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애매 하십니까?

인생이란 풀리지 않는 문제들과 애매한 승리와 모호한 패배의 연속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많은 부분이 애매합니다. 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 생활에서 애매하게 여겼던 부분을 꺼내놓고 애매한 것을 명확하게 정해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애매한 점이 있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숨기고 확실한 척하는 것이 문제이지요. 일상 속에서 애매한 것을 정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 거룩의 애매함

    여러분은 오늘 거룩한 삶을 사셨습니까? 거룩은 따로 떼어놓았다는 뜻인데 그래서 구별된 삶, 시간, 돈을 말하는데 과연 나는 거룩한가요?

    거룩한 삶의 첫 걸음은 언어입니다. 언어는 오랜 시간 사람을 사로잡히게 하는 무서운 무기입니다. 가끔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 중에 함부로 말을 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듣는 이들이 상처를 받는지 본인은 모릅니다. 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뜨겁게 신앙생활을 한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결코 본이 되지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을 향해 나의 언어는 어떤 모습인가? 어려운 이웃을 향해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나는 거룩하려는 훈련하고 있는가?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 고난의 애매함

    누구에게나 고난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산다는 것은 고생이다 라는 말도 있을까요. 우리 말에도 대문 밖에서는 행복해 보이지만 막상 문 열고 들어가면 문제 없는 집 없다고 합니다.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려운 고통의 흔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인데 왜 고난을 주실까요? 고난은 이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깨닫게 하시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의인이라고 해서 고난으로부터 면제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그들은 고난의 이유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이 고난 가운데 역사하시는 체험함으로 믿음을 더 완전히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고난 중에 함께 하십니다. 피하게 해 주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다만 너와 함께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에게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불 가운데 지날때에도 함께 하시겠다 하셨습니다.

    고난의 이유, reason을 찾을 것이 아니라 고난에 대한 반응, response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야 고난 당하는 게 나에게 유익이라고 노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아직도 애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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