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똘레도 (Toledo)

똘레도 (Toledo)

톨레도(Toledo)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약 70 km 떨어져 있는 곳에 있으며, 스페인 국토의 정가운데 있는 도시입니다. 또한 톨레도 주의 대표적인 도시이며, 카스티야-라만차(Castilla-La Mancha) 자치지역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유적이 공존하는 장소이며, 스페인의 옛 수도이기도 하였던 이곳은 문화적인 유적지가 옛 모습 그대로 많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그렇게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도시이기 때문에 이곳은 스페인 역사에서 수많은 유명한 사람들을 비롯하여 예술가 등이 이곳에서 태어났거나 또는 이곳에서 살면서 활동하였던 곳입니다.

톨레도는 옛날 기독교 국가였던 서 고트 왕국의 수도였으며, 북아프리카에 살던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8세기에 정복한 이후부터 이곳은 줄곧 그들의 수도 역할을 하였었으며, 이슬람의 코르도바 칼리파(Califato de Córdoba)가 이곳을 다스릴 때가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였습니다. 이때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유대교, 이 세 종교가 공존하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toledo spai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세르반테스의 소설 속의 주인공인 “돈키호테(Don Quixote)”를 이야기 하지 않고는 스페인을 특히 똘레도를 이야기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스페인 사람 몇 명이 모이면 그 중에 반드시 돈키호테와 같은 사람이 꼭 한 명 있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만큼 돈키호테는 스페인의 국민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돈키호테(Don Quixote)라는 사람은, 다소 무모한 면도 있지만 이상과 열정이 있는 저돌적인 성격의 소유자로써 그와 같은 모습이 정열적인 스페인 문화와 국민성을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인 마드리드의 중심에 위치한 에스파냐 광장에는 “로시난테”를 타고 있는 비쩍 마른 “돈키호테”와 배불뚝이 “산초 빤사”의 동상이 시내를 굽어보고 있고 또 그 위에는 그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 세르반테스의 동상이 서 있는데, 이와 같은 동상은 스페인의 국민성을 상징하고 있는 동상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에서 유통되었던 동전에도 국민작가 세르반테스를 새겨서 국민들의 변함없는 애정을 표현하였습니다. 영국에 세계적인 문호 세익스피어가 있다고 한다면, 스페인에도 세계적인 문호 세르반테스가 있는데, 그가 소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입니다. 이 두 사람은 묘하게도 1616년 4월 23일, 같은 날에 세상을 떠났으니 그날은 두 명의 세계적인 대문호를 동시에 잃은 날인 것입니다.

이곳 똘레도(Toledo)에도 도시의 중심인 “소코도베르(Socodover) 광장”에서 성문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알칸다라 다리”로 이어지는 곳에 세르반테스 길이 있고, 길 가운데에는 그의 동상이 우뚝 서있습니다. 그리고 이 도시의 기념품 가게에 가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나무나 청동으로 제작한 바짝 마른 모습의 돈키호테와 배불뚝이 산초 빤사(Sancho Panza)의 모형들입니다.

돈키호테와 그의 시종 “산초(Sancho)”가 살던 곳은 스페인의 카스티야-라 만차(Castilla-La Mancha) 지역이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카스티야-라 만차(Castilla-La Mancha)는 경기도이고, 톨레도는 서울인 셈입니다.

소설 “돈키호테”를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의 이름이 “맨 오브 라 만차(Man of La Mancha)”라는 제목을 갖게 된 것도 주인공인 돈키호테의 출신 지역이 Castilla la Mancha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598년에 그려진 똘레도의 모습

2015년에 찍은 꼴레도의 모습(1598년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Puente de Alcántara 1850, Toledo Spai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850년에 촬영된 Toledo의 타구스 강에 놓여있는 알깐따라 다리에서 보이는 똘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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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0년 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크게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AD 9 세기에 알폰소 6세가 이곳(Toledo)을 카스띨랴(Castilla) 주의 수도로 삼아 그 전성기를 이루었었으나, 16세기에 이르러서는 수도를 마드리드(Madrid)로 옮기면서 그때부터 이곳의 시계는 멈추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이 둘러 볼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이 시계의 움직임이 멈추어버렸던 16세의 모습과 거의 비슷한 모습이라고 보아도 무난할 것입니다.

