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 산(Mount Zion)

시온 산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드셨던 곳인 “마가의 다락방”이 있었던 곳이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두 번이나 나타나신 곳이며,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는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서(성령강림) 초대교회의 발상지가 된 곳이기 때문에 매우 소중한 성지입니다.

(마태복음 26:17–30) “식사 때에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어 감사기도를 드리시고,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잔을 들어 감사드리신 후, 그것을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모두, 이것을 마셔라. 이것은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을 위해 붓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롭게 마시는 그 날까지, 지금부터는 포도 열매로 빚은 것을 마시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찬송을 부르고 올리브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요한복음 20:19-23) “같은 날 저녁에,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꼭 잠갔습니다. 그 곳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들 가운데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는 제자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자 무척 기뻐했습니다. 다시,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면, 그 죄는 사함을 받을 것이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지 않으면, 그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할 것이다.”

(사도행전 2:1-6) “오순절이 되어 제자들이 한 곳에 모두 모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 소리 같은 것이 나더니, 사람들이 앉아 있던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혀처럼 생긴 불꽃이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불꽃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그 곳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머물렀습니다. 사람들은 다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리고는 성령께서 말하게 하시는 대로 자기들의 언어와 다른 외국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세계 각 나라에서 온 경건한 유대인들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 말소리가 나자, 많은 군중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믿는 사람들이 자기네 나라 말로 말하는 것을 듣고는 모두 놀랐습니다.”

1898년에 촬영된 Mount Zion                                                    1920년대에 촬영된 시온 산(Mount Zion)

시온 산(Mount Zion)은 예루살렘 성의 남서쪽 끝에 있는 산(해발 765 m)이며, 성전 산과 거의 연결되어 있는 산으로써  예루살렘 성의 Zion Gate를 통하여 나오게 되면 만나게 되는 곳입니다.  오른 쪽에는 “힌놈(Hinnom)의 골짜기”가 있고 왼쪽으로 “키드론(Kidron) 골짜기”로 이어지는 곳입니다. 다윗이 이곳을 점령한 후로는 이곳을 “다윗 산성”이라고 불렀던 산입니다.

(삼하 5:5~8) “다윗 왕과 그의 부하들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곳에 살고 있던 여부스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여부스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우리 성에 들어오지 못한다. 우리 중 보지 못하는 사람이나 다리 저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너를 물리칠 수 있다.” 여부스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 것은 다윗이 그들의 성에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요새인 시온 성을 점령했습니다. 그 성은 다윗 성이 되었습니다.  그 날, 다윗이 자기 부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부스 사람들을 물리치려면 땅 속 물길로 가야한다. 그러면 저 다리 저는 사람과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일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보지 못하는 사람과 다리 저는 사람은 왕궁에 들어갈 수 없다’라는 속담이 생겼습니다.”

시온 산에는 다윗 왕의 무덤, 최후의 만찬 장소, 베드로 통곡교회, 마가의 다락방, 성모 마리아 영면 교회, 등의 수많은 기독교 유적들이 있습니다. Kidron 골짜기에서 이곳 시온 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1964년에 Pablo 6세 교황의 방문을 기념하여 만든 시온 산으로 올라가는 도로(Pope’s Way)입니다. 시온 산에는 수많은 기독교도들의 무덤이 있는 기독교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이곳에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서 많은 유대인을 구하여 내었던 오스카 쉰들러의 무덤도 있습니다.

다윗 왕 시대에 시온 산의 중심이 되는 곳은 시온 산의 동쪽 아래 지역이었지만, 헤롯 대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증축하였을 때에는 시온 산의 높은 지역으로 그 중심이 되도록 확장되어 건설되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기원전 2 세기 시온 산에 건설되었던 성벽은 1894년 F. G Bliss에 의해서 진행되었던 발굴 작업과 2008년에 Y. Zelinger에 의해 진행되었던 발굴 작업의 성과물로써 성벽의 기초와 성문, 포장된 도로와 그리스/ 로마 시대 건축물의 기초가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2005년부터 진행되어 오고 있는 다윗 성의 발굴 작업 현장

시온 산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신 곳이 있었고, 예수님을 사형 선고를 받도록 내어 주었던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이 이 시온 산에 있었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약속하여 주신대로 성령님이 오셨던 곳도 이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팔았던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새로운 제자로 맛디아를 뽑았던 곳도 이곳이었습니다. 또한 기독교 전승에 의하여 성모 마리아가 죽은 후에 묻혔다고 전해지는 곳에 성모 마리아를 기념하여 세운 “성모 마리아 무덤 교회”가 이곳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13:1-5) “유월절 바로 전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가 왔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마귀가 이미 시몬의 아들 가룟 사람 유다의 마음속에 들어가 예수님을 배반할 생각을 갖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모든 것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또한 그는 아버지께로부터 오셨다가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두르신 수건으로 그들의 발을 닦아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21-27)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뒤에 마음이 무척 괴로우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증언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 제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으나, 예수님께서 누구를 염두에 두고 말씀하시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예수님 가까이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였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 제자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누구를 가리켜 말씀하시는지 물어 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제자가 예수님 옆으로 가까이 다가가 물었습니다.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이 빵을 접시에 찍어 주는 자가 나를 배반할 자이다” 하시면서 빵 조각을 집어서 접시에 찍어 가룟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습니다. 유다가 빵 조각을 받자마자, 사탄이 그에게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려는 일을 빨리 하여라!”

