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벽 터널(Western Wall Tunnel)
지금 우리들이 방문하여 볼 수 있는 “서쪽 벽(통곡의 벽)”, 즉 밖으로 드러나 있는 “Western Wall”의 길이는 약 60 m 가량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벽은 땅속에 묻혀 있기 때문에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발굴되어 있는 터널(Western Wall Tunnel)을 통하여 서쪽 벽의 나머지 부분이었던 485 m의 벽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western wall tunnel map
1967년에 있었던 제 3차 중동 전쟁(6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성전 산의 서쪽 벽을 본격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했으며, 그 과정에서 성전 산 서쪽 벽 지하에서 오랫동안 묻혀 있었던 길이 485m의 긴 터널을 완전히 발굴하게 되었습니다. 이 발굴 과정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동반되었습니다. 성전 산의 서쪽 벽(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이 관리하고 있었던 유대인들의 구역에 있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서쪽 벽 터널의 북쪽 끝 부분은 무슬림들이 거주하는 구역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슬림들은 서쪽 벽 터널을 발굴하는 것이 자신들의 최고의 성지인 바위 돔(황금 돔)에 피해를 끼친다고 생각해서 매우 극렬하게 반대하였던 것입니다.
1967년 6일 전쟁이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난 후, 이스라엘의 종교청은 서쪽 벽을 계속해서 발굴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고, 이후로부터 20년간 발굴 작업이 지속되어 왔으며, 1988년에야 비로소 일반인들에게 전면으로 공개되었습니다. 이 서쪽 벽 터널이 1988년에 일반인 관광객들에게 공개되었지만, 서쪽 벽 터널의 끝부분인 북쪽 부분은 그곳이 무슬림들의 거주 구역이어서 그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쳤기 때문에 터널의 출구를 낼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6년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는 무슬림 거주 지역에 속해 있는 “슬픔의 길(Via Dolorosa)”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길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어 가셨던 가신 길, “비아 돌로로사”의 북쪽 출구를 내도록 허가하였는데 이때에 이러한 조치를 반대하던 Muslim들의 폭동이 일어나 무려 80명이 죽게 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Western Wall Tunnel의 입구
오늘날 서쪽 벽 터널에 가려면 서쪽 벽에 옆에 붙어 있는 건물로 들어가야 합니다. 거기에는 서쪽 벽 터널을 설명하는 안내인들이 대기하고 있어서 그룹을 지어 그들의 안내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고고학자들은 19세기 중엽부터 처음으로 서쪽 벽(the Western Wall)을 파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1864년 Charles Wilson이 이 작업을 주도하였고, 이어서 1867년부터 1870년까지는 Charles Warren이 이 발굴 작업을 계속하였습니다. 이 때 지금의 도로 높이에 있는 12.8 m 넓이의 아치형 다리 흔적을 Charles Wilson이 이끄는 발굴단이 발견하게 되어 이 아치 다리를 “Wilson Arch”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 “Wilson’s Arch”가 아치 모양으로 성전 산의 헤롯 성전과 도시를 연결하도록 건설되었던 다리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발굴 작업을 이어받은 Charles Warren은 그곳을 계속해서 파고 들어가서 마침내 “Wilson’s Arch”의 모습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옛 헤롯 성전의 폐허 위에 아무렇게나 지어졌던 아랍사람들의 주택들에 의해서 이러한 발굴 작업은 순조롭지만 않았지만, 첨단 과학적 발굴 방법과 랍비들의 도움으로 발굴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1988년에는 Western Wall Heritage Foundation이 조직되어 Western Wall과 그 광장의 관리와 발굴 작업을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을 관광하는 이들에게 Western Wall의 터널들을 둘러보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 될 것입니다. 