톨레도는 1986년에 유네스코에 의하여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재건축할 수 없도록 하였으며,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도시 전체가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의미는, 도시의 어디를 가더라도 그곳이 바로 볼거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톨레도 대성당(Cathedral de Toledo)”은 가장 유명한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27년에 짓기 시작하여 1493년에 완공되었으니까 이 성당을 짓는 데만 266년이 걸렸던 건축물입니다. 이 성당에는 톨레도를 가장 사랑하였던 화가라고 할 수 있는 “엘 그레코”가 1579년에 그린 작품으로 “엘 에스폴리오(el Expolio, 옷이 벗겨지는 그리스도)”라는 성화 작품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톨레도 대성당(Cathedral de Toledo, Catedral de Santa Maria)

전통 스페인 스타일의 고딕 양식으로 건축되어진 성당 건물로써, 1226년에 까스틸랴의 왕 페르난도 3세 때 당시 최고의 건축가였던 “페트루스 페트리(Petrus Petri (also Pedro Pérez)”가 기초를 쌓으면서 건축되기 시작하여 1493년에 스페인이 통일 된 후에 완성된 가톨릭 성당입니다. 이 성당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부르주 대성당을 모델로 삼아 설계되고 건축되어졌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고딕 양식으로 건축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톨레도 대성당은 오랜 기간 동안 건축되어진 건축물이었기 때문에 그러하였던지 여러 가지 다른 양식으로 건축되어진 곳도 많이 볼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당의 회랑은 이슬람 건축물에서 볼 수 있었던 무데하르(Mudejar) 양식의 특징을 살려가면서 실내를 장식하여 건축하였고, 또 다른 어떤 곳은 스페인 르네상스 스타일로 장식하여 건축되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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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레도 대성당의 Transparente라고 불리는 내부 장식

톨레도 대성당에서 대표적으로 유명한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의 것은, “Narciso Tome”의 작품으로 “트란스빠렌떼(Transparente, 투명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품으로써,
대리석과 설화 석고로 제작한 화려한 제단의 장식인데 아주 특이합니다.

그의 작품 “뜨란스빠렌테(Transparente)”는 위편의 둥근 천정을 깎아 구멍을 낸 다음에 그가 조각한 작품들과 성화들을 그려넣음으로써 그 구명을 통하여 빛이 들어 올 수 있도록 하였고, 그 밑의 제단에는 인물 아이콘들로 제단 위를 장식함으로써 천정의 구멍을 낸 곳의 창문을 통하여 들어오는 태양 빛을 받게 하여, 마치 영적인 빛을 반사하여 이루어지는 후광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제단에 조각된 인물상 아이콘들이 신비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효과를 극대화 시키면서 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천정의 구멍으로부터 줄을 늘어뜨린 후에 그 줄에 똘레도의 가톨릭 주교가 사용하였던 모자를 매달아 놓았는데, 모자의 술이 늘여뜨려진 바로 아래에는 그 주교의 관을 바닥에 뭍어 놓은 후 그 관을 덮고 있는 바닥에는 그 주교에 대한 기록을 적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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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번째가 “el Greco”의 작품인 “엘 에스폴리오(el Expolio, 옷이 벗겨지는 그리스도)”입니다. 당시의 위대한 화가  “el Greco”가 그린 “el Expolio” 그림은, 어두운 색감으로 표현되어 있는 군중들과 로마 군인들 그리고 상대적으로 붉은 옷을 입고 밝은 빛을 받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비교하여 보면서 감상하게 되면, 십자가의 죽음 앞에선 예수님과 예수님을 조롱하며 그를 죽이려고 하는 주위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읽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은 하나같이 어두운 색조를 띠고 있어서 어두운 그림자와 같거나 마치 죽은 좀비와 같거나 혹은 죽은 유령과 같은 모습으로 서 있으며, 사형을 집행하는  로마 군인들이 들고 있는 창날들은 마치 사단의 뿔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역시 예수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마치 눈길을 피하는 듯 하고 있는 표정으로 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비교적 정상적으로 그려진 인물은, 핏빛과 같은 붉은 색의 천을 휘감아 입은 채 무엇인가를 갈망하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예수님뿐입니다.

