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달란트와 백데나리온 By 전지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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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친한 친구와 교회 앞마당에서 자주 구슬치기 놀이를 했습니다. 친한 친구와 함께 즐겁게 지낸다는 것 자체로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놀이 중에 여러 번 속임수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작은 것이었지만, 당시에는 정말 친한 친구가 나를 속였다는 것에 마음이 상해 오랜 시간 동안 친구를 용서하지 못하고, 어울리지 않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용서하면 내가 손해 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손해 보는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언제나 성경의 가르침, 주님의 뜻은 이 시대의 지혜와는 반대의 것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용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큰 주제입니다. 기도에 대한 가르침의 마지막도 용서입니다. 산상수훈의 한복판, 주님의 기도 종결 어도 용서입니다.

예수님은 숫자로 용서를 이야기 하신 적이 있습니다. 만 달란트 빚진 자와 백 데나리온 빚진 자. 한 달란트가 육천 데나리온이니 만 달란트는 육천만 데나리온, 천문학적 숫자입니다. 한 데나리온이 하루 일당임을 고려하면 육천만 날의 분량, 십육만오천 년의 분량이니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번씩 하나님을 향해 용서받지 못할, 하나님의 마음을 후벼파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다 받아 주시고, 용서하셨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용서의 양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백 데나리온, 그 어떤 것도 백일 정도면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양이 우리들 사이의 용서입니다. 내가 받은 용서의 양을 생각하면, 용서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자비하심같이 우리도 자비롭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오늘 용서하지 못한 누군가가 있습니까?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나를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온전한 자유와 기쁨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용서하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먼저 용서받은 자이기에, 용서하는 자가 마땅하다 하십니다. 한 주간 용서 리스트를 적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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