 곳도 이곳 므깃도에서의 전쟁이었습니다.

Tel Megiddo General allenby, israel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가나안 시대, 가나안 족속들이 제사를 드렸던 곳

므깃도는 1925-39년에 시카고 대학의 동양 연구소(Oriental Institute)에 의해 발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곳에서는 BC 3,000년부터 큰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곳 Tel Megiddo의 동쪽에서 고대 가나안 원주민들이 만들었던 산당(High Place) 신전을 발굴하였는데,  이곳에서는 약 2,000년 동안 17개의 사원이 들어섰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깊은 곳(땅속 아래)에서 발굴된 것이  고대(BC 3,000~BC 2900년) 가나안 사람들이 희생제사를 드렸던 제단이었습니다. 또한 솔로몬 때 건설한 성벽과 성문, 그리고 군 장교들의 관저들도 함께 발굴되었습니다.

가나안 시대의 발굴 지역의 위에는 역사에서 한 시대마다 다른 층을 이룬 흙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시대의 흙으로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약 20여개 층이 된다고 합니다.

신석기 시대(8300-4500 BC) 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26 종류의 다른 시대의 흙으로 덮인 층이 발굴 되었습니다. 텔 므깃도는 고대 근동 세계에 있어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두 제국 사이에서 가장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었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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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해변에서 이스르엘 평원으로 접근하는 좁은 길에 놓여 있었던 므깃도 성은 그 성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에게 나일 강에서부터 유프라테스 강을 이어주고 있는 국제 해안도로(Via Maris)의 자유로운 통행권을 주었던 것입니다.  국제해안도로(Via Maris)는 대상들이 오가는 무역 길이었는데 므깃도는 그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므깃도로 들어가는 입구가 3 개 있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 세워진 입구는 후청동기시대의 것으로써  가나안 시대(BC 15 세기)의 입구입니다. 그리고 위에 있는 입구는 BC 9 세기의 솔로몬 왕 때의 입구이고 세 번째 문은 중간 청동기 시대인 BC 18 세기에 건설된 입구입니다.

므깃도에서 발굴된 것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당시의 발전된 공업 기술을 볼 수 있는 우수한 수로 장치의 발굴입니다. BC 9 세기 아합 왕 때 적이 쳐들어 왔을 때 성이 포위되더라도 주민들이 성 밖에 있는 샘물을 무사히 길어 올 수 있도록 만든 지하 굴입니다. 지하 수로는 지하 35 m에 길이 200 m의 터널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큰 통로가 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그 통로의 끝에서 바위 구멍을 뚫고 도시 밖의 샘으로부터 도시 안쪽으로 끌어 들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므깃도 성 안에서 60 m 정도의 깊이로 땅을 파내어 만든 큰 통로가 바닥까지 내려 있고 그 통로의 끝에서 120 m 정도 수평으로 바위 구멍을 뚫고 도시 밖에 있는 샘으로부터 물을 도시 안으로 끌어 들이도록 수로를 만들었습니다. 도시 밖에 있는 샘 입구에는 비상시에 므깃도를 포위하고 있는 적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흙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3,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잘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남쪽에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때(BC 8 세기)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둥글고 깊게 파서 만든 지하 곡식 창고가 있었습니다. 그 크기는 450 스퀘어 미터 정도입니다. 나선형 계단을 통하여 밑으로 내려 갈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므깃도 , israel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처럼 텔 므깃도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이스르엘 평야가 보이고 오른 쪽에 타볼 산이 보이며 왼쪽에 보이는 산에 나사렛 마을이 보이는 곳의 꼭대기에 있습니다. 근래에(November 6, 2005)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 므깃도 감옥에서 AD 3 세기~4 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보이는 교회의 바닥에서 아름답게 모자이크된 바닥이 발굴되었습니다. 바닥에서 발굴된 또 다른 모자이크는 “the God Jesus Christ as a memorial.”라고 헬라어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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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깃도 언덕 위에서 보이는 이즈르엘 평야

이즈르엘 평야는 북쪽으로 갈릴리 산악 지대와 남쪽으로 사마리아 산악 지대 사이에 위치한 비옥한 평야입니다. 길보아 능선은 동남쪽에서부터 북서쪽으로 뻗어 있는데, 길보아 산의 능선을 따라 팔레스타인 서안지역(West Bank)과 이스라엘의 국경선(Green Line)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능선을 경계로 하여 팔레스타인 서안 도시인 “제닌”과 경계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요르단 강 계곡 그리고 서쪽으로는 카르멜 산 능선으로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타볼 산으로 이어지는 드넓은 평원 지역입니다.

길보아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던 ‘이즈르엘’은 아합 왕 때, 북 이스라엘의 수도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하나님이 씨를 주시기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갈릴리 호수 남단의 요르단 강 계곡과 서쪽으로는 카르멜 산 능선을 따라 지중해를 연결하는 중요한 무역 길이었기 때문에 주변 국가들 사이에서 이 땅을 서로 차지하고자 벌이는 전쟁도 수없이 많았었습니다. 주요 산악 지대와 연결되어 있는 이즈르엘 평야는 매우 비옥한 땅이어서 예로부터 “이스라엘 빵 바구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중해 해변 도시, 하이파 쪽에 있는 카르멜 산과 나사렛과 갈릴리 호수 사이에 있는 타볼 산, 그리고 길보아 산 위에 오르게 되면 드넓은 이즈르엘 평야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산악 지대와 평원이 만나는 곳에 있는 이즈르엘 평원은 성경의 역사 가운데 커다란 전쟁들이 수없이 많이 있었던 장소였습니다. 이즈르엘은 잇사갈 지파에게 분할된 땅(여호수아 19:18)이었습니다.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을 때 미디안 족속과 아말렉 족속들이 강을 건너 이스라엘 땅에 쳐들어와 이즈르엘 평야에 진을 치게 되자,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주신 300명의 병사와 함께 적들을 물리치게 하여 이기게 하여 주신 기적의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습니다.(사사기 6~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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