“엘 그레코”는, 지중해 동쪽에 있는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서 태어난 화가로 본래 이름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Domenicos Deotocopulos)”였습니다. 스페인에서 화가로서 활동할 때, 사람들은 그가 그리스에서 온 사람이었으므로 “그리스 사람”이라는 뜻인 “엘 그레코(el Greco)”라는 별명으로 불렀는데, 그는 이 별명을 그의 이름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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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el Expolio” 그림과 관련된 일화가 있는데, 이 그림에서 예수님이 서 있는 위치가 그를 조롱하고 있는 군중들과 로마 군인들보다 더 아래에 그려져 있다고 하는 것에 종교인들이 문제 삼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화가 “엘 그레코”를 종교 재판에 회부하였으며 그렇게 (예수님을 로마 군이들 보다 아래에 위치하도록 )그렸다는 이유때문에 마침내 그를 투옥하였다고 하는 일화입니다.

30대 중반에 에스파냐(Spain)의 궁중화가로서 톨레도에 정착했던 “엘 그레코”는 어느 곳보다 이 도시를 사랑하여 궁중화가의 일을 그만둔 후에도 평생 동안 이곳에 남아서 그림을 그려서 생전에 수많은 걸작품들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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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 대성당은 폭이 약 113 m이고 폭이 약 57 m이며, 전체적으로 88개의 기둥들이 이 건물을 받쳐주고 있으며, 성당의 중심부는 약 45 m의 높이로 웅장하게 솟아 있고, 750개에 달하는 Stained Glass 창문들이 신비한 빛을 통과시켜 주면서 성당 안을 비추어 주고 있습니다.

3 arch entrance Catedral de Toledo spai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높이가 약 92 m에 달하여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종탑 옆으로는 대성당의 입구로 사용되는 15세기의 화려한 고딕 스타일의 크고 작은 아치문 3개가 있는데  이 문을 “사자의 문”이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 원래는 이 문을 “기쁨의 문”이라고 불렸었는데 1646년에 그 앞에 쇠창살을 설치하면서 쇠창살 기둥 위에 여러 개의 사자 상들을 조각하여 얹어 놓음으로써 이 문을 “사자의 문”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 아치문의 가운데 있는 문 위부분에는 12 사도들의 조각들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3 개의 문 중에서, 중앙에 있는 문은 “용서의 문”이라고 불렸으며, 좌측에 있는 문은 “지옥의 문”,
그리고 우측에 있는 문은 “심판의 문”이라고 불리고 있는 문입니다.

왼쪽에 있는 “지옥의 문”이라고 불리는 문으로는 사람들이 지나다니기를 꺼려하였고, 오른쪽에 있는 “심판의 문”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열리게 될 문이라고 하여 항상 닫혀 있는 문이기 때문에 그 문을 통하여 들어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운데에 있는 “용서의 문”을 통하여 성당 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성당의 정문으로 사용되고 있는  “용서의 문”을 들어서게 되면, 오른쪽으로 성가대 좌석이 있고, 왼쪽에는 황금을 입혀서 제작한 제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돔 모양의 천정 아래에는 제단 위 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상이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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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문”을 통하여 성당 안으로 들어서게 되면 그 웅장한 모습에 옷 메임새를 추리게 됩니다. 45 m 높이의 중앙 돔이 있는 내진부에 들어서게 되면 “성가대의 창살(Choir Grille)”이라고 불리는 고딕식 스타일의 성가대 석을 만나게 됩니다. 이 성가대 석은 2 부분으로 나뉘어 제작되었는데, 아래 부분에 있는 성가대석은 “로드리고 알레만” 이라는 조각가가 호두나무를 깎아서 제작한 성가대 의자들이 놓여 있습니다.

choir stalls Catedral de Toledo spai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호두나무로 조각한 성가대석의 디테일

이 의자들의 등받이에는 기독교 국왕이 이슬람교도가 지배하고 있었던 그라나다 왕국을 정복하는 과정들을 조각하여 놓음으로써 당대의 역사를 슬라이드로 보는 듯합니다.

그리고 성가대석의 상단부의 중앙에는 대주교가 앉는 좌석이 마련되어 있으며 그 위에는 변화 산 위에서 변화되신 예수님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성가대석을 둘러싸고 있는 외벽에는 창세기와 출애굽기에 관련된 인물들과 장면들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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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대석 위에 설치되어 있는 파이프 오르간은 특이하게도 파이프가 나팔처럼 돌출되어 설치되어 있으며, 성가대석의 왼쪽과 오른쪽 위에 설치되어 있는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은 서로 다른 양식으로 제작되었는데 왼쪽에 화려하게 보이는 오르간은 바로크 양식으로 제작된 것이고, 오른쪽 오르간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제작된 것입니다.

