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 성전의 서쪽에 있는 성전 문들 (Western Gates)
이스라엘이 로마 지배 아래에 있었던 헤롯대왕 시대(BC 37년 – AD 4년)에 헤롯대왕은 유대인들의 신앙과 생활의 중심이 되는 예루살렘 성전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제사를 드리면서 예배할 수 있도록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돌아왔던 유대인들이 스룹바벨과 함께 건축하였던 예루살렘의 제 2 성전을 더 크고 웅장하게 증축하였습니다. 헤롯대왕은 여러 곳에 문들과 성전으로 들어 올 수 있도록 육교(다리)들을 건설하였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증축을 해오면서 드디어 완성을 하게 된 헤롯 성전은 로마를 대항하는 유대인들의 폭동이 있었던(AD 70년) 그때에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 군대에 의해서 헤롯 성전의 문들과 다리들은 허물어지고 폐쇄되어 버리면서 땅 속에 묻히거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1,800 여년이 흐른 뒤인 19 세기에 이르러서부터 발굴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였고, 이때부터 헤롯 성전의 문들과 땅 속에 묻혀 있었던 수많은 폐허들이 되살아나기 시작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유대인대로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 성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기독교인들도 유대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찾기 위하여 노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서쪽 문들
AD 1 세기의 역사가 Josephus의 기록에 의하면, 예루살렘 성전의 서쪽 벽에는 4 개의 성전 문이 있었습니다.
❶ South-West bridge : 로빈슨 아치(Robinson’s Arch)를 통해 들어갈 수 있었던 문입니다.
❷ Barclay’s Gate : 성서학자들에 의해서 “Kiphonus(rose garden) Gate”로 알려진 문입니다.
❸ Western bridge : 윌슨 아치 (Wilson’s arch)를 통해 들어갈 수 있었던 문입니다.
❹ Warren’s Gate : 윌슨 아치 북쪽의 40 m, 서쪽 벽에 있는 터널 부분에 있었던 문입니다.
그리고 그 밖에도, 동쪽으로는 South-Eastern bridge, “황금 문”, 황금 문 부근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Shushan Gate”, 성벽의 남쪽으로는 “Hulda Gates”가 있으며, 북쪽으로는 성벽의 북쪽 어느 곳에 있었다고만 전해지고 있는 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2 성전 시대에 만들어졌었지만 그 후로 완전히 막혀버려서 다시는 찾을 수 없게 된 “Tadi Gate” 등이 있었습니다.
로빈슨 아치(Robinson Arch)
“Robinson arch”는 성전 산과 성전 밑에 있었던 길을 연결하여 주기 위하여 건설된 육교였습니다. 이 육교의 계단으로 올라가서 성전의 남서쪽에 있었던 문으로 연결시켜주고 있었던 다리였습니다. 이 Robinson이라는 Arch의 이름은 서쪽 성벽에 작은 돌출 부분으로 남아 있었던 곳이 성전으로 들어가는 육교의 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1838년에 고고학자 Edward Robinson이 발견한 이후, 그의 이름을 붙여서 “Robinson Arch”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1838년 Edward Robinson이 성벽에 돌출된 부분이 육교의 한 부분이었음을 밝혀냈습니다.
1838년 미국의 에드워드 로빈슨이 통곡의 벽 남쪽 연장선상에서 돌출된 구조물(높이 15 m, 폭 12 m)을 보고 그 구조물에 대하여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지진으로 인하여 헤롯의 서쪽 축대의 돌이 튀어나온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고고학자 Edward Robinson은 헤롯 성전의 벽에 있었던 성전구조물의 한 부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마침내 이것은 성전 문으로 연결되는 아치 구조물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1948년에 독립하게 된 이스라엘이 1967년 6일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어 이곳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도시의 모든 부분을 차지하게 되자 본격적으로 발굴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발굴 작업을 통하여 Robinson Arch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발굴 작업의 결과로서 이곳은 로마 병사들에 의해 파괴되었던 아치형 다리의 잔해였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로빈슨의 생각이 옳았음이 증명되었습니다. 또한 이곳의 땅속에서 성전 벽을 건설할 때 사용되었던 돌 벽돌들을 발굴하게 되었는데, 이 돌들은 로마 군병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할 당시에 성벽 아래로 던져 버렸던 돌들이 깨어진 상태 그대로 발굴되었던 것입니다. 이 발굴과 함께 땅속에 묻혀 있었던 상점들과 도로들 등과 함께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었습니다.
