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주 기도문(Pater Noster) 교회와 예수 승천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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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기도문 교회 (The Church of the Pater Noster)

이 교회는 기독교를 로마의 종교로 인정하였던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 황후의 요청으로 세워진 3개의 교회(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교회, 주기도문 교회, 예수 무덤 교회)중에서 가장 컸던 교회당이 주기도문 교회당이었으며, 지금도 처음 세워졌던 당시 교회당의 제단 일부가 동굴 안에 남아 있습니다. 동굴의 입구에는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적힌 주기도문이 돌 판에 새겨져 있습니다.

 

이곳에는 한국어를 포함하여 세계의 100여 개국의 언어로 된 주기도문이 이 주기도문 교회의 회랑 벽에 헌정되어 있습니다. 주기도문 교회는 예루살렘 Mount of Olives에 위치한 “예수 승천 교회당”의 근처에 위치해 있으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곳이라고 알려진 굣에 세워진 기념 교회당입니다.

(마태복음 6:9-13)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하지 마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이나 길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그들은 이미 자기의 상을 다 받았다.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숨어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숨어서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갚아 주실 것이다. 기도할 때에 이방 사람들처럼 아무 의미 없는 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많이 말해야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너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아신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세상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소서.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우리가 용서해 준 것처럼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우리들을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으로부터 구원해 주소서.’ (아버지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멘) 만일 너희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들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누가복음 11:2~4)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을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와서 말했습니다.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처럼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도 용서하여 주소서. 그리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이곳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Lord’s Prayer)에 대하여 가르쳐 주신 곳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 (마 24:3~26:2) 말씀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써 예수께서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셨던 곳도 이곳이었습니다.

(마태 24:3~14) “예수님께서 올리브 산 위에 앉아 계실 때,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말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언제 일어날지 말해 주십시오. 선생님께서 다시 오시는 때와 세상의 마지막 때에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바로 그리스도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또한 너희는 전쟁에 대한 소식과 소문을 들을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라. 이런 일들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아직 마지막 때는 아니다. 민족이 다른 민족과 싸우기 위해 일어나고, 나라가 다른 나라와 싸우기 위해 일어날 것이다. 여러 곳에서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은 해산의 고통이 시작되는 것에 불과하다. 그 때, 사람들이 너희를 박해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나 때문에 너희가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이 넘어질 것이며, 서로를 넘겨주고, 미워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또한 불법이 더욱 많아져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 하늘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며, 모든 나라에 증거될 것이다. 그 때서야 세상의 끝이 올 것이다.”

(마태 24:23~31) “그 때에 사람들이 ‘여보시오, 그리스도가 여기 계십니다.’ 또는 ‘저기 계십니다’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믿지 마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서 큰 증거를 내보일 것이고, 기적을 일으킬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그리고 할 수만 있으면 선택하신 사람까지 속일 것이다. 보아라. 내가 미리 너희에게 일러 주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여보시오, 그가 광야에 계십니다’라고 말해도 거기에 가지 마라. ‘여보시오, 그리스도가 골방에 계십니다.’라고 말해도 믿지 마라. 번개가 동쪽에서 서쪽까지 번쩍이듯이 인자가 오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이다.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여들 것이다.” “그 환난의 날이 지난 직후에 ‘태양이 어두워지고, 달이 그 빛을 잃을 것이다.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에 있는 모든 권세가 흔들릴 것이다.’ 그 때에 인자가 올 징조가 하늘에 있을 것이다. 그 때에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울며,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으로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인자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낼 것이다. 그들은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택함 받은 백성들을 모을 것이다.”

AD 4 세기에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헬레나 황후에 의해서 이곳에 교회가 처음으로 세워졌을 때는 “제자들의 교회”라고 이름이 지어졌으며, “올리브 산 공회당(Basilica of Eleona)”이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현재 교회의 이름은 라틴어 주기도문의 시작 부분을 따서 이름 지어진 것으로써, “Pater Noster(우리 아버지)”라고 명명하였습니다. 현재 “Pater Noster 교회” 건물의 동편에 있는 지하 동굴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던 장소를 기념하여 세웠던 처음의 교회 터가 지하에 유적으로 남아있습니다.

 

AD 614년에 페르시아 군대가 예루살렘 점령하였을 때, 그들에 의해 파괴 되어 1106년에 십자군이 이곳을 점령할 때까지 폐허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때 십자군에 의해서 작은 예배당이 다시 세워졌고, 1152년에 덴마크 주교의 후원을 통하여 완전한 교회당으로 복원되었습니다.