(사도행전 1:12~26) “그런 뒤에 사도들은 올리브 산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올리브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그들이 묵고 있던 다락방으로 올라갔습니다.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와 안드레, 빌립과 도마, 바돌로매와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열심당원 시몬, 그리고 야고보의 아들 유다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동생들과 함께 꾸준히 한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며칠 후, 약 백이십 명쯤 되는 신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베드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1:21-26)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시던 동안, 우리와 같이 다녔던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뽑아야 하겠습니다. 뽑힐 사람은 요한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던 때부터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하늘로 올라가실 때까지 우리와 함께 있던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사람은 우리와 함께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증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유스도라고 알려져 있고 바사바라고도 불리는 요셉과 맛디아 두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그 때, 사도들은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두 사람 중 누구를 선택하셨습니까? 자기 직분을 떠나 자기가 원래 속했던 곳으로 간 유다를 대신해서 이 사도의 직분을 맡을 사람이 누구인지를 저희에게 보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제비를 뽑아 보니 맛디아가 뽑혔습니다. 이 때부터 맛디아는 다른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1~4) “오순절이 되어 제자들이 한 곳에 모두 모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 소리 같은 것이 나더니, 사람들이 앉아 있던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혀처럼 생긴 불꽃이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불꽃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그 곳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머물렀습니다. 사람들은 다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리고는 성령께서 말하게 하시는 대로 자기들의 언어와 다른 외국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헤롯에게 잡혀서 감옥에 있을 때 기도의 형제들이 모여서 기도하였던 곳도 마가의 집, 또는 마가의 어머니 집이었는데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던 다락방이었습니다.

(행 12:6~12) “헤롯이 베드로를 끌어내려던 전날 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두 군인 사이에서 사슬에 묶인 채 잠들어 있었고, 문 앞에는 경비병이 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고, 환한 빛이 감옥을 비추었습니다. 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깨우며 “어서 일어나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의 손목에 매여 있던 사슬이 풀렸습니다. 천사가 베드로에게 “허리끈을 매고, 신을 신어라”라고 말하여, 베드로는 천사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천사는 다시, “겉옷을 입고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천사를 따라 밖으로 나가면서도 천사가 하는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환상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천사와 베드로가 첫 번째 경비병과 두 번째 경비병을 지나 성으로 통하는 철문에 이르자, 철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그들이 문을 나와 거리를 한 구역 걸을 때에, 갑자기 천사는 베드로를 떠나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베드로는 정신이 들어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이제야 나는 이 모든 것이 실제라는 것을 알겠다.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에서, 그리고 유대인들의 모든 계략에서 구하셨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서, 베드로는 마가라고도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 곳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시온 산의 다윗 왕의 가묘가 있는 곳(1층)                                                   그리고 2층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
마가의 다락방

2층의 마가의 다락방으로 가는 입구                                            1층에 다윗의 가묘가 있습니다.  ( King David’s False Tomb)

이 시온 산에서는 로마 시대의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AD 2세기) 쌓았다고 하는 새로운 도시의 성벽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러한 전승을 기초로 하여 Ottoman(Osman Turkey)시대인 1538년에 Sultan 슐레이만(Suleiman the Magnificent)의 명령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의 성벽을 다시 쌓았는데, 예루살렘의 성벽을 설계하였던 설계사와 기술자 두 사람이 시온 산과 다윗왕의 무덤을 성벽 밖에 있도록 하는 등, 잘못 설계하여 성벽을 쌓게 되는 실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하여 화가 난 Süleiman 대제는 이 두 사람을 사형에 처하였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원래는 다윗 왕의 무덤과 다윗의 성이 있던 “시온 산(Mount Zion)”이 예루살렘 성(Old City) 안에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예루살렘 성 밖에 있게 되었습니다.

다락방(Cenacle) 입구 오른쪽에 있는 포도나무 조각품                                                        4마리의 Pelican을 기둥머리(Capitol)에 조각한 기둥

고대 전설에 의하면, 어미 펠리컨이 새끼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새끼들에게 살을 먹이고 피를 마시게 했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주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비유하여 1260년대의 성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성찬 찬송가 “Adoro te devote”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다윗의 도시(City of David)

그런가 하면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의 전승에 의하면 이 시온 산에 다윗 왕의 무덤이 있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열왕기 상 2:10~11) “그 후, 다윗은 죽어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묻혔습니다.  다윗은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헤브론에서 칠 년을 다스리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을 다스렸습니다.”

이곳에 한 건물이 있었는데 이곳의 2층은 마가의 어머니 집이 있었다고 알려진 곳이었는데 이곳에는 “마가의 다락방”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건물의 1층에는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 다윗 왕의 가짜 무덤(가묘)이 놓여 있습니다.