1881년에 그린 Robinson Arch 그림 1850년대에 촬영한 Robinson Arch의 사진
바클레이 문 (Barclay’s Gate)
통곡의 벽(Western Wall)에서 여성들이 기도할 수 있는 구역과 “Mugrabim(North-African) Gate” 사이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성전 문입니다. 지금은 “서쪽 벽(Western Wall)”에 문의 위부분에 설치되었던 돌로 된 상인방(Upper Lintel)의 흔적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19 세기가 말 미국의 영사관에서 근무하면서 성전 산을 연구하고 있었던 Barclay에 의해서 발견되었는데 그의 이름을 붙여서 “Barclay‘s Gate”라고 불렀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성전 문(Barclay‘s Gate)이 AD 2 세기의 미쉬나(Mishna)에서 언급되었던 “Kiphonus(Rose Garden) Gate”라고 믿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설명한 것처럼, 약 50 톤 정도 되는 문 위를 받치고 있는 7 m X 2 m 크기의 문 위에 수평으로 놓인 돌(Lintel)”이 문 위에 있었고, 그 밑에는 작은 돌들로 채워서 막아 놓은 곳은 문틀의 흔적들이 남아 있으며, 문의 크기는 폭이 약 5.6m이었고, 높이는 약 11.2m이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땅속에 묻혀 있습니다. 이곳을 발굴하는 작업이 2009년에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윌슨 육교(다리) (Wilson Arch)
헤롯 성전의 또 다른 육교가 1867년 영국의 탐험가 Charles Wilson에 의하여 Western Wall 부근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성전 산의 아래 부분(Lower City)에서 윗부분(Upper City)으로 연결되는 교량의 기초가 발굴되었는데 그 길이는 약 100m 정도나 되었습니다. 성전 산의 서쪽 벽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아치는 약 13 m의 폭이었고, 지금은 통곡의 벽 옆에 있는 터널의 안쪽에 있는 회당(Synagogue)의 기도하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는 바로 그곳입니다.
Charles Wilson의 발굴 단원이었던 Charles Warren은 통곡의 벽 밑을 조사하기 위해서 윌슨 아치의 밑 부분을 파들어 가다가 두 개의 수직 축(vertical shafts)이 있었다는 것과 수평으로는 터널이 있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터널은 헤롯 성전의 서쪽 벽(Western Wall) 보다 8 m 정도 위에 커다란 기초 돌을 놓고 그것을 세워서 만든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때에 발견된 두 개의 수직 축인 “Warren shafts(워렌 축)”은 헤롯 성전의 대부분을 장식하고 있었던 돌들과 같이 아름다운 조각품 등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윌슨 아치(Wilson Arch)의 다른 끝 부분은 통곡의 벽(Western Wall)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데 현재 통곡의 벽으로 가는 북쪽 입구로 사용되는 곳에 있습니다. 이 아치(Wilson Arch)는 아마도 헤롯 성전 시대에 건설되었던 같은 곳에 아랍 시대(AD 8세기~11세기)에 다시 만들어진 것 같아 보입니다. 바닥에 깔려 있는 돌길은 로마/비잔틴 시대(AD 2세기~6세기)에 아치 밑으로 나 있었던 로마식 도로인데, 이 길은 다메섹 문의 북쪽에서 분 문(Dung Gate)로 연결되어 있었던 길입니다.
워렌 게이트 (Warren’s Gate, 지성소를 향하여 있었던 성전 문)
워렌 게이트(Warren’s Gate)는 윌슨 아치(Wilson’s Arch)로부터 북쪽으로 약 4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으며, 현재는 Western Wall Tunnel 안에 있습니다. Warren’s Gate는 헤롯 성전 시대의 위 도시(Upper City)의 길 높이에 맞추면서 또 성전 바닥의 높이에 맞추어 세웠습니다.
Charles Warren에 의해서 1867년에 처음으로 발견된 문(Gate)입니다. 현재는 돌로 막아 놓았지만 이 문을 열고 들어간다면, 지성소를 받치고 있었던 초석을 마주 보게 될 것입니다. 이 Warren’s Gate는 성전의 지성소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성전 문입니다. 이곳은 성전의 지성소가 있는 곳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성전 안으로 들어 갈 수 없었던 여인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하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헤롯 성전)의 남쪽 문들 (Hulda Gates)
성전 산의 남쪽에 있었던 문을 “Hulda Gates”이라고 불렀었는데, 이 Hulda Gate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편에 있었던 문은 3 개의 아치로 된 문이었는데 이 문은 성전으로 “올라가는(들어가는) 문”이었고 서편에 있었던 문은 2 개의 아치로 된 문이었는데 이 문은 성전에서 “나오는 문”으로 사용된 문입니다.
3 개의 아치로 되어 있었던 동편 문은 15 m 정도의 넓이로 세워졌고, 기둥은 장식된 기둥이었지만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 기둥은 없어지고 문은 돌로 막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2 개의 아치로 된 서편에 있는 문은 중세 시대에 성전 벽에 새롭게 건축된 건축물에 의해서 문의 대부분이 가려져 있습니다.