그 성가대석 앞의 중앙부분에는 지휘자대와 어린 예수를 품에 안고 미소를 띄고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이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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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대석의 건너편에 있는 황금 제단에는 화려하기 그지없도록 화려하게 장식된 제단이 있고 그 위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상이 공중에 메달려 있습니다.

toledo cathedral altar - Google Search Transparente

뜨란스빠렌떼의 디테일

신비한 빛을 통과시키고 있는 스테인드 그라스의 빛을 보고 회랑에 걸려있는 프레스코화로 된 그림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르시소 토메의 트란스파렌떼(Transparente)라는 조각품들오 장식된 제단 앞에 멈추게 되면서 신비한 빛을 쏟고 있는 천정을 보게 됩니다.

연결되어 이어지는 작은 예배당을 따라가다 보면 작은 예배당의 벽감에 “쿼바디스(Quo Vadis)”라고 불리는 조각상이 놓여 있는 그곳에는 온갖 보물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 나옵니다.

이곳은 이 성당에서 유일하게 이슬람 건축 양식인 무데하르(Mudejar) 기법으로 천정을 장식한 박물관과 천정에 그려진 대형 성화가 있는 성물보관실로 자연스럽게 들어서게 됩니다.

산토 토메(Santo Tome) 성당

톨레도 대성당을 나와서 골목길을 따라가다가 보면 주 의회 건물이 나오는데 그 옆에 “산토 토메(Santo Tome)” 성당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엘 그레코”의 명작 중의 하나인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El entierro del Conde de Orgaz)”라고 불리는 그림(벽화)이 있는 곳입니다.

톨레도의 전승에 의하면, 그의 생애 동안에 구제와 자선 사업을 하면서 살았던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이 있었을 때 하늘로부터 두 성인이 내려와서 오르가스 백작의 영혼을 하늘로 이끌어 올라갔다고 합니다.

오르가스 백작은 이 성당을 건축할 당시에 재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산토 토메 성당을 위하여 그의 유산을 헌금하겠다고 하는 그의 유지가 받아들여져서 성당의 건축을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오르가스 백작이 죽은 지 260년이 지난 후인 16세기 말에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엘 그레코”에 의해서 이와 같은 전설이 커다란 그림(벽화)으로 그려지게 된 것입니다. 이 벽화는 약 9개월에 걸쳐서 그려졌다고 합니다.

santo tome church toledo spai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El entierro del Conde de Orgaz)”라고 하는 이 그림은 장례식에 참예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중심으로 하여 2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각 사람들의 얼굴은 고요하면서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처럼 엄숙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장례식에 참예하고 있는 사람들의 머리들 위로는 영의 세계가 펼쳐져 있는데, 구름 사이로 금발의 천사가 죽은 백작의 영혼을 감싸면서 올라가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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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가스 백작의 시신을 받치고 있는 성인 어거스틴의 모습은 거룩하게 보이며, 부드러운 손으로 시신의 발을 감싸고 있는 순교자 스테반의 모습은 다정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왼쪽에 횃불을 들고 있는 젊은이는 엘 그레코의 아들인데 검지손가락으로 매장되고 있는 오르가스 백작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서명 란에는 엘 그레코의 본명이 서명되어 있으며, 서명 날자는 특이하게도 그의 아들이 태어난 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벽화에는 엘 그레코 자신의 자화상도 함께 그려 넣었습니다. 성인 스테반의 모습 바로 위에 그려진 사람의 모습이 바로 “엘 그레코”의 자화상이었는데 그의 시선은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의 눈과 마주하고 있도록 그렸습니다.

엘 그레코는 보이지 않는 영혼을 표현하면서 갓 태어난 아이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그려 넣었는데, 이와 같은 표현은 죽은 영혼이 하나님 품안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성당에는 이 벽화 외에는 별로 볼 것도 없는 데에도 입장료를 따로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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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톨레도 시내 풍경들

톨레도의 오래된 골목길들은 빛바랜 사진들처럼 낡았으면서도 고풍스러운 멋스러움이 스며있는 곳입니다.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이 활력이 넘치고 정열적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는데 반하여 톨레도는 매우 정적이며  차분하게 느껴지는 도시였습니다. 마치 시계가 멈추어버린 중세 시대의 어느 때에 서 있는 것같은 착각이 드는 무채색의 도시였습니다.

