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시온 산(Mt. Zion)의 다윗 성(City of David)

Off

원래 하은교회 이스라엘 성지 순례 Team은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지도아래 이집트에서 출발하여 가나안 약속의 땅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걸어갔던 광야 길을 따라 Sinai 반도를 동편으로 따라 올라와서 이스라엘의 최남단 지역에 속하는 아카바 만의 최북단인 에일라트(Alat)에서 이스라엘의 국경을 통과하면서부터는 전통적으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올라갔었다고 하는 “왕의 대로(king’s highway, Kir hereseth)”가 아닌, 요단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계곡의 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편이 상,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여 여행기록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윗 성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 다음으로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 다윗은 헤브론을 중심으로 한 유다 왕국의 왕으로 있었습니다. 다윗 왕은 이곳에 살고 있었던 여부스 족을 물리치고 지금의 예루살렘이 있는 지역을 점령한 이후, 당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으로 사용되고 있던 바위산을 다윗 왕은 지금의 가치로 따지자면 약 350만불~400만불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인 금 600 세겔을 지불하고 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시온 산성(Mt. Zion)”, 또는 “다윗 성(City of David)”이라고 불리는 도시를 건설하였습니다.

(역대상 11:4~7) “다윗과 모든 이스라엘의 백성이 예루살렘 성으로 갔습니다. 그 때는 예루살렘을 여부스라고 불렀으며 그 성에 사는 원주민도 여부스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여부스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우리 성에 들어오지 못한다.” 그러나 다윗은 굳건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시온 산성, 곧 다윗 성을 점령했습니다. 다윗이 말했습니다. “여부스 사람들을 무찌르는 데에 앞장 서는 사람은 온 군대의 사령관이 될 것이다.”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앞장서서 공격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군대 사령관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굳건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성을 다윗 성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윗 성(City of David, Mt. Zion)

(역대상 21:18~25) “그러자 여호와의 천사가 갓을 통해 다윗에게 명령했습니다.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제단을 쌓아 여호와께 예배를 드려라.”  갓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자, 다윗은 순종하여 오르난의 타작마당으로 갔습니다.  오르난이 밀을 타작하다 몸을 돌려 보니, 천사가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있던 그의 네 아들이 몸을 숨겼습니다. 다윗이 오르난에게 갔습니다. 오르난은 다윗이 오는 것을 보고 밖으로 나가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했습니다.  다윗이 오르난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 제단을 쌓으려 하니 이 타작마당을 나에게 파시오. 그러면 이 무서운 병이 그칠 것이오. 값은 넉넉히 계산해 주겠소.”  오르난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이 타작마당을 가지십시오. 내 주 왕이시여,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태워 드리는 제물인 번제물로 쓸 소와 땔감으로 쓸 타작 판과 곡식 제물로 쓸 밀을 드리겠습니다. 모두 다 왕에게 드리겠습니다.” 왕이 오르난에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제 값을 다 주고 사겠소. 그대의 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리지는 않겠소. 거저 얻은 것을 태워 드리는 제물인 번제물로 바칠 수는 없소.”  그리하여 다윗은 금 육백 세겔을 주고 그 땅을 샀습니다.”

(삼하 7:1~10) “다윗 왕은 자기 왕궁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주변의 모든 원수를 막아 주셔서 다윗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다윗이 예언자 나단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백향목으로 지은 왕궁에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장막 안에 있소.” 나단이 다윗 왕에게 말했습니다. “가셔서 무엇이든지 왕의 뜻대로 하십시오. 여호와께서는 왕과 함께 계십니다.” 그러나 그 날 밤에 여호와께서 나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내 종 다윗에게 이렇게 전하도록 해라. ‘너는 내가 살 집을 지을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낼 때부터 지금까지 장막을 내 집으로 여기면서 옮겨 다녔다. 나는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지파들과 함께 옮겨 다녔고, 한 번도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는 지도자들에게 백향목 집을 지어 달라고 한 적이 없다.’ 너는 내 종 다윗에게 전하여라. ‘나는 네가 양 떼를 따라다닐 때, 풀밭에서 너를 데리고 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웠다. 나는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항상 함께 있었고, 너를 위해 네 원수들을 물리쳐 주었다. 나는 너를 이 땅 위의 위대한 사람들만큼 유명하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한 곳을 정하여 거기에서 내 백성들이 정착하여 자기들 집에서 살 수 있게 하겠다. 악한 백성이 전처럼 그들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더 이상 옮겨 다니지 않게 하겠다.”