1187년에 이슬람 장군, 살라흐 알-딘(살라딘)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공격하는 동안 심각한 피해를 입었던 이 교회당은 그 후에 예루살렘을 통치하였던 맘룩(Mamluk) 왕조에 의해 1325년 완전히 폐허로 남게 되고 말았습니다. AD 4세기에 처음으로 교회당이 지어질 때 사용되었던 돌들이 폐허더미에 오랜 세월 동안 묻혀 있다가 1851년에는 여호사밧 골짜기에 들어선 수많은 묘지를 제작하는데 재활용되었습니다.

19세기 중후반에 아우렐리아 보시(Princess Aurelia Bossi) 공주가 폐허가 되어 있었던 이곳을 인수하고 이탈리아 피사의 캄포 산토를 모델로 한 회랑을 지었으며 1872년에 카르멜 수녀원을 설립하고 이곳에 카르멜 수녀회를 위한 수도원을 건축하였습니다. 건물이 건축되는 동안 그녀는 프랑스로부터 들여온 나무로 오두막을 짓고 그 옆에서 살았습니다. 그녀는 주 기도문을 39개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참여하였으며, 특히 AD 4세기의 비잔틴 시대에 세워졌다고 알려졌었던 처음의 교회당 유적을 발굴하는데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공주는 그 유적을 발견하지는 못하였지만 그곳이 어디에 있을 것이라는 제안을 남기고 1889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사망하였습니다. Aurelia Bossi de la Tour d’Auvergne 공주는 피렌체에서 사망했지만 그녀의 마지막 유언대로 그녀의 유해는 1957년 “Pater Noster 교회” 입구에 그녀의 실제 모습이 조각된 석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11년 고고학자들의 발굴 결과에 따르면 공주가 예측하였던 그곳에서 지하 동굴 위에 서 있던 AD 4 세기의 고대 교회의 기초가 마침내 발견되었습니다. 수도원은 지하 동굴(Grotto)근처로 옮겨졌고 비잔틴 교회의 재건축은 1915년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재건축 작업은 자금이 바닥나면서 1927년에 중단되었고,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1965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하고 귀국길에 성지 이스라엘을 순례하였던 부산교구의 교구장이었던 최 재선 요한 주교가 주님의 기도 교회에 들러 보게 되었습니다. 다른 여러 나라 언어로 된 주님의 기도문이 이곳에 있었지만 한글로 된 주기도문이 없는 것을 보고 귀국한 후에 곧 바로 우리말로 된 주님의 기도문을 기증하였습니다.

그 후에 한국 개신교가 사용하는 개역 성경에 따른 문구로 쓰인 주기도문으로 교체되었습니다. 한편 한국의 가톨릭교회에서 주님의 기도 교회에 주 기도문의 문구를 원래에 있었던 그대로의 원상복귀를 공식적으로 요청하였는데, 그 때에 “주 기도(Pater Noster) 교회”에서는 가톨릭이 사용하여 왔던 성서의 문구로 번역된 주기도문을 하나 더 만들어 벽의 회랑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2개의 한국어 주 기도문이 회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시간 : 월요일~토요일 08:30~12:00, 14:30~17:00, 일요일은 휴무.

입장료 : 개인 7 세겔, 그룹 5 세겔

예수 승천 교회(The Church of the Ascension)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40일을 그의 제자들과 계시다가 하늘로 올라가신 것을 기념하여 세워진 최초의 교회당은 AD 387년에 귀족출신 부인인 포메니아(Pomenia)에 의해서 올리브 산 정상에 세워진 “예수 승천 기념교회당”입니다.

이 교회당이 처음 세워질 때에는,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것을 기념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늘을 향해 열려 있도록 건축된 “지붕 없는 교회당”이었습니다. 그러나 AD 614년에 페르시아 침공으로 인하여 이 교회당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AD 670년에 재건된 교회당은 1009년 아랍의 Sultan El Hakim에 의해 다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십자군 시대가 되면서 11세기에 이곳에는 작은 경당이 다시 건축되었는데, 이 경당도 12세기 후반 경에 무슬림들에 의해서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어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지금도 승천 경당 안에 들어가면, “메카”가 있는 방향을 알려 주는 “미흐랍‘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경당 안에 놓여 있는 작은 바위 위에는 발자국 모양이 하나 남아 있는데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이 바위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예수님의 발로 디디신 곳이라고 전해져 내려오는 바위입니다. 비록 이슬람 사원에서 관리하는 경당이지만,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신 날을 기념하는 주일에는 이곳의 뒷마당에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는 배려를 해주고 있습니다.