톨레도 도시 전체가 바위로 된 암석지대 위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소코도베르(Socodover)언덕을 중심으로 하여 펼쳐지는 시가지의 모습들은 좁고 꾸불꾸불하며, 가파른 경사도 많고, 지면도 고르지 못하여 걷기에 조금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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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의 골목길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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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를 둘러보는 재미는 중세풍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성당들과 Tajo 강 옆에 있는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겠지만, 중세풍으로 돌이 깔린 좁은 골목길을 마치 길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헤매면서 걸어다는 것 또한 톨레도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 도시의 전성기였던 중세 시대에 기독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의 투쟁이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치열하였던 곳이기 때문에 대성당을 중심으로 하여 도시의 구조들과 성벽으로 이루어진 중세 도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 톨레도입니다.

도시는 대성당을 중심으로 하여 빽빽하게 오래된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데, 이러한 집들이 있는 좁은 골목길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꼬불꼬불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주택들은 2층 또는 3층으로 지어졌는데,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재료로 지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이고 저택 중앙에 마당을 두고 있는 주택 양식을 “중정식 주택:이라고 부르는데, 이와 같은 집들은 고대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와 같은 사막의 더운 기후에서 햇볕을 피하기 위한 구조로 건축되어진 집들입니다.

로마의 폼페이 유적이나 이후의 중세 도시국가나 근대국가의 상류층에서 선호했던 주택의 형태가 주로 이런 형태였습니다.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 주택구조로써 1층은 정원과 식당,   작은 거실과 Living Room, 그리고 손님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사용하였고, 집주인은 2층이나 3층에서 거주하는 형태입니다.

대성당 뒤편에는 극장과 시장이 있는 작은 공원이나 광장이 있습니다. 이 작은 광장에는 중세 시대부터 사용되었던 것 같은 분수대가 주민들이 식수를 제공하여 주었고 빨래도 할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대성당 부근에는 다른 골목길보다는 약간 넓은 길이 있지만, 대부분의 골목길은 매우 좁거나 계단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자동차가 지나갈 수 없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톨레도 대성당의 북쪽 방면에는 다른 지역보다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길거리들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보니 부유층이 살고 있는 지역처럼 느껴졌습니다.

톨레도의 중심가인 상가 지역은 대성당 뒤편으로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는 작은 상가가 있는데 큰 건물에 마트(Mart)가 있고 그 마트에는 채소를 파는 곳, 고기를 파는 곳, 그리고 해산물을 등을 파는 곳이 있는데 고작 약 200 m 정도의 상가들이 들어서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곳 마트에는 스페인 사람들이 애용해서 먹는 음식인 “하몽(Jamon)”이라는 전통 햄을 파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몽(Jamon)은 돼지 다리를 소금에 절여서 말린 것으로 생긴 모양새는 마치 훈제하여 말려놓은 족발처럼 생겼습니다. 훈제(Smoked)방식으로 만든 전통 햄과는 생김새가 비슷하게 생겼지만 돼지의 다리를 날 것을 말려서 그런지 퀘퀘한 냄새가 많이 납니다. 이것을 얇게 썰어서 빵에 넣어 샌드위치처럼 만들어 먹습니다.

이곳 톨레도는 로마 시대부터 강철로 만든 검(Espadin)을 생산해왔던 곳으로 오랜 세월동안 그 명성을 이어 오고 있는 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 고유의 무데하르 전통 양식으로 장식된 금속세공품을 생산하고 있는 곳입니다.

유대인들의 촛대를 비롯하여 각종 보석함, 술잔 등 다양한 형태의 생활용품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기술들은 중세시대에 판금 갑옷을 만들던 기술이 발전되어서 생활 용품을 만들게 된 것 같습니다.

이런 금속 세공품들은 이곳의 아랍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인데, 중세시대 스페인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금속 세공품들입니다.

