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 무덤 교회(Tomb of the Virgin Mary)
마리아 무덤 교회는 AD 4세기 말경까지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의하여 겟세마네 동산의 “사도들의 동굴”과 함께 보존되어 왔습니다. AD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Theo-tokos, 聖母)”로 공식적으로 선포된 것에 영향을 받아 전통적으로 성모 마리아의 무덤이 있었다고 하는 자리에 성모 마리아의 매장과 승천을 기념하는 기념 교회가 AD 422-458년경에 세워졌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무덤 교회(Photo from Madain Project)와 오른 쪽에 있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를 할 때, 제자들이 자고 있었던 동굴로 가는 골목길
그 후 AD 6 세기에 마리아의 무덤 교회 터 위에 두 번째 교회가 지었으나 614년 페르시아 군에 의해서 이 교회는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십자군들이 예루살렘에 들어왔을 때 지하 교회를 발굴하고 1130년경에 그 터 위에 교회를 커다랗게 다시 지었지만 1187년 이슬람의 살라딘은 마리아의 지하 무덤이 있는 지하 예배당만을 남겨두고 모두 파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슬람교도들도 성모 마리아를 “예언자(예수)의 지극히 복된 어머니”로 공경했기 때문에 성모 마리아의 무덤이 있었던 지하 예배당은 파괴하지 않고 경배했다고 합니다. 그 후 1363년경부터 프란체스코회에서 이 지하 예배당을 관리해왔었으나 1757년부터는 그리스 정교회가 관리하여 오다가 지금은 그리스정교회와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갈보리 언덕의 “예수 무덤교회(Holy Sepulcher Church)”와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교회(The Church of the Nativity)” 올리브 산 위에 있는 “예수 승천경당(Chapel of the Ascension)”과 함께 이곳의 “마리아 무덤 교회(Tomb of the Virgin Mary)”도 예루살렘의 중요한 성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죽음에 관하여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승천에 대하여도 아무런 기록이 없습니다.
AD 4세기경에 기록된 위경 중의 하나인 “마리아의 죽음”에 관한 경전에는,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유언처럼 말씀하신 것과 같이 성모 마리아의 시신을 여호사밧 골짜기로 옮겨와서 그곳에 있는 무덤에 안장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 겟세마네 지역에서 승천하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AD 4세기부터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의 죽음에 대하여 “성모 승천(Asuncion)”을 고백하기 시작하였으며, AD 5세기에 예루살렘에서는 8월 15일을 “하나님의 모친(聖母, Theotokos, God-bearer)의 날”이라고 정하고 지켜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13세기경부터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모친(성모, 聖母)”인 것이 보편적인 믿음이 되어 가톨릭 믿음생활에 중심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1950년 교황 비오 12세는 “원죄에 물들지 않고, 동정녀이셨던 하나님의 어머니(聖母)이신 마리아께서 지상의 생애를 마치신 뒤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의 영광에 들어 올림 받으셨다는 것(Asuncion)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진리”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성모 마리아는 영혼과 육신이 함께 승천했기 때문에 예루살렘 겟세마네 동산의 “마리아 무덤 교회”에 있는 무덤 자리에는 빈 석관만 남아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 무덤 교회 입구에서 내려가는 계단의 양옆으로 조그마한 예배실이 있는데, 이곳은 마리아의 아버지의 묘와 어머니의 묘, 그리고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무덤이 있는 곳입니다. 지하에 있기 때문에 약간 어둡고 매우 습한 냄새가 나지만 천정으로부터 늘어뜨려진 장식물들과 벽장식이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 무덤 교회 (Photo from Madain Project)
지하 동굴로 내려가는 층계를 내려가면, 오른쪽에 마리아의 무덤이었다고 하는 곳에 제단이 있고 그곳에는 빈 석관이 놓여있습니다.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가 돌아가신 곳에 대한 두 가지의 이야기들이 전승으로 전하여 내려오고 있는데, 그 두 곳 중의 한 곳은 예루살렘의 이곳이고 나머지 한 곳은 터키의 에베소 근방에 있는 Panaya Kapulu 산에 있었던 성모 마리아의 마지막 거처입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과 함께 성모 마리아가 여생을 마지막까지 예루살렘에서 보냈는지, 아니면 예루살렘에서 기독교도들에 대한 종교적 탄압이 매우 심하였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에베소로 피신하여 간 후에 성모 마리아와 함께 그녀가 돌아가실 때까지 그곳에 있었다는 여러 가지의 전승들이 있지만 확실한 답은 없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무덤(Photo from Madain Project)과 그 안의 모습
기독교 문서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가 영원히 잠든 후 그녀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 무덤에서 그녀의 시신을 빼고, 장례식만 이곳에서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 무덤 교회의 예배 실은 지하에 있으므로 교회의 48개의 계단을 내려가면 그곳에 있습니다. AD 6 세기에 지하 동굴이 있는 이곳 위에 처음으로 교회가 세워졌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십자군이 이곳에 들어왔을 때에는 부서진 상태로 있으면서 단지 작고 둥근 천장만이 그 지하의 묘지 위에 남아 있었다고 하는데 그 근거로 인하여 1130년에 새로운 교회가 십자군에 의해서 다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리스 정교회에서 이곳을 관리하고 있고 아르메니아 정교회, 콥틱(이집트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도 작은 제단을 이곳에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Photo from Madain Project
러시아 정교회 전승에 의하면, 17세기 초에 스웨덴이 러시아를 공격하려고 하였을 때, 이곳에 있는 “티히빈 마리아(The Tichvine Mother of God)”가 이런 위기에 처한 러시아를 지켜주었다고 합니다. 이 때부터 사람들은 이 “티히빈의 마리아” 아이콘(Icon)을 깊이 숭상하기 시작하여 티히빈 지방의 전통적인 성모 마리아의 아이콘(Icon)이 되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머리를 약간 왼쪽으로 숙이고 있으며, 왼손으로는 신성하고 거룩한 아기 예수를 안고 있고, 오른 손으로는 아기 예수를 가리키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아기 예수의 오른 손은 복을 내리기 위하여 올리고 있으며, 왼손에는 지구본을 들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 무덤 교회에 있는 전통적인 The Tichvine Mother of God의 Icon(Photo from Madain Project)
시간 : 월요일~토요일 08:00~12:00, 14:00~17:00, 일요일은 휴무. 입장료 : 무료
막달라 마리아 러시아 정교회(Saint Mary Magdalene Church)
러시아 정교회 소속의 “막달라 마리아 교회”의 큰 녹색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곳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대를 거슬러서 그때 그 시대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당시의 왕들은 자신의 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스타일로 건축물을 꾸미었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 러시아 정교회당”도 마찬가지로 러시아 전통적인 건축 양식으로 교회당을 건축하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교회”는 겟세마네 동산(Gethsemane Garden)의 올리브 산의 경사진 곳에 있으며, 러시아 정교회 소속으로 전형적인 러시아 건축 양식에 따라 지어졌고 7개의 양파 모양을 하고 있는 황금빛 둥근 지붕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1885~1888년 Tsar Alexander 3세가 그의 어머니 “Maria Alexandrovna”를 기념하기 위해서 건축하게 된 교회인데, 그녀의 수호성인이었던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을 따서 교회의 이름으로 지었습니다.