(삼하 7:11~17) “악한 백성들은 내가 사사들을 세웠을 때에도 너희를 계속해서 괴롭혔다. 그러나 나는 너의 모든 원수들을 물리쳐 너에게 평화를 줄 것이다. 또 나는 네 자손들이 너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할 것이다. 네가 나이 많아 죽을 때에 나는 너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들 중 하나를 다음 왕으로 삼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가 나를 위해 성전을 지을 것이다. 나는 그의 나라를 영원히 강하게 만들 것이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만일 그가 죄를 지으면 다른 사람을 채찍과 막대기로 삼아 그에게 벌을 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사랑과 자비를 거둬들여 사울에게서 마음을 돌렸던 것처럼, 너의 아들에게서는 나의 사랑을 거둬들이지 않을 것이다. 너의 집안과 너의 나라는 내 앞에서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나단은 자기가 들은 모든 말을 다윗에게 전했습니다.”

                                                                                                                  발굴되어지고 있는 다윗 성 터

(역대하 2:1~6) “솔로몬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자기를 위하여 왕궁을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솔로몬은 짐을 운반할 사람 칠만 명과, 산에서 돌을 캐낼 사람 팔만 명, 그리고 그들을 감독할 사람 삼천육백 명을 뽑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솔로몬은 두로 성의 왕 히람 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 다윗을 도와 주셨던 것처럼 나도 도와주십시오. 왕은 내 아버지 다윗에게 백향목을 보내어 왕궁을 지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예배드릴 성전을 지어서 바치려고 합니다. 그리고 주 앞에 향기로운 향을 피우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음을 보여 주는 빵을 놓아두며, 날마다 밤낮으로 번제를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안식일과 초하루마다 예배드릴 것이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키라고 명령하신 다른 절기에도 예배드릴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영원한 규례입니다. 나는 성전을 크게 지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다른 모든 신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하나님을 모실 집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늘과 하늘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모실 수 없는데, 하물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모실 성전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다만 하나님께 제물을 바칠 집을 짓고 싶을 뿐입니다.”

다윗 왕 다음으로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솔로몬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전통에 의하면 그곳은 히브리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의 나이 100세에 얻은 외아들 Isaac을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번제의 제물로 바쳤었던 Mt. Moriah의 바위가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Zion 산 다윗 성 옆에 있었던 Moriah 산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다윗 성을 발굴하는 과정에 대하여 2011년 9월에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이스라엘고고학을 연구하여왔던 이주섭 목사가 기독일보에 기고하였던 글을 인용하여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2005년 히브리 대학의 고고학자 Eilat Mazar는 다윗 성(city of David)을 발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Mazar가 발굴한 지역은 비잔틴 시대와 2차 성전 시대의 유적지였는데 이 곳에서 거대한 석조 건축물(Large Stone Structure)을 발굴하였습니다. 비록 이 석조 건축물의 본래 크기는 알 수 없지만, 발굴된 건물의 동쪽 벽의 두께는 약 6.5미터에 이르렀는데, 이 건물의 북쪽 벽 약 30미터가 발견되었습니다. 한 지역을 다스리는 통치자의 집으로서는 지나칠 정도로 커다란 건축물이었습니다.

