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심령을 안고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Off

우리 중에 태어나면서 우는 법을 배운 사람 있습니까? 기억이 나지 않으시겠지만 우리는 따뜻하고 안전한 엄마의 배 속을 떠날 때 처음으로 낸 소리가 우렁찬 울음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의 출발점은 동일합니다. 모든 인생은 눈물로 시작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웁니다.

하지만 애통은 울음과 다릅니다. 애통은 기도입니다. 애통은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우는 것은 인간적이지만, 애통하는 것은 신학적입니다.

애통은 피어오르는 의심과 씨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도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 왜 내게 이런 아픔이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 언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까?” 힘든 상황으로 인한 애통도 있고, 남들의 잘못으로 인한 애통도 있습니다. 개인의 애통도 있지만, 공동체가 애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애통은 고통과 실망을 지나 찬양으로 가는 통로입니다. 고통과 긍휼 사이의 틈에서 애통의 노래가 불려집니다. 시편은 애통으로 가득합니다. 이것이 시편이 가장 사랑받는 성경 중 하나인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편 저자는 고통 중에 있지만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기도로 울부짖습니다. 이러한 태도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애통의 기도를 하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여는 것입니다. 애통의 기도는 침묵보다 낫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애통하지 않고 절망합니다. 정말 나쁜 것입니다. 이것은 불신입니다. 하나님을 포기한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 아뢰기를 멈춘 크리스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영적 사막에 갇혀 하나님과 대화를 거부합니다.

사랑하는 하은교회 여러분, 그 어떤 실망스러운 일, 슬픔, 질병, 그리고 심지어 죽음을 당해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습니다. 애통의 기도는 이런 사랑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우리에게 우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눈물은 인간 삶의 뗄 수 없는 일부입니다. 이제는 애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기도로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새 3주차로 들어갑니다. 마음을 부여잡고 애통의 기도로 부르짖읍시다. 삶의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입니다.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