이 땅속에 있는 터널은 통곡의 벽에서 시작하여 현재 옛날부터 예루살렘 성안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주택지 밑을 통과하여 성전 산의 북쪽과 서쪽이 만나는 곳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이 터널이 발굴되었을 때 유대사람들은 예루살렘을 바벨론이 침공하였을 때부터 사라져버렸던 제기들과 성전의 성물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였던, 즉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에 있었던 법궤를 침략자들의 눈에 발견되지 못하도록 숨겨두었던 비밀 동굴이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하였기 때문에 발굴을 진행하면서 매우 흥분하기도 하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 터널을 따라가게 되면 마치 헤롯 성전 시대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할 것입니다. 기원전 2 세기의 하스모니안(Hasmonean) 왕조로부터 시작하여 AD 70년 로마 군대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까지의 헤롯 성전 시대 동안에는 예루살렘과 성전 산의 서쪽 지역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당시의 성전 산의 성벽에는 4 개의 문이 있었는데, 낮은 지역에 2 개가 있었고 높은 지역에는 육교와 같은 Arch Bridge를 이용하여 들어갈 수 있는 문 2 개(Wilson’s Arch룰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 문과 Robinson’s Arch를 통하여 들어갈 수 있는 문)가 있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된 성전의 파편들은 성전의 서쪽 부분에 약 2,000년 동안 방치되면서 땅속에 묻히게 되었는데 그 후 2,000년이 흐르면서 흙과 부스러기들에 의하여 덮여진 그 위에 제멋대로 지어진 집들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Western Wall을 따라 가면서 나 있었던 터널은 헤롯 성전 시대 당시에도 있었던 것이라고 결론지었던 터널이었는데 이 터널도 그 위부분에 건축되어 있었던 아랍 사람들 집의 하수도를 수리하기 위해서 공사를 하면서 땅을 파들어 가다가 발견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후 많은 부분들이 발굴되었지만 그러나 아직도 옛 예루살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많은 잔해들이 땅속 깊이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19세기 중엽부터 발굴하기 시작한 이 발굴 작업은 Ottoman(Osman Turkey) 제국의 통치 아래에서 여러 가지 제약을 받으면서 진전이 되지 못하고 있다가 1967년 6 일 전쟁 이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영토로 인수한 후, 고고학적인 발굴 작업과 동시에 재건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어 오고 있습니다.
Western Wall Tunnel을 볼 수 있는 지역은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구역의 북쪽으로부터 시작하여 Via Dolorosa(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셨던 길)의 Station #1에 가까이 있는 터널의 북쪽 출구까지 이어집니다. 1996년부터는 약 500 m에 달하는 터널의 모습들이 관광객들에게 완전히 개방되어 있지만, 한정된 인원만 하루에 이곳에 들어 갈 수 있으며, 사전 예약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비밀 통로(Secret passage)
로마 시대에는 헤롯 성전이 서 있었던 성전 산으로 올라가는 문이 여러 개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지금의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는 서쪽 벽 옆에 있었던 문은 “Wilson Arch”라고 불리는 곳을 통해서 들어가는 곳에 있었습니다.
Western Wall Tunnel 안에서 보이는 모습 (Wilson’s Arch의 아래에서 보이는 모습)
AD 1 세기에 “유대 전쟁 역사”를 기록한 역사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의 기록에도 Titus 장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는 것을 묘사하면서, 이 Wilson Arch에 대하여 언급한 것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을 AD 2 세기 또는 3 세기에 성전 산의 헤롯 성전이 서 있었던 곳에 로마의 신전을 세울 때, 보수하면서 Wilson‘s Arch를 수리하였다고 하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교도(무슬림)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을 때에도 “바위의 돔”에서 Al-Aqsa 모스크로 쉽게 갈 수 있도록 성전 산의 서쪽 성벽에 아랍 사람들이 다리를 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위치로 말하자면 “Chain street (Silsila)”라고 불리는 길, 그 위를 지나고 있는 길에 있었던 다리입니다.
