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4.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 두아디라 (Thyatira)

두아디라 (Thyatira)

(계시록 2:18~29) “두아디라 교회 지도자에게 이렇게 써서 보내어라. ‘불꽃같이 빛나는 눈과 빛나는 청동 같은 발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 하시는 말씀이다. 나는 네 행위를 알고 있다. 또한 너의 사랑과 믿음과 봉사와 인내에 관해서도, 그리고 처음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이와 같은 일들을 행하고 있음도 알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책망할 일은, 스스로 예언자라고 칭하는 여자 이세벨을 그대로 두고 보고만 있는 일이다. 그 여자는 내 백성을 거짓된 가르침으로 잘못 인도하고 있으며,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하고 음란한 죄를 짓도록 부추기고 있지 않느냐? 내가 그 여자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녀는 뉘우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가 그녀를 고통중에 내던져 신음하게 하고, 똑같이 음란한 죄를 짓는 자들에게도 그러한 고통을 줄 것이다. 만약 지금 바로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지 않으면, 즉시 이 일을 행할 것이다. 그 여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모든 자들을 죽게 하여, 내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의 깊은 곳까지 살피는 자임을 온 교회가 알도록 할 것이다. 나는 너희가 행한 대로 갚을 것이다.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 안에 그녀의 가르침을 좇지 않고 사탄의 깊은 비밀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내가 다른 짐을 지우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갈 때까지 지금 가고 있는 길을 꾸준히 걸어가거라. 마지막까지 내 뜻대로 행하고 승리하는 자에게는 모든 나라를 다스릴 권세를 줄 것이다. 쇠막대기로 그들을 벌하여 너희 앞에 복종케 하여 질그릇같이 그들을 깨뜨릴 것이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권세와 똑같은 권세이다. 또한 새벽 별도 네게 주겠다.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라.'”

비잔틴 시대의 교회 유적

“두아의 성읍”이라는 뜻을 가진 두아디라는 알렉산더 대왕의 신하였던 셀레우코스가 자신의 딸의 이름을 따서 이곳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BC 3세기에는 마케도니아 사람들과 유대인들이 이곳에 이주하여 살았고 BC 190년에 로마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그 후 로마는 로마의 행정 도시였던 페르가몬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곳을 요새화하였지만 전략 기지로도 적합하지 못한 지형적인 요건 때문에 항상 전쟁이 있었을 때마다 성이 파괴되곤 하였습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이 두아디라를 당시에 주요 도시였던 버가모를 중앙 아나톨리아의 갈라디아 사람들의 공격으로부터 일차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그들이 쳐들어 올 가능성이 있는 침투경로들을 차단하기위하여 군사시설을 구축하였던 곳으로 이용하였습니다. 서부 아나톨리아의 다른 모든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두아디라 역시 AD 3세기에는 고트족의 침략에 그리고 AD 7-8세기에는 아랍왕국의 침략에 시달림을 당해 왔습니다.

잦은 전쟁과 파괴를 거듭하여 겪으면서 시민들은 모든 것들을 자급자족하고 스스로 단결하기 시작하였고 생업을 위하여 직업적 단위로 뭉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최초의 “길드 조직”입니다. 길드 조직의 회원들은 위급한 경우, 실패했을 경우, 사망했을 경우, 상품을 구입할 경우 등, 생활의 온갖 면에 걸쳐서
상호간에 도울 것을 목적으로 공동조직에 결집하였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에게 보내는 사도요한의 편지는, 실제로는 일곱 교회 가운데서 비교적 가벼운 내용을 담고 있지만, 분량으로 보았을 때에는 가장 긴 편지였습니다.

이 도시는 이교도적인 상업길드(trade-guild)들이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따라서 두아디라 교회는 그들로부터 굉장한 압박을 받고 있었음에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두아디라에서는 “길드 조직”에 의하여 각 업종의 조합원끼리 잘 결속되어 있었던 까닭에, 누구든지 그 업종의 조합원이 되어야만 살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조합들은 이교적인 신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이교적인 희생 제사도 드리기도 하고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기도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두아디라의 기독교인들은 생존의 기반을 잃지 않기 위해서 우상에게 하는 제사와 부도덕한 관습을 따라 행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꼭두서니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꼭두서니와 그 열매

두아디라에는 면직, 모직, 가죽, 등을 가공하는 산업이 발달하였으며 특히 자주색(보라색)염료를 생산하여 자주색 천을 제조하여 부유함을 이루었습니다.  원래 지중해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소라나 고동의 전립선에서 채취되었던 자주색 염료를 두아디라에서는 도시 주변에서 나는 “꼭두서니”라는 나무의 뿌리에서 자주색의 염료를 채취하였던 것입니다.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두아디라에도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으며 기독교 공동체는 AD 1세기 후반부에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사도바울이 유럽지역에서 만난 최초의 기독교인은 두아디라 본토인이었던 루디아라고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두아디라 성에서 온 자주색 천 장사꾼인 루디아라는 여인입니다.

두아디라에 어떻게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다만 사도 바울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들었던 자주색 옷감 자수였던 루디아에 의해서 새워지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현재는 AD 600년경에 세워진 교회당의 돌로 된 기둥과 담장만이 주택가 가운데 남아 있을 뿐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내심을 갖고 견뎌내었던 이 교회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의 교인들에게는 또 다른 중요한 문제를 앞에 두고 있었는데, 그것은 자칭 선지자인 이세벨이라는 여자의 활동들을 허용한 것이었는데, 그녀는 신탁(Sibylline oracle)의 행위(신의 뜻을 알려주는 일종의 점쟁이)를 하는 여자 사제였습니다.

당시에는 이러한 신탁행위가 매우 인기를 끌었으며, 이교도들뿐만 아니라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조차도 그들의 예언에 귀를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두아디라 교회에는 그러한 사단의 유혹에 대항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에게 주께서 오시면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 별을 얻게 될 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0)에서 성경은 두아디라 교회에, 자칭 선지자라 하는 이세벨(북이스라엘의 왕후로서 바알신을 숭배하였던 여인)을 용납하고, 주의 종을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두아디라의 시내 안에서는 제한된 범위에서만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 두 개의 중요한 건물 유적들이 마침내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thyatira turkey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첫 번째 건물 유적들은 AD 5-6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건축물의 일부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이 건물의 벽은 석회반죽이 칠해져있는 작은 돌로 구성되어져있고, 또한 겹겹이 쌓아올린 벽돌로 보강되어 4-5 m 정도의 높이를 가진 건축물입니다. 이 건축물 남쪽의 부분은 발굴되기 직전에 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이 건물에서는 교회와 관련된 유물들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도 여러 가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던 공공 바실리카(basilica)가 아닌가하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도심지에서 발견된 두 번째 중요한 유적들은, 열주거리(colonnaded street) 서쪽에 세워져 있던 포르티코(portico, 기념건물의 현관)의 일부입니다. 포르티코의 대리석 기둥들은 그 높이가 대략 5 m 정도되는 것이었습니다. 주촛대(plinth), 대좌(stylobate), 원주(column), 그리고 주두(柱頭, capital)등 유물들은, 약 2세기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어지고 있습니다.

열주거리의 오른쪽 편은 아직도 발굴이 되지 않은 채 도로아래 파묻혀 있기 때문에, 그 길이가 어느 정도인지 추산 할 수도 없는 형편이 있습니다.  본래 열주거리는 양 끝 부분이 약간 경사진 형태의 자갈도로(rubble path)였습니다.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