중세시대 기사들의 상징이었던 검의 명산지로 알려져 왔으며, 검과 함께 조각용 금속판 또한 아직까지도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고 전통적인 양식으로 장식된 금속 세공품도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여러 기념품 가게에서는 금속세공품을 많이 팔고 있습니다.

그 이외에도 톨레도가 중세 스페인의 중심지로서 그 역사성으로 인해서 중세 기사와 관련된 금속 판금의 갑옷이나 투구와 같은 기념품들과 가톨릭교회와 관련돼 있는 많은 기념품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Portugal의 Lisbon까지 흐르는 타구스 강의  Alcantara  다리와 San Martin 다리

이 성채의 성벽들은 대부분 아랍계 이슬람 교도들이었던 무어 시대와 기독교도 왕국 시대에 건설된 것들인데, 1086년에 이곳을 다스렸던 알폰소 6세가 성으로 들어가는 다리로 건설하여 사용하였다고 하는 “La Puerta vieja de Bisagra 다리”를 비롯한 여러 시대에 걸쳐서 건축된 다리들은 Toledo의 성안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로 사용되었는데, 보존상태가 좋아서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다리도 있습니다.

똘레도를 감싸면서 흐르고 있는 타호(Tajo) 강에는 2개의 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북동쪽에 있는 “알칸다라 다리(Alcantara Puente)”는 로마 시대와 중세 시대에 건설된 San Servando 성 기슭에 놓여 있는데, 이 다리는 톨레도로 들어가는 관문 중의 하나로서 상당히 높은 협곡 위에 아치형으로 교각을 세워서 돌로 쌓아 만든 다리입니다.  다리의 폭은 2 대의 마차가 겨우 엇갈려 지나갈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북서쪽에 있는 다리는 13세기에 세워진 “San Martin 다리”입니다.

알칸따라(Alcantara) 다리

san martin bridge toledo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San Martin 다리

소코도베르 광장 (Plaza de Zocodover)

좁아졌다가 넓어지기도 하며, 비틀비틀 휘청거리며 꼬여 버리듯,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는 길을 따라 가다가 언덕 위에서 멈추게 되는 곳이 바로 “소코도베르 광장(Plaza de Zocodover)”입니다.

이 광장은 옛날 아랍 사람들의 가축시장(Suk-al Dawab)이 있었던 곳입니다. 1960년대까지 이와 비슷한 시장이 이곳에서 매주 화요일마다 이곳에 섰다고 합니다. 이 광장 부근에는 16세기에 세워진 “소코도베르 성당”이 서 있고, 이 광장에서는 “투우 경기”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종교재판에서 사형이 언도된 화형식도 이곳에서 거행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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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코도베르 광장 (Plaza de Zocodover)

스페인에 와서 톨레도를 둘러보지 않는다면 스페인을 보지 않은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톨레도는 작은 로마, 또는 작은 메카, 그리고 작은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는데, 로마 시대 이후에 건설되었던 기독교 건축물들과 문화, 이슬람의 문화와 건축물들은 물론 유태인들이 오랫동안 정착하여 살면서 그들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톨레도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톨레도의 옛 도성은 Tajo강이 흐르는 거대한 협곡 위에 해발 527 m높이로 솟아 있는 중세의 도시입니다. 북쪽을 제외하면 Tajo 강의 곡류가 깎아 놓은 듯한 천혜의 협곡이 똘레도의 3면을 돌아 흐르고, 북쪽으로는 성벽들이 단단하게 쌓아져 있었으므로 천연적인 요새로서의 톨레도는 좀처럼 침략당하지 않은 상태로 보존되어 왔기 때문에 마치 중세에서 시간이 멈추어버린 것과 같이 보이는 박물관과 같은 도시입니다.

비사그라(Bisagra)성문

옛 톨레도의 도성으로 들어 갈 수 있는 성문은 모두 9개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비사그라(Bisagra)성문”은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문으로써 1550년 Carlos 1세의 명령에 의해서 건설되었고 Pelipe 2세에 의해서 확장되어 완성된 성문입니다.

성문의 왼쪽과 오른쪽에 균형 있게 세워진 원통형 성벽이 서 있고 원통형 성벽에는 대포를 설치하였던 구멍이 있습니다. 이 성문의 위부분에는 Carlos 5세를 상징하는 쌍두독수리 문장이 화강암에 새겨져 있는데 이 문장은 마치 톨레도 성의 이름표와 같이 성문 위에 단단히 붙어 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 가운데 역사를 이어왔던 스페인을 이해하는데 우리들이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단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구분하기에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해하는데에도 어려운 단어가 “모사라베”라는 말과 “무데하르”라는 말일 것입니다.