Wilson’s Arch
그런가하면 헤롯 대왕 시대에 성전을 재건축하여 증축하면서 성전을 받치고 있었던 기초석에서 가장 큰 것은 높이가 4m 14cm나 되며, 그 무게도 무려 600 ton이나 되는 거대한 기초석인데 그 위에 성전의 터를 닦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을 짓던 때에도 1 ton ~ 3 ton이나 되는 돌 들을 60년 동안 쌓아가면서 기초를 놓았는데 서쪽 벽(통곡의 벽)도 그 중의 한 면이었습니다. Tunnel의 좁은 통로를 지나가면서, 서쪽 벽을 형성하는 바위돌 중에서 가장 큰 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거대한 돌의 무게가 약 570 Ton이며, 길이가 13.6m, 높이가 3.5m, 그리고 깊이가 4m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은 후, 3일이 지나서 부활하시고 승천 하신 다음에, 여러 신들을 믿고 있었던 다신교도들인 로마 사람들과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만 섬기는 야훼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들 사이에 종교적인 이유로 인하여 심한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로마라는 나라가 다신교를 믿는 나라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유일신 사상의 야훼(하나님)도 로마의 입장에서는 다신교의 하나의 신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종교를 인정하여 주었지만 그 반면에 유대인들은 오로지 야훼 하나님만 신이시고 그 외에는 우상이라고 하는 종교관 때문에 서로 상충되는 문제가 생겼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 이방신들에 의해서 굴욕을 받아가면서 살 수 없다고 하면서 AD 66년에 유대교 원리주의자가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폭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로마는 세금 문제만 해결된다면, 점령하고 있던 다른 나라의 종교에 대하여서는 크게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 앞으로 드려야할 재물이 로마인에게 간다는 것은 매우 불편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투철한 민족의식 때문에 로마와 마찰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마침 로마로부터 파견되어 주둔하고 있었던 로마 군인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유대의 독자적인 화패를 통용하는 등의 여러 가지의 문제들이 점점 깊어지자 로마에서는 집정관 베스파시아누스에게 폭동을 진압하도록 하는 군사적인 명령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로마의 집정관 베스파시아누스는 그의 아들 티투스 장군을 앞장세워서 이스라엘의 땅에서 일어났던 유대인들의 폭동을 무력으로 진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대의 폭동이 진압되면서 유대인들은 그들의 땅에서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그들의 조상들이 1,000년을 살아왔던 그들의 땅을 잃어버리게 되어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의 여러 곳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서부터 그들의 Diaspora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AD 4 세기 초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로마는 신성 로마 제국(비잔틴)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유대인에 대하여 약간의 관용정책이 펼쳐지게 되었지만 유대인들의 땅을 다시 회복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던 바로 그날을 기념하던 그 하루에만, 1 년에 단 하루, 무너진 성전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있었던 “서쪽 벽(Western Wall)”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때 이곳을 방문하게 된 유대인들은 서쪽 벽 앞에서 나라를 잃은 서러움에 통곡의 기도를 하게 되면서 그때부터 서쪽의 벽(Western Wall)은 “통곡의 벽(Wailing Wall)”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이 Western Wall은 헤롯 대왕이 증축하여 세워졌던 약 10만 ㎡나 되는 성전의 성전 터를 떠받들고 있던 4 개의 벽 중의 하나였습니다. 지상으로는 약 30 m, 지하로 약 18 m로 돌을 쌓아 올린 Wall(벽)입니다. 지금 밖으로 드러나 있어서 볼 수 있는 서쪽 벽의 길이는 약 60 m 정도이지만, 나머지 부분인 485 m는 서쪽 벽의 Tunnel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이 터널 입구에서 부터 성전의 서쪽 벽 방향으로 약 70 m 정도 뚫려 있는 비밀 터널이 있습니다. 비밀 통로가 끝나는 곳의 부근에는 지금도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발굴 중에 있는 곳으로써 헤롯 성전 시대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계단이 있습니다.
지금은 서쪽 벽의 Tunnel이라고 부르지만 이 터널은, 현대에 와서 성전의 서쪽 벽의 나머지를 발굴하면서 파 들어가다가 생겨난 터널입니다.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 병사들이 헤롯 성전을 완전히 허물어 버릴 때, 성전의 서쪽 벽 아래로 던져 버려졌던 돌과 건축물의 파편 등에 의해서 그곳이 메워진 곳이며, 그 상태로 오랜 시간 동안 묻혀 있었던 부분이었습니다.