16세기의 모스크바 교회 건축 스타일로 양파 모양의 빛나는 7개의 금빛 돔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꽃들이 만발한 정원과 함께 삼백 나무와 올리브 나무로 틀을 짠 황금문의 환상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왕자비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로서 1905년 그녀의 남편이 암살당한 후, 수녀가 되어 모스크바에서 자선사업 하던 중, 1918년 러시아 혁명 때 살해당하였습니다. 그녀가 죽은 후, 1981년에 순교자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1920년에는 그녀를 따르던 사람들이 그녀가 평소에 원하였던 대로 유골을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와서 성 막달라 마리아 교회의 지하에 있는 대리석 석관에 그녀의 유골을 안장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나치가 그리스를 점령하고 있었을 때 많은 유대인들을 숨겨 주었던, Princess Alice of Greece (Queen Elizabeth’s mother-in-law)의 무덤도 이곳에 있습니다. 현재 이 교회는 1936년 러시아 정교회 교인으로 개종한 영국인 바라바(Baraba)가 예루살렘에 정착하여 세운 수녀회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사도 야고보 교회 (St. James Armenian Church)와 십자가 수도원
이 교회는 사도 요한의 형제였고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첫 번째로 순교를 당한 “큰 야고보”, 그리고 예수님의 형제였으며, 예루살렘 교회의 첫 번째 지도자였던 “작은 야고보”를 기념하여 큰 야고보가 헤롯 아그립바에 의하여 순교 당하였다고 하는 곳에 세워진 아르메니안 교회입니다. 지금은 시온 문에서 바깥 성벽에서 북서쪽으로 약 100 m 떨어진 곳(아르메니안 구역) 안에 있습니다.
비잔틴 시대였던 AD 6 세기에 이곳에는 처음으로 야고보를 기념하는 교회가 세워졌었으며, 페르시아와 아랍의 침공으로 인하여 파괴되었다가 십자군 시대(AD 11 세기)에 다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떠나게 된 후(13 세기 이후)에는 그레고리안 승려들이 이 교회당을 관리를 하다가 그 이후로는 아르메니안 교회에서 관리를 해 오고 있습니다.
십자가 수도원(Monastery of the Holy Cross)
전통적으로 나무를 사용하여 십자가 형틀을 제작하는 곳으로 알려진 Rehaviah Valley(Cross Valley)에 세워진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원입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엘레나 황후가 예수님의 나무십자가를 발견했다고 하는 곳에 세워진 수도원 기독교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달려 죽으신 십자가를 만든 나무는 아브라함이 롯에게 주어서 잘 가꾸게 하였던 나무로 만든 십자가였다고 하는데 그 나무는 Olive 나무와 Cypress 나무, 그리고 Cedar 나무 이렇게 3 종류의 나무가 합쳐져서 자난 나무(Triplet Seeding Tree)라고 합니다. 수도원 안에는 그 나무가 자랐었던 곳에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그 나무로 제작되어 만들어진 후 예수님이 달렸었다고 하는 십자가는 예수님을 장사 지낼 때에 시신과 함께 넣어 장사지내졌다고 전해지고 있었는데,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가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을 때에(AD 326년) 그 십자가 조각을 발견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때 그녀는 그것을 로마로 가져가서 “Church of the Holy Cross”에 전시 보관하였다고 합니다.
이 “십자가 수도원”은 AD 5세기 비잔틴 시대에 처음으로 건설되었고, AD 6세기 중반인 Caesar Justinianus 때에 수리 증축하였지만 AD 614년에 페르시아에 의해서 파괴되었습니다. AD 796년에는 아랍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을 때 무너진 수도원에서 거주하던 승려들을 모두 죽였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1 세기에 Georgian 수도사들에 의해서 이 수도원은 다시 세워졌으며, 십자군 시대에는 더욱 번성하였다가 십자군들이 물러 간 후에는(AD 1267년) 폐쇄되었다가 AD 1305년에 다시 열었습니다. 그 후 16 세기 아랍인들이 이곳을 회교 사원(mosque)으로 바꾸었습니다. 17세기 이후에 수도원은 그리스 정교회로 다시 바뀌게 되었었지만, 이곳에서 수도하던 승려들의 숫자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