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5.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 버가모(Pergamum)

버가모(Pergamum)

(계 2:12~17) “버가모 교회 지도자에게 이렇게 써서 보내어라. ‘양쪽에 날이 선 날카로운 칼을 가진 분의 말씀이다. 나는 네가 살고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다. 사탄이 권세를 쥐고 있는 그런 도시에서, 너는 나를 향한 믿음을 굳게 지키고 있다. 나의 신실한 증인 안디바가 그 곳에서 순교할 때도, 너는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몇 가지 네게 책망할 일이 있다. 너희 가운데 발람의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들을 왜 그대로 보고만 있느냐? 발람은 발락을 시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도록 부추겼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고, 음란한 죄를 지었던 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  또 니골라파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도 너희 가운데 보인다. 회개하고 태도를 고쳐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속히 가서 내가 갖고 있는 칼로 그들을 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라. 승리하는 자에게는 숨겨진 만나와 흰 돌을 줄 것이다. 그 돌 위에는 그것을 받는 사람 이외에는 알 수 없는 새 이름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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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시대에 그리스도교는 사도들이 순교를 당하면서 복음을 전파하였던 결과로 복음이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기도 하였지만, 소아시아의 대상무역(caravan) 경로를 따라 상인들에 의해서 전파되기도 하였으며, 특히 무역선(상선)을 통해서 전해지기도 했는데, 이 무역선들은 버가모(Pergamum)의 엘라에아(Elaea)항구를 출발하여 에게해와 지중해를 운행하던 배들이었습니다.

오늘날 베르가마(Bergama)라고 불리는 버가모는, 로마 시대에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에는 약 390 m의 가파른 언덕 위에 건설된 방어벽이 있었는데, 이 방어벽은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 장군이었던 리시마쿠스(Lysimachus)가 베르가몬 꼭대기에 건설하여 군사기지로 사용하였던 곳의 성벽입니다.

헬라 사람들이 건설하였던 페르가몬 왕국이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번성한 이후, 필라델피아 도시를 건설하였던 유메네스 2세와 아탈로스 2세 형제가 다스렸던 시기가 페르가몬 왕국의 황금기였습니다. 오늘날까지 유적으로 남아 있는 성벽이나 신전들의 대부분은 이 때에 세워진 것들입니다.

에베소에 가려서 그다지 빛을 발하지는 못하였지만 버가모(Pergamum)는 주변지역에서 상업적으로 커다란 부를 누리고 있었던 큰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AD 1세기경에, 아크로폴리스 위에 세워져 있던 이 헬라도시는 더 이상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어서, 치료의 신을 위한 신전이었던 아스클레피온(Asclepion)과 맞닿아 있는 계곡에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이렇게 부유하고 막강하였던 버가모 왕국의 마지막 왕, 아탈로스 3세(Attalos 3)에게는 합법적인 왕위계승자가 없었는데, 그는 이미 버가모의 종말은 불가피한 것임을 간파하고, 다만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전쟁을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로 BC 133년에 죽음을 맞으면서 로마에게 왕국을 양도하였습니다. 그 이후, 왕국이었던 버가모는 로마의 속국으로써 로마 통치자들의 후원을 등에 업고 계속적인 발전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Pergamum turkey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Reconstruction of ancient Pergamon.

로마의 속국으로써 이 도시에는 새로운 활력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버가모의 숙련된 건축가들은 둥근 아치형 천장(vault)을 가진 테라스(terrace)를 만들고, 새로운 신전과, 목욕탕과, 여러 가지 공공건물들을 최고의 건축 자재인 대리석으로 아름답게 장식하면서 건설하였습니다. 오늘날까지 유적으로 남아있는 아스클레피온(asclepion), 원형 경기장, 원형극장(amphitheatre)등의 유적들은 모두, 로마시대로부터 건축되어진 것들입니다.

로마 황제 트라얀 신전 유적지사도 바울이 소아시아(Asia Minor)로 전도여행을 다녔을 때에는 이곳이 로마가 다스리던 소아시아 지역의 수도(중심 도시)였습니다. 사도 요한이 버가모 교회에 대해서 이 편지를 쓸 당시, 버가모는 황제숭배 사상이 번창하였던 때로서 버가모는 이방종교의 중심지로 손꼽히는 도시였습니다.

양피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또한 양피지를 헬라어로 페르가멘트(Pergment)라고 하는데, 페르가몬(버가모)에서 유래된 말인 것처럼
이 버가모에는 송아지나 어린 양의 가죽으로 “가죽 종이”를 처음으로 만들어 그것에 기록하여 책으로 만들었는데, 이렇게 양피지로 만든 책들이 약 200,000권이나 소장되어 있었던 도서관이 이곳에 있었습니다.  이 도서관은 이집트 북쪽에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과 더불어 세계 2 대 도서관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렇게 BC 280년부터 150년간 페르가몬 왕국은 찬란한 문화를 남겼지만, 로마 제국으로 편입되면서 정치적으로는 소아시아 지역의 행정적 중심지가 되었고, 우상 숭배가 심하게 되면서 이곳에는 6 개의 신전들이 세워졌고 시민들은 로마 제국의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기를 강요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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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황제 트라얀 신전의 유적

버가모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아데나(Athena)신전의 성소(temenos)에는 아데나 여신의 신상과 함께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신상이 세워져 있었고, 황제를 숭배하여 제사를 지내던 대 제단(the Great Altar)의 벽면에는 그리스 로마의 신들이 거인들과 싸우는 장면들이 부조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어떤 성서고고학자들은, 사도 요한이 말하는 “사단의 위(the Satans throne)”는 바로 이 제단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버가모의 “아스클레피온” 의과대학과 병원 (BC 4 세기)

버가모에는 “아스클레피온”이라는 의과 대학교가 있었는데,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가 이 대학교에 있었고, 해부학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갈렌”의사도 이곳에서 태어나고 이곳에서 활동하였던 의사입니다.