커다란 홀 (Large Hall)
Wilson‘s Arch가 있는 곳에서 북쪽 방향으로 땅 밑에 있었던 굴에, 감추어져 있었던 곳에 높은 천정을 가지고 있으며 성전의 서쪽 벽에 붙어 있었던 커다란 홀(Hall)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헤롯 성전의 서쪽 벽을 받치고 있는, 길이가 약 14 m, 높이가 4 m이며 무게가 약 600 톤이나 되는 아주 커다란 반석이 기초석(Base stone)으로 놓여 있었습니다. 이 커다란 돌(Base stone)과 그 위에 쌓여 있었던 돌들은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고 돌과 돌들의 사이를 잘 맞추어가면서 쌓았기 때문에 그들 자체의 무게로 잘 연결되어 2,000년 동안 성전 산을 튼튼하게 받히고 있었습니다. 그 커다란 돌에는 직사각형의 구멍들이 나 있는데, 그 구멍들은 중세시대에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곳으로 사용될 때 벽에 설치물들을 고정시키기 위해서 뚫어 놓은 것으로 보여 지는 구멍입니다.
커다란 홀(Large Hall)
워런 문 (Warren Gate)
이 땅속에 있는 문(Warren Gate)은, 지금은 막혀 있는 문입니다. Wilson’s Arch에서 북쪽방향으로 약 40 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있으며, 이 문은 헤롯 성전의 저성소를 향하여 나있었던 문이었는데 Charles Warren에 의하여 1867년에 발굴되었기 때문에 “Warren Gate”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성전 산에 있는 “The Dome of the Rock”의 가운데에 놓여 있는 커다란 바위인 “The Rock (Hebrew: Ha-Sela)”은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 놓여 있었던 바위입니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하나님이 이곳에 계셨으며, 이곳에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전해지고 있는 바위이며,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했던 “모리아 산”의 그 바위라고 합니다. 이곳은 헤롯 성전의 지성소에 있었던 모리아 산의 정상의 바위 돌이 놓여 있는 곳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방향으로 놓여있는 주춧돌(The Foundation Stone)은 Temple Mount의 서쪽 벽의 기초가 되는 부분입니다.
Warren Gate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여인들
유대인들도 대제사장이 아니라면 성전 산 위 정상에 있었던 지성소가 되는 곳, “The Rock(Ha-Sela)”이 있던 곳, 옛 성전의 지성소가 있었던 곳까지 절대로 갈 수 없었습니다. 특히 여성들은 지성소가 있는 가까운 곳이라고 할지라도 그 근처에는 절대로 가까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곳, “Warren Gate”가 있던 곳은 유대인 여성들로써는 지성소를 향하여 최대한 가까이 갈 수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유대인 여성들은 이곳에서 지성소를 향하는 방향에 있던 기초석을 바라보면서 돌 사이에 그들의 기도문을 꼽아 놓고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Western Wall 터널에서 보이는 성전 벽
지금에는 이 터널 위에 아랍 사람들의 집들이 들어서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그 밑으로 터널을 파서 성전의 서쪽 벽을 따라 가고 있지만, AD 70년 이전까지만 해도 다른 성전 벽과 같이 그 아래에는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이 있었습니다. 로마 시대의 돌로 깔아 놓은 길 주위에서 커다란 돌들이 깨어진 상태로 버려져 쌓여 있던 것들이 발굴 과정에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 커다란 돌의 파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 성전의 벽으로 사용되었던 돌들의 파편이었으며, 로마 군인들이 아래의 길로 던져 버렸던 돌들이었습니다.
발굴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성전 파괴의 물증들은 오랜 시간 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던 돌들로써 남서쪽 성벽 밑에서도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Western Wall Tunnel을 계속해서 따라가다가 보게 되면, 성전 벽의 기초 석이 놓여 있는 곳을 따라서 가게 되는데 그곳에는 로마 시대의 길과 같은 높이로 그 길이가 몇 미터 되지 않는 간격으로 여러 개의 터널을 연이어 파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전 산의 북쪽 부분에 성전을 세우기 위해서 닦아 놓았던 성전 마당의 높이 보다 약간 높은 곳에 있었던 돌로 된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기 위하여 성전을 짓는 사람들이 일일이 깎아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형학적으로 모리아 산의 북서쪽은 성전이 있었던 곳보다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높은 부분을 깎아내는 공사가 반드시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을 건축하는 사람들이 헤롯 성전을 확장하여 짓기 위해서는 몇몇 바위들을 옮겨야 했으며, 밖으로 드러난 바위를 섬세하게 깎아 낼 수 있는 연장들을 사용하여 바위 돌을 깎아 맞추었습니다. 특히 남쪽에 있었던 커다란 바위들은 매우 정교하게 깎아서 맞추어 나갔습니다.