Hulda Gate의 2 개의 아치로 된 성전 산의 문 위 오른쪽 부분을 보면 로마 시대에 세워졌었던 Antoninus Pius(AD 138년부터 AD 161까지 황제로 재임하였던 로마의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아들)의 동상에 받침돌로 사용되었던 돌이 문을 막을 때 재활용되었던 것을 불 수 있습니다. 이 Antoninus Pius 황제의 동상은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AD 135년에 있었던 유대인 항쟁을 다스린 다음, 그가 세웠던 쥬피터 신전에 설치하여 놓았던 동상들 중의 하나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 동상 받침대에 새겨 있었던 Hadrian’s inscription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TITO AEL HADRIANO (To Titus Ael[ius] Hadrianus)
ANTONINO AUG PIO ( Antoninus Aug[ustus] Pius)
P P PONTIF AUGUR (the f[ather] of the f[atherland], pontif[ex], augur.)
D D D[ecreed] (by the D[ecurions])
성전 산의 남쪽 벽을 수리할 때 글씨가 새겨진 동상의 돌 받침을 가져다가 재활용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이때에 아무런 생각이 없이 사용하였는지, 글자가 거꾸로 된 채 그대로 재활용되어 사용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곳에 132년 – 135년에 있었던 “바르 코크바의 반란” 사건을 진압한 로마의 황제, Hadrianus에 의해서 세워졌었던 “쥬피터(Jupiter) 신전”은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제정하였던 콘스탄틴(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서 파괴되었습니다. 그 때 신전의 파괴된 돌 파편들이 오랜 세월동안 방치 되어 있었는데 무슬림들이 “바위의 돔”과 Al-Aqsa Mosque를 건축할 때 이 돌들을 재활용하였습니다.
성전 동쪽 벽에 있었던 문 (The Eastern Gate Temple Mount Wall)
예루살렘 성전의 동쪽에 있었던 문은 오직 “황금 문(The Golden Gate, 미문)”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전 산의 남쪽 방향으로 동쪽 끝에 아치로 된 계단을 통하여 들어 갈 수 있는 문이 하나 더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이 문은 주로 성전으로 희생 제사를 드리러 가는 사람들이 사용하였던 문으로써 이 문 앞에는 아치형 계단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의 계단구조물은 서쪽에 있었던 Robinson’s Arch와 비슷한 형식으로 건축된 것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바벨론 포로로부터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 민족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성전을 재건하였는데 이 성전을 헤롯 대왕이 증축하면서 건설한 동쪽의 끝부분에 있었던 문이었다고 하는데, 길이가 32m 되는 육교(다리)와 연결되었다고 합니다. 이 다리는 Robinson Arch와 비슷한 모양의 돌계단으로 된 Arch형 다리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벽부분에 다리가 걸쳐 있었다는 희미한 흔적만 찾을 수 있을 뿐,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곳의 문을 막아버리기 위하여 사용된 작은 돌들로 채워진 흔적이 남아 있는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발굴 작업이 마무리되어 있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치로 된 이 다리를 건너서 성전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아곳을 통하여 성전 뜰로 들어서게 되면 “솔로몬의 마구간(Solomon’s stables)”이라고 불리는 지하의 넓은 Hall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벽의 밖으로는 다리가 연결되어 있어서 성전 산의 동쪽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계단을 통하여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 연결되었으며, 이곳에서 The Kidron Valley로 내려가는 길도 있었다고 합니다.
발굴되고 있는 Solomon’s Stables(솔로몬의 마구간)
예루살렘의 성전 산의 남동쪽 코너부근의 기초석이 있던 곳에서 헤롯 성전 시대에 “Solomon’s Stables(솔로몬의 마구간)”이라고 불리던 곳이 발굴되었습니다. 지금의 성전 산에 있는 “al-Aqsa Mosque”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의 아래 부분인 약 500 ㎡ 정도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곳입니다. 현재 그곳은 “El-Marwani Mosque”라고 불리는 이슬람교도들의 기도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Solomon’s Stables(솔로몬의 마구간)”이 발굴된 곳은 성전 산의 남동쪽 코너에서 땅속으로 12.5m 정도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12 개의 기둥들이 아치를 이루면서 서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마구간”이라고 불렸던 건축물은 헤롯 대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증축할 때 성전의 남쪽 광장을 확장하면서 건축되었습니다. 헤롯 대왕의 건축 기술자들은 성전 벽을 지탱해주기 위하여 Arch 형태로 만들어서 넓은 성전의 마당을 떠받칠 수 있도록 건설하였습니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물건을 보관 저장하기 위한 곳으로 사용되었는데 십자군 시대 전까지는 거의 비어 있던 때가 많았지만, 1099년부터는 십자군 기병대의 말들을 보관하는 마구간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십자군 시대 이후로부터 이곳은 마구간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곳에 처음으로 성전을 건축하였던 이스라엘의 왕인 “Solomon”의 이름을 붙여서 “Solomon’s Stables”이라고 불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이곳의 기둥에는 말의 고삐를 묶어두기 위한 고리들이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