(사무엘하 5:6~11) “다윗 왕과 그의 부하들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곳에 살고 있던 여부스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여부스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우리 성에 들어오지 못한다. 우리 중 보지 못하는 사람이나 다리 저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너를 물리칠 수 있다.” 여부스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 것은 다윗이 그들의 성에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요새인 시온 성을 점령했습니다. 그 성은 다윗 성이 되었습니다. 그 날, 다윗이 자기 부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부스 사람들을 물리치려면 땅 속 물길로 가야 한다. 그러면 저 다리 저는 사람과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일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보지 못하는 사람과 다리 저는 사람은 왕궁에 들어갈 수 없다’라는 속담이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요새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그 성을 다윗 성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윗은 밀로에서부터 성벽을 둘러쌓았습니다. 다윗은 점점 강해졌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히람은 또 백향목과 목수들과 석수들도 보냈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왕궁을 지었습니다.”

이 지역의 발굴 작업은 이미 1961-1967년에 영국의 고고학자 Kathleen Kenyon에 의해서 발굴하기 시작하였던 지역이었습니다. Kathleen Kenyon은 이 지역을 발굴하면서 정교하게 다듬어진 약 1.3미터의 초기 이오닉 기둥머리(Proto-Ionic capital)를 발견하였습니다. Kathleen Kenyon에 의해 발견된 이 기둥머리(Capital)는 전형적인 왕실 건축물에 사용되었던 양식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이곳이 한 때 이스라엘 왕궁이었음을 알게 해 주는 유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둥머리가 발견된 궁전의 유적(기둥머리, Capital)이 어느 시대인지는 학자들 간에 논란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학자들은 그 시대를 다윗과 솔로몬 시대로 이해한 반면, 진보적인 학자들은 그보다 훨씬 후대의 것으로 추정하였습니다.

고고학자 Eilat Mazar는 이 거대한 석조 건물(Large Stone Structure)의 연대를 토기 분석(pottery analysis)과 유기물의 화학 실험(chemical examination of organic material)을 통하여 BC 10세기에 건축되어진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면서 Eilat Mazar는 이 건축물이 (사무엘 하 5:11)에 기록된 다윗의 백향목 궁(House of Cedar)이라고 믿었습니다.

(사무엘 하 5:11)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히람은 또 백향목과 목수들과 석수들도 보냈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왕궁을 지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다윗 궁의 위치는, 예루살렘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다윗 궁전은 다윗 성 전체가 잘 보이는 북쪽 언덕 높은 곳, 가나안의 여부스 족속이 쌓은 계단식 축대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곳은 기드론 골짜기와 중앙 골짜기, 성의 동쪽과 서쪽 전체가 잘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삼하 11:2)에 기록된 사건이 일어난 배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높은 곳에 있었던 궁전에서 목욕하는 여인 밧세바를 내려다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삼하 5:17~19)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윗을 찾으러 올라왔습니다. 다윗이 그 소식을 듣고 요새로 내려갔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르바임 골짜기에 진을 쳤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여쭤 보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을 공격할까요? 여호와여, 저를 도와 주셔서 그들을 물리치게 해 주시겠습니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거라! 내가 틀림없이 너를 도와 그들을 물리치도록 해 주겠다.”

이 석조 건물은 북쪽으로부터 공격하여 들어오는 적으로부터 방어하기에 유리한 곳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사무엘 하 5:17,18)의 기록에 따르면, 다윗은 블레셋의 공격에 맞서 “(자신의 궁전을 나와서) 요새로 내려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곧 다윗 궁전은 더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블레셋과의 전쟁을 위해 다윗 성을 잘 방어할 수 있는 요새로써 궁전에서 남쪽, 낮은 곳으로 ‘내려갔다’는 말입니다. Eilat Mazar가 발굴한 거대한 석조 건물의 위치는 이 같은 성경의 본문과 잘 일치하고 있습니다.

다윗 왕궁의 뜰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활동 무대이기도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이사야,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들이 백성들의 행실, 사회 정의, 우상 금지와 같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앞으로 오게 될 새 세대에게도 해당되는 메시지였습니다.