최근 고고학적 발견으로 숨겨져 있었던 “지하 방”이 발견되면서 그 과정에서 예루살렘에서 발견된 가장 큰 정결 예식용 Pool이 발굴되었습니다. 이 구조물은 기원전 6세기 후반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부터 성전이 파괴된 AD 70년까지 약 600년 동안 사용되었던 정결 예식용 Pool이었습니다.
헤롯 왕이 시작한 성전 건축과 주변 단지의 대대적인 건축 사역들을 예수님 시대 당시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었는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Western Wall Tunnel의 “Herod’s Hall”은 헤롯 왕이 죽은 지 수십 년 후에야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이 웅장한 건축물은 마가복음에서 예수께서 예언하셨던 것처럼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그 전까지는 얼마 동안 사용되었습니다.
(마가 13:1~2) “예수님께서 성전을 떠나실 때, 한 제자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보십시오! 정말 아름다운 돌이지요, 정말 아름다운 건물이지요!” 예수님께서 “이 큰 건물을 보느냐?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발굴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미크베(Mikve) 의식용 욕조로, 지금까지 발견된 예루살렘에서 가장 큰 욕조로 알려져 있는데 그 길이가 약 7m입니다. 성전에서 드려지는 희생 제사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의식적 순수성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미크베에 반드시 몸을 담가야 했습니다. 발굴 결과에 따르면 이 Hall은 처음에는 식당이었는데, 바닥을 제거하고 벽을 허물어 개조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곳으로 내려가는 욕조의 계단은 보입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발견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전의 위엄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헤롯의 예루살렘 성전 유적지에서 남아 있는 것은 “서쪽 벽”뿐이지만, 이 지역 주변에 건축되었던 헤롯의 건축 프로젝트 일부는 여전히 계속하여 발굴되고 있습니다.
Hadrian Hall
(에스라 1:1~5) “고레스가 페르시아의 왕이 된 첫해 의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그래서 고레스가 온 땅에 사신을 보내어, 명령을 내렸습니다. 고레스가 명령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말한다. 하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이 세상 온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나를 세우셔서, 유다 땅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게 하셨다. 이제 너희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거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기를 바란다. 너희는 예루살렘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라. 나머지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도록 하여라. 그들에게 은과 금과 갖가지 물건과 가축을 주고, 예루살렘에 지을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예물도 주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유다와 베냐민 집안의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을 향해 길을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도 준비를 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여호와의 성전을 지을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도록 하셨습니다.”
다윗 왕의 아들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약 400년이 지난 후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정복하면서 성전을 파괴하였습니다. 바벨론에서 70년의 포로생활을 한 후에 3번에 걸쳐서 포로귀환이 이루어졌는데, 1차 귀환은 “스룹바벨”과 함께, 2차 귀환은 “에스라”와 함께, 3차 귀환은 “느헤미야”와 함께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후에 예루살렘의 성벽을 쌓고 예루살렘의 성전 산 위에 성전을 재건하였습니다.
그 후 BC 63년 신흥 제국 로마의 폼페이 장군은 이스라엘 점령을 위해서 예루살렘을 점복하였습니다. 로마의 힘을 등에 업고 에돔 사람이었던 헤롯 대왕이 BC 37~AD 4년 동안 유대 땅을 다스렸을 때 유대 사람들이 포로 생활로부터 돌아온 후에 건축하였던 예루살렘 성전을 더욱 커다랗게 재건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증명하는 한 가지 출처는 고대 역사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가 남긴 “유대 고대사”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Flavius Josephus는 “헤롯이 원래 솔로몬 왕이 지은 산의 윗면에 있는 성전 마당을 확장했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고대사 9:95).