“모사라베(Mozárabe)”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말하자면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은 기독교도를 말하는 것인데, 문화적으로는 이슬람 문화로 편입되어 버린 기독교 문화를 말합니다. 또 “무데하르(Mudejar)”는 기독교 국가에서 살고 있는 이슬람교도를 말하는 것인데, 문화적으로는 기독교 문화로 편입되어 버린 이슬람 문화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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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식이 첨가된 모사라베(Mozárabe) 양식으로 건축된 기독교성당

이렇게 이슬람의 문화와 기독교(가톨릭)문화가 섞여있는  “모사라베(Mozárabe)”와 “무데하르(Mudejar)”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으면서 마치 비빔밥과 같이 서로 어울려서 맛을 내고 있는 혼합문화의 도시가 바로 톨레도의 문화적인 실제의 모습입니다.

capilla mozarabe catedral toledo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똘레도 대성당에도 볼 수 있는 모사라베(Mozarabe)문양과 양식으로 건축되어진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알카사르 (Alcazar de Toledo)

톨레도는 우리들이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보았던 적이 있는 타호(Tajo) 강의 상류에 해당되는 강이 도시를 휘감아 돌아가는 곳에 있는 고대 도시입니다. 고대 로마 사람들이 이곳을 정복하여 요새를 구축한 이후로부터 성벽이 쌓여진 도시였습니다.

그 후 이곳을 통치하였던 게르만 민족의 한 지류인 서 고트 왕국, 그 다음에는 이슬람교도들이었던 무어 족, 그리고 스페인의 가장 강력하였던 까스띨랴(Castilla)성(省)의 수도로 발전하였던 도시였으며, 천연적인 지형을 이용하여 그들의 요새를 건축하였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톨레도는 경사가 가파른 암벽 지대의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그 암벽 지대를 싸고 감돌면서 협곡이 아주 깊은 Rio Tajo (타호 강, Tagus River)이 흐르고 있어서 천혜의 요새로서 충분한 지형을 가지고 있는데, 이곳에 왕궁과 함께 알카사르(Alcazar)라고 불리는 요새가 있었고 그 아래에는 톨레도 대성당과 같은 교회당들과 주택들이 들어 서 있었습니다.

Alcazar de Toledo toledo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톨레도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Tajo 강을 가로지르는 알칸타라 다리의 끝에는 톨레도 요새의 성문과 망루의 역할을 하던 방어 시설물들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절벽을 따라서 성벽이 쌓여 있고 그 성벽 안쪽으로 Alcazar가 들어서 있습니다.

톨레도 성채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쌓아진 요새였으며, 20세기(1900년대) 초반까지 성채로서의 그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볼 수 있는 성채(Alcazar)는, 1936년 7월에 프랑코 장군이 쿠테타를 일으키면서 시작되었던 스페인 내전 당시에 톨레도의 모든 요새들과 함께 파괴되고 말았는데 1939년 4월에 내전이 끝나게 되면서 그 이후에 복원한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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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cazar 요새 안의 모습

1852 Alcazar de Toledo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852년에 그려진 Alcazar de Toledo 안의 모습

1936 Alcazar de Toledo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936년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으로 파괴되는 Alcazar의 모습

성문을 들어서면 “L”자 모양으로 생긴 좁은 통로가 나오는데 이곳을 지나야 성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적들이 공격하기에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 “L”자로 된 좁은 통로를 지나게 되면 두 번째 성문이 나옵니다.

이 작은 두 번째 성문을 또 다시 지나게 되면 올라가는 구부러진 형태로 좁은 계단이 있는 길이 나오게 되므로 적들이 공격해 들어가기 힘들도록 만들었습니다.

톨레도의 성채의 성벽은 비슷한 크기의 자연석 돌을 별로 가공하지 않은 상태로 쌓아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성문과 좁은 통로와 계단을 통하여 왕궁으로 사용되었던 alcazar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절벽 밑에 흐르고 있는 Tajo 강 옆에 있는 절벽 위에는 높은 망루를 쌓아서 주변을 감시하는 곳을 세워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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