아스클레피온 의과 대학과 병원은 BC 4세기경에 처음 건립되었지만 지금 남아 있는 유적들은 대부분 로마의 황제 하드리아누스 시대(AD 2 세기)에 건축되어진 것들입니다.  병원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치료의 신을 모신 신전인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의 신전”이 세워져 있는데, 세계 각처로부터 많은 순례자들과 병자들이 모여들었던 인기 있는 명소였습니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이 성소 안에는 아스클레피온의 특별한 숭배대상인 ‘살아있는 독사(a live serpent)’를 담고 있는 비밀상자(mystical chest)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페르가몸의 아스클레피온 신전 터의 유적들

아스킬레피온으로 들어서게 되면 바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서게 되면 페르가몬 왕국의 아크로폴리스가 보였습니다. 산기슭에 있었던 극장과 병원까지 대리석으로 도로를 포장한 길이 있었습니다. 도로의 길이가 820 m, 폭이 18 m로 꾀 넓은 길이었습니다.

이 길은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다가 1967년 발굴되었는데 병원 쪽의 40 m 가량의 길에는 양쪽으로 이오니아식 기둥들을 줄지어 세움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던 그 길을 “성스러운 길(The sacred Road)라고 불렀습니다.

아스클레피온의 성스러운 길(The sacred Road)

환자들이 병원으로 들어서게 되면 맨발로 대리석이 깔려 있었던 이 성스러운 길을 한 걸음씩 걸었는데 이 과정부터 치료가 시작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환자들은 이 길을 걸으면서 죽음의 신 “하데스”로 부터 멀어지고 건강의 신 “아스클레피온”에게 가까이 간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아스클레피온에 들어오면 “하데스 신”이 더 이상 침범할 수 없다는 믿음이 마음의 평온을 되찾게 하였던 것입니다.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비문들을 통하여 어떤 방법으로 병을 치료하였는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연극이나 공연, 그리고 의사가 유도하는 심리적인 안정감 등은 환자들에게 삶의 욕구를 불어넣어 줌으로 치료를 시작하였던 것입니다.이외에도 온천욕이나 일광욕, 운동경기 등의 자연 요법으로 환자들을 치료하였습니다.

아스클레피온 The sacred Road Pergamum turkey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산성 유적 (아크로폴리스)

산을 빙빙 돌아 올라가면 아크로폴리스라고 불리는 산위에 세워진 도시의 유적지가 있습니다. 산 밑을 내려다보면 옛 산상 도시의 물을 공급하여주었던 인공 호수가 보이고, 이즈미르 도시의 뒷산인 파고스 산이 아스라이 보이는 풍경이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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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가모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트라이아누스황제신전

이 산상 도시는 거듭되는 지진과 전쟁으로 인하여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규모의 크기나 섬세한 조각품들, 산을 따라 가파르게 만들어 세움으로 100,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던 야외극장을 보게 되면 당시의 찬란하였던 도시를 그려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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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피스 신전 (Red Hall)

물론 사도 요한이 언급하였던 7 교회들은 실질적인 건물이 아니라 신자들의 모임을 말하는 것이었지만,
동방의 일곱 교회는 고고학의 고증에 따라 그 소재지가 밝혀졌는데, 터키의 지중해 이즈미르(옛 서머나),
에베소, 라오디케아, 알라세히르(옛 필라델피아), 사데(사르디스), 악크히사르(옛 두아디라), 버가모(페르가몸)입니다.

이들의 도시들은 말을 타고 이동한다면 서로 반나절에서 하루거리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7 교회의 교회 건물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인, AD 313 이후에 세워진 것들입니다.

이곳 버가모가 기독교인들을 심히 박해하였던 로마가 다스리는 소아시아의 수도였으며, 로마 로마의 황제를 아폴로신의 화신으로 여겨 신전을 건설하였던 곳이었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이곳을 악마 중의 악마가 사는 곳으로 비유하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곳에는 많은 신전들이 있었으며, 특히 최고의 신인 제우스 신전이 이곳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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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 신전의 유적

(계시록 2:13)에 그 이름이 언급되었던 버가모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 중 한 사람인 안디바(Antipas)는, 전승에 의하면 놋쇠로 만든 황소 속에 갇힌 다음 불에 구워져서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렇게 훌륭한 영적 지도자의 지도를 받아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버가모 교인들의 신앙이 열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 몇몇은 발람의 이단사설에 빠져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경우와 같이, 버가모 교인들 가운데서도 니골라 당의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사도 요한은 버가모 교회 안에 있는 문제들을 인식하여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는 한편, 회개하지 않으면 그리스도께서 그 입의 검으로 임하실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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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클레피온 병원에서 아크로폴리스로 가다가 보면 붉은 벽돌로 지어진 신전 유적이 나오는데, 이 신전은 이집트의 신전으로 쓰였던 “세라피스 신전”입니다. 이 건물의 건축 양식은 로마 시대에서 보기 드믄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신전이며, 로마에 기독교가 국교가 된 이후에는 이 신전이 버가모 교회의 예배당(사도 요한 기념 교회)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성서고고학 발굴조사를 통하여 고대 버가모에 있었던 여러 교회 건물 유적들의 발굴된 교회 유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건축물입니다. 이 교회당 유적은 “세라피스 신전”으로 사용되었던 “붉은 벽돌집(Re Hall)”이라고 불리던 곳 안에 세워져 있던 건축물입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제정된 이후에는 이 신전이 “사도 요한 교회(the Church of St. John)”의 건물로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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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basilica, 붉은 벽돌집(Re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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