다윗 왕은 기원전 1,000년경에 묻혔는데, 아마도 현재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남쪽 지역에 묻혔을 것입니다. 그곳에 “다윗의 도시(다윗 성)”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열왕기 상 2:10) “그리하여 다윗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잠들었고 다윗의 도시에 묻혔습니다.”

(느헤미야 3:15-16) “‘샘 문’은 골호세의 아들 살룬이 보수했습니다. 그는 미스바 지역을 다스리던 사람입니다. 그는 문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었습니다. 그리고 들보를 얹고 문짝과 자물쇠와 빗장을 달았습니다. 그는 또한 ‘왕의 정원’ 곁에 있는 ‘실로암 연못’ 의 성벽도 수리했습니다. 그는 그 성벽을 다윗 성에서 내려오는 계단까지 보수했습니다. 그 다음은 아스북의 아들 느헤미야가 보수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벧술 구역의 절반을 다스리던 사람입니다. 그는 다윗의 묘지 맞은편에서부터 사람들이 만든 연못과 ‘용사의 집’에 이르기까지 보수했습니다.”

시온 산(Mount Zion)은 다윗의 도시(City of David)의 일부가 아니었고 북서쪽으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언덕과 같은 산입니다. 이 산은 헬레니즘(Greece 시대)과 초기 로마 시대에야 예루살렘 성의 안에 편입되었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 전쟁으로 인하여 많은 건물들이 파손되었는데 그 후 이곳에서 고고학 조사가 오랫동안 실시되어 왔습니다. 최근 2011년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건축물이 있는 곳 아래로 AD 1세기 말의 로마 시대로부터 시작된 “텔(Tel)”이 6개의 고고학적 층이 확인되었습니다.

1928년에 촬영된 성전 산에서 바라다 본 시온 산
 1934년의 올리브 나무가 있는 시온 산                                  힌놈의 골짜기에서 바다다 본 시온 산

(사도행전 2:29-32)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조상 다윗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다윗은 죽어 땅에 묻혔으며,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의 자손 가운데 한 사람을 택하여 다윗의 보좌에 앉게 하실 것이라고 맹세하셨습니다. 다윗은 예언자여서 하나님께서 맹세로 약속하신 이 내용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 내용을 미리 알고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은 무덤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았고, 그분의 몸은 썩지 않았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일의 증인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하여 증언하면서 다윗의 무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있은 지 수 몇 백 년 후, 비잔틴 시대에 초기 기독교인들은 시온 산 주변에 여러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후 페르시아와 아랍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인 AD 7세기로부터 12세기까지 이곳은 폐허가 된 채 남아 있었습니다. 이 기간이었던 AD 9 세기 때에 다윗 왕의 무덤이 이곳 시온 산에 있었다고 하는 전승이 기록으로는 처음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십자군 시대에 시온 산에 폐허로 남아 있었던 일부 구조물과 예루살렘의 여러 구역을 재건하였습니다. 고고학자들은 현재 현존하고 있는 층 바로 아래 부분에서 십자군 시대의 마지막 건축물이 있었던 ​​12세기-13세기의 “Tel” 층이 땅 속에서 발견하였습니다.

오스만 터키 제국이 이곳을 다스리기 시작하였던 16세기에 이르러 그들은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였는데 이때 Mount Zion을 예루살렘 성벽 안쪽 지역으로 포함시키지는 않았지만, 이 장소를 성지로 여겼습니다. 전승에 의하여 다윗 왕의 무덤이 있었던 곳은 십자군이 물러간 후부터 오랫동안 수도사들이 관리하고 있어왔는데 오스만 터키의 무슬림들은 수도사들을 추방하고, 이곳을 모스크로 개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모스크를 “예언자 다윗(E-Nebi Daud)”라고 불렀습니다. 이곳의 옥상이 되는 3층에 모스크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1864년 고고학 발굴에서 땅 아래에 얕은 동굴(35m x 15m x 4m)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장소 주변 건물에는 이 장소의 열쇠를 가지고 관리를 하여 왔던 무슬림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현재의 Cenacle(다락방)과 David’ Tomb이 있는 건축물의 옥상                                                                1860-1880년대에 촬영된 “예언자 다윗 모스크”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은 수백 년 동안 이 장소(마가의 다락방과 다윗 왕의 가묘)를 자유롭게 방문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규제는 1948년 독립 이스라엘이 성지에 대한 통제권을 얻었을 때 바뀌었고, 1967년 6일 전쟁 이후에 예루살렘을 완전히 흡수하게 된 후, 이곳은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고 기독교의 세 종교가 소중히 여기는 주요 종교 유적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돌 벽돌로 막혀 있는 Arch 회랑 (1940년 촬영)                                               현재의 Arch Cloister(회랑)

위의 사진은 다윗의 무덤 안뜰의 모습입니다. 무덤은 1층에 있는 방에 놓여 있습니다. 석관은 천으로 덮여 있고, 그곳에는 “이스라엘의 다윗 왕은 살아 있고 지속되고 있다”라는 문구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남성 구역의 David’s Tomb                                                                     여성 출입 가능 구역의 David’s To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