(이사야 2:1~5) “이것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해 본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여호와의 성전이 서 있는 산이 모든 산들 꼭대기에 우뚝 서게 될 것이며, 모든 언덕보다 높이 솟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다. 많은 백성들이 가면서 이르기를, “자, 여호와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자. 주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리니, 우리는 그의 길로 행하자”라고 할 것이다. 여호와의 가르침이 시온에서 나오며, 주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주께서 나라들 사이를 재판하시고, 많은 백성들을 꾸짖으신다. 나라마다 칼을 부러뜨려서 쟁기로 만들고 창을 낫으로 만들 것이다. 다시는 나라들이 서로 칼을 들지 않으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야곱 집안아, 자, 여호와의 빛 안에서 행하자.”

바스훌의 아들 그달랴의 인장과 셀레먀의 아들 유갈의 인장,   이 두 인장은 발굴 과정에서 서로 1 m 정도 떨어진 장소에서 2008년과 2010년에 발굴되었습니다.

다윗 궁전의 석조 건물(Large Stone Structure)은 솔로몬의 새 궁전 건축 후에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Eilat Mazar는 이 석조 건물의 유적지에서 유다 왕국의 말기, 두 귀족에게 속해 있었던 진흙을 구워서 만든 인장 두 개를 발굴하였습니다. 이때에 발굴된 두 개의 인장은 (예레미야 38:1-3)에 기록되어 있는 바스훌의 아들 그달랴의 인장과 셀레먀의 아들 유갈의 인장입니다.

(예레미야 38:1-6) “맛단의 아들 스바댜와 바스훌의 아들 그다랴와 셀레먀의 아들 유갈 과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이 예레미야가 모든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예언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전쟁이나 굶주림이나 무서운 병으로 죽을 것이다. 그러나 바빌로니아 군대에 항복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살 것이다. 적어도 목숨은 건져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다. ‘이 예루살렘 성은 틀림없이 바빌로니아 왕의 군대에게 넘어갈 것이다. 그가 이 성을 점령할 것이다.’ 그러자 신하들이 왕에게 말했습니다. “예레미야를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이런 말을 하며 아직 성 안에 남아 있는 군인들과 모든 백성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백성의 평안을 바라지 않고 예루살렘 백성이 망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시드기야 왕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보시오. 예레미야를 그대들 뜻대로 처리하시오. 나는 그대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겠소.” 그러자 신하들은 예레미야를 붙잡아 왕자 말기야의 웅덩이에 그를 집어넣었습니다. 그 웅덩이는 경호대 뜰 안에 있었는데 그들은 밧줄을 이용해 예레미야를 웅덩이에 내려놓았습니다. 그 웅덩이에는 물은 없고 진흙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진흙 속에 빠졌습니다.”

Eilat Mazar에 의해 발견된 거대한 석조 건축물(Large Stone Strucutue)과 엘라 골짜기에 위치한 Khirbet Qeiyafa의 발굴 결과들이 증명하고 있는 것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은 이미 강력한 국가를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러한 고증을 통하여 이스라엘 유물 관리국(IAA)은 텔아비브 대학교 및 와이즈만 과학 연구소가 공동으로 실시한 예루살렘에 도시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이고 고고학적 연구 결과가 2024년 5월에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PNAS)저널을 통하여 발표되었습니다.

PNAS의 보도에 따르면 성경에 등장하는 유대 왕, 특히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의 통치 기간 동안 예루살렘의 발전에 상황에 대한 역사적 유물들이 수없이 많이 발굴되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10년 넘게 100개 이상의 발굴 유적들을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으로 검사한 결과, 다윗 성 동쪽 성벽은 히스기야 왕 때에 건설된 것이 아니라 웃시아 왕 때 건설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거의 10년에 걸친 이번 조사는 세심한 발굴 작업을 통해 다윗 성 내의 다양한 발굴 현장에서 발굴된 100개 이상의 유물들에 대한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결과로 얻어졌으며, 이는 기원전 12세기부터 6세기까지 다윗 성의 도시 역사를 밝혀주는 결과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