하스모니안(Hasmonean) 저수조와 로마식 도로
Western Wall Tunnel을 따라 가다가 보면 중세 시대에 파 놓았던 물 저장소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하스모니안 왕조 시대에 파 놓았던 저수조가 서쪽 벽이 있었던 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고대 로마의 길이 있던 곳에서 도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레일과 같이 생긴 커다란 돌들이 발견되었는데, 이 보호 레일은 도로에서 흘러들어 온 물을 저장하기 위하여 파 놓은 웅덩이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보호막과 같은 역할을 하던 것입니다. 이 저수조의 물은 하스모니안 수로를 통하여 성전에 물을 공급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헤롯 시대에 돌을 깔아 건설하여 놓았던 로마식 돌길이 발굴되었습니다. 성전 산의 서쪽 성벽을 따라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길게 이어졌던 로마식 도로가 놓여 있었는데, 이곳에서 그 한 부분이 발굴된 것입니다. Cardo Maximus(Main Street)에 세워져 있었던 것과 같은 기둥들이 그 길가에 서 있었으며, 당시의 그곳에는 성벽을 따라 상점들이 들어서 있었다고 합니다.
하스모니안 저수조(Struthion Pool)
서쪽 벽의 북쪽 끝부분에 하스모니안 왕조 때에 건설하여 놓있던 “Struthion Pool”이라고 불리는 고대의 물 저장소(Ancient Pool)가 발굴되었는데, 이것은 겨울철 비가 많이 오는 기간 동안 받아 놓았던 물을 이 물 저장소에 저장해 놓았다가 여름철 비가 오지 않는 때에 그 물을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물 저장소”입니다.
The Struthion pool은 지금 시온 수녀회(Notre Dame De Sion (Ecce Homo)) 수도원의 지하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AD 1 세기의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예루살렘이 Titus 장군이 이끄는 로마 군대에 의하여 완전히 포위되었을 때, 안토니아 요새의 탑이 세워져 있었던 부근에 둑(bank)을 쌓기 위하여 “Struthius(참새, Sparrow)”라는 물 저장소가 있었던 연못을 전체를 덮어 버리고 말았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또 이곳에서 돌을 채취하였던 채석장(Quarry)이 발굴되었는데, 이곳은 서쪽의 성벽을 쌓기 위한 돌들을 채취하였던 곳입니다. 이 채석장(Quarry)은 헤롯 시대의 도로와 하스모네안 저수조에서 북쪽으로 불과 몇 피트 떨어진 곳으로, 헤롯 왕은 성전의 서쪽 벽을 짓는 데 대부분이 이곳 채석장에서 돌들을 채취하여 사용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스모니안 수로 (Hasmonean Water Tunnel)”도 발굴되었습니다. 마카비스(Maccabees)왕조가 이스라엘을 BC 140부터 BC 37년까지 다스렸던 하스모니안 시대에 건설된 저수조로 물을 공급 받을 수 있도록 건설된 수로(Water Tunnel)가 “하스모니안 수로 (Hasmonean Water Tunnel)”입니다.
하스모니안 수로 (Hasmonean Water Tunnel) 채석장(Quarry)
위 사진 왼쪽으로 이어지는 로마식 도로의 일부였던 두 기둥이 서 있었던 곳에 헤로디안 시대의 돌로 포장된 도로가 발견되었습니다. 지금은 Western Wall 안에서 발견된 로마식으로 포장된 도로였지만, 2,000년 전 이 지역은 야외에 있었던 도로였는데 직선(북쪽)과 왼쪽(서쪽)으로 이어졌던 도로였습니다. 서쪽으로 가는 다른 기둥은 이 두 기둥과 일직선상에 있었을 도로 아래쪽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원래의 Western Wall Tunnel의 전체를 볼 수 있는 코스는 시온 수녀회의 지하실로 통하여 나올 수 있는 길(Course)이 있지만 이 Course를 사용하게 되면, 출구가 이슬람 Quater에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방법이 Muslim들 때문에 가능하지 못하여서 Via Dolorosa의 제 1지점 부근에 있는 곳에 “하스모니안 수로 (Hasmonean Water Tunnel)”의 출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시간 : 월요일~목요일 07:00~ 저녁까지, 금요일 07:00~12:00 예약을 하여야 합니다.
예약전화 : *5958 (통화가능 시간 08:30~17:00), 02-627-1333 www.thekotel.org
입장료 : (성인) 38 NIS, (어린이/군인/학생/장애인/시니어) 25 N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