해발 830 m의 올리브 산 정상까지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아랍인들의 마을 가운데로 들어서서 차도를 따라 조금 올라가게 되면 오른쪽으로 높은 돌담을 쌓아서 만든 벽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높은 돌담 벽에는 굳게 잠긴 초록색 철문 하나가 있는데, 그 철문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가면 자그마한 마당이 있고, 마당의 가운데에는 기독교 전승에 따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많은 사람들과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바로 그곳에 둥글고 작은 경당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승천 돔”이 있는 곳은 약간 높은 담으로 둥그렇게 둘러싸여 있는데, “승천 돔”으로 들어가는 좁은 문을 통해서 작은 마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담장 안에는 지름이 3~4 m쯤 되는 8각형의 형태로 돌을 사용하여 3단으로 쌓여진 건물이 바로 “승천 돔(The Church of the Ascension)”입니다. 이 8각형 건물에는 각각의 여덟 방향으로 모두 아치형의 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벽돌로 막혀 있고, 한쪽 면에 있는 문으로만 들어 갈 수 있도록 작은 입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예수님 승천교회(The Church of the Ascension)는 “주 기도문 교회”와 가까운 곳에 있는데 올리브 산꼭대기의 앝-투르(At-tur)라는 아랍 마을의 가운데 있는 이슬람 사원 안에 있습니다. 이 작은 교회당은 둥근 팔각형으로 건축되어졌고, 기록에 따르면 이 건물이 처음 지어질 당시에는 교회의 천정이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상징하기 위해 내부에서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지붕을 만들어 덮지 않은 채 건축되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돔 형태의 지붕으로 덮여 있습니다. 이렇게 지붕이 덮이게 된 것은, 1187년 아랍의 살라딘 장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1198년에 이 건물을 회교 사원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8각형의 건물 천정에 둥근 Dome을 씌웠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본 건물에 이슬람 양식의 “첨탑(하나는 하루 다섯 차례의 기도와 예배 시간을 알리는 탑)”과 “벽감(壁龕,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방향으로 움푹 파인 Arch를 만들어 그쪽 방향으로 기도하도록 함)”이 더해졌습니다. 현재까지 이슬람의 소유로 남아있는 이 건축물에서는 부활절로부터 시작하여 40일째인 “예수 승천기념일”에 기독교의 예배와 기념예식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Old City)에서 이슬람 구역에 있는 이 교회당(Chapel)은 십자군 시대부터 이어져 왔던 기독교 전승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 “승천 바위(Rock of Ascension)” 위에 남겨진 예수님의 족적 위에 세워졌던 교회당입니다.

(누가복음 24:50~5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베다니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축복하시면서 그들을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늘 성전에 머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1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뒤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가 올라가시는 모습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올라가실 때에 그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나 그들 곁에 섰습니다. 두 사람은 그들을 향해 “갈릴리 사람들이여, 왜 여기 서서 하늘을 쳐다보십니까? 여러분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이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뒤에 사도들은 올리브 산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올리브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누가복음 24장에는 예수님의 승천 장소를 올리브 산을 너머에 있는 마을, “베다니”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또 다른 기독교 전승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올리브 산꼭대기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곳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날은 안식일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하여, 당시 유대인들의 안식일 규율에 의하여 안식일에도 이동하기에 알맞은 장소는 이 승천 돔이 있는 감람산 정상이 예수님의 승천 장소로써 가장 설득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매년 가톨릭의 프란체스칸(작은 형제회)들은 이곳에서 예수님 승천 축일을 기념해 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깥 벽 안쪽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자며, 저녁기도와 아침기도를 합니다. 자정부터 시작하여 다음날 정오까지 미사를 드립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안 정교회와 이집트 정교회(콥틱), 시리아 정교회도 예수님 승천일에 이곳에서 미사를 드립니다.

 

시간 : 개장 시간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잠겨 있다가 순례자들이 찾아 올 때마다 열어 줍니다.

입장료 : 일반&학생 5 세겔

러시아 예수 승천 수도원 (Russian Ascension Convent)

러시아 정교회에서 세운 예수 승천 수도원과 교회는 1870~1887년에 건축되었으며, 올리브 산에 있는 아랍 마을 중의 하나인 A-Tur 마을에 있습니다. 러시아의 전승에 의하면 이곳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하늘로 올라가신 곳이라고 합니다.

러시아 정교회 소속의 예수 승천 수도원의 교회당 뒤에는 세례 요한을 기념하는 교회가 있는데 그곳에 있는 옛 아르메니아 교회의 모자이크가 깔려 있던 바닥 밑에서 당시 교회의 벽에 감추어져 있었던 세례 요한의 머리가 AD 4 세기경에 발견된 곳이라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처음에 이곳에는 2개의 아르메니안 교회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한 교회는 세례 요한을 기념하는 교회였다고 합니다. 1887년에 이 수도원과 교회를 세운 Antonin Kapustin는 1894년에 이곳에서 죽었으며, 지금은 교회 입구의 왼쪽에 누워서 깊은 잠에 들어 있습니다.

높이가 64 m 정도 되는 종탑은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것을 상징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곳의 종탑은 예루살렘에서 처음으로 세워졌던 것이었으므로 이 종에서 울려 퍼진 교회의 종소리는 이슬람 국가였던 오스만 터키 제국에서 처음으로 울려 퍼지게 된 기독교 교회당의 종소리였던 것입니다.

교회의 뒤편 오른쪽에 파란색 작은 울타리를 쳐서 보호하고 있는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 바위는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실 때, 성모 마리아가 밟고 서 있었던 바위였다고 전해지는 바위입니다. 이 바위 위에는 러시아 정교를 상징하는 파란 색의 십자가 문양이 새겨 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 십자가는 우리 눈에 익숙하지 않은 것인데, 횡축과 경사진 나무가 더 붙어 있는 모양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러시아 정교회의 십자가는 특이하게도 끝이 6면이거나 8면인 십자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맨 윗부분은 그리스도의 머리를 상징하고, 중간의 긴 횡목은 못 박힌 그리스도의 두 팔, 그리고 맨 아래는 그리스도의 두 발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맨 아래쪽의 횡목의 오른쪽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왼쪽은 부정적인 의미가 있으므로, 왼발이 있는 부분이 오른 쪽보다 아래로 기울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던 두 강도 중에서, 그리스도의 오른쪽에 매달린 강도만이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천국에 갔다는 성경의 기록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왼쪽과 오른쪽의 방향이 뒤바뀌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중세의 이콘(Icon)을 그리던 화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왼쪽, 즉 바라보는 쪽에서 오른편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부인하였던 베드로를 그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정교회 교회당 건물에서 특이한 것이 또 있다면 양파 머리 지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양파 머리 지붕은 “꾸뽈(Купол)”이라고 부릅니다.

이 꾸뽈은 타오르는 대지의 촛불과도 같이 하나님께 향한 간절한 기도와 염원이 함께 타오르는 대지의 촛불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또 그 촛불은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자신을 불태우는 거룩한 희생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꾸뽈 위에는 촛불의 심지처럼 십자가가 하늘을 향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는 자신의 존재를 이러한 시각적인 불꽃뿐만이 아니라 종탑의 소리로 알립니다. 종소리는 주일이나 정교회의 축일이 되면 크기가 각각 달라서 다양한 음계의 종소리를 내는 종들을 울려서 아름답고 조화로운 종소리를 내게 됩니다. “꾸뽈”과 서로 다른 음을 내는 “종소리”는 러시아 정교회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 수도원 교회당의 북쪽에 있는 작은 공원묘지를 넘어가면 AD 6 세기에 처음으로 세워져 있었던 아르메니아 교회 터 위에 세워진 “세례 요한 기념 교회”가 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세례 요한의 머리가 담겨져 있었던 항아리를 이곳에서 찾아내었다고 하는데, 이곳의 바닥에 AD 6 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모자이크가 있었습니다. 그 모자이크에는 깊은 상처가 이직도 남아 있는데 그곳에서 세례 요한의 머리가 담겨져 있던 항아리를 찾아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제단 위에 그려있는 성화의 왼쪽에는 성모 마리아가 서있고 가운데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을 왼손에 들고 서 있으며, 그의 오른 쪽에는 세례 요한이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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