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예루살렘 성 (Old Jerusalem)
Jerusalem
예루살렘 성 (Old City)
그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을 것 같은 이슬람 사원의 첨탑(Minaret)에서 들려오는 모슬렘의 기도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다가도, 잠시 후면 어디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요란스럽게 지나가고, 한 무더기의 흰 옷을 입은 무슬림들이 물결처럼 골목길을 지나가고 나면, 또 다른 한 쪽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유대인들이 바쁘게 지나가는 재미있으면서 심심하지 않은 곳이 예루살렘 옛 도시입니다.
“예루살렘 성”, “그 성(The City)”, “하나님의 성(God’s City)”, “거룩한 성(Holy City)”, “믿음의 성(Faithful City)”, “정의의 성(City of Justice)”, “평화의 성(City of Peace)”, “아름다운 성(Beautiful City)” 등의 모든 이름들은 구약 시대의 여러 예언자들이 예루살렘 성에 대하여 부르던 이름들이었습니다.
Mt. Olive(감란산)에서 바라 본 예루살렘 성
“예루살렘”이라는 그 말 자체는 “평화의 도시 (IR=도시, SHALOM=평화)”를 뜻하기도 하지만, 이곳은 지금으로 부터 약 3,000년 전 다윗 왕국의 수도로 세워진 이래, 수많은 침략자들에 의하여 여러 차례 점령을 당하는 수난을 겪어 왔는데, 그때마다 예루살렘 성에 살고 있었던 주민들은 이곳으로부터 쫓겨나서 흩어지기도 하는 일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험난한 역사로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해발 700m ~ 800m의 비교적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스만 터키가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던 당시인 16세기에 슐레이만 1세 황제가 가로 1 Km, 세로 1 km, 총 길이 약 4 km에 달하는 성벽을 축성하였는데 그 때 쌓았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는 이곳에는 약 20,000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동서남북을 구분할 수 없는 수많은 골목길들이 마치 미로와 같이 서로 얽혀 있으며, 가는 곳마다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상점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은 성서상의 예루살렘 성(Old City)과 19세기 말 이후부터 새롭게 건설되고 발전하고 있는 신시가지(New City)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Old City) 주변에 있는 신시가지(New City)는 현재 Old City의 약 100배 정도 크기에 달하고 있으며, 계속하여 확장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할 당시인 1948년부터 예루살렘 성 서쪽 지역의 일부분이 이스라엘의 영토가 되었고, 1950년부터 이곳은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나머지 예루살렘 성 동쪽의 대부분 지역은 요르단의 영토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1967년에 있었던 제 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비로소 예루살렘 성 전체를 요르단으로부터 인계받게 되었습니다.
1967년 6월 제 3차 중동전쟁(6일 전쟁) 이후로부터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전체를 점령하게 되었지만, 현재 이 도시에는 유태인들과 이슬람교도들과 기독교도들이 함께 어울려서 살고 있습니다. 이 예루살렘 성(Old City)에는 이슬람교, 유대교, 개신교 기독교, 가톨릭, 러시아 정교, 아르메니아 정교, 그리스 정교, 등 수많은 종파를 가진 종교인들이 그 좁은 땅 덩어리에서 서로 복닥거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종교 전시장이면서 또한 인종 전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런 구역들은 특별한 경계선이나 담장 같은 것은 없이 좁은 골목길 같은 것을 경계라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독특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살고 있습니다.
Street at Jewish Quarter Street at Muslim Quarter
Street at Christian Quarter Street at Armenian Quarter
이스라엘 정부는 예루살렘의 신도시에 신축하는 모든 건축물에는 이곳 특유의 색을 가지고 있는 “옅은 베이지 색 돌”만을 사용하여 건축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콘크리트로 건축된 건물의 외장 색깔도 마찬가지로 “옅은 베이지 색”으로 칠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규정에 따라 저녁때가 되면 예루살렘의 베이지 색 돌 건물들은 해지는 황금빛 석양빛을 반사하여 옛 도시의 모습은 물론 모든 건물들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이게 되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Old City에는 역사적인 유적, 특히 종교적인 유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묘(聖墓)교회(그리스도교), 통곡의 벽(유대교), 오마르 사원(이슬람교) 등이 특히 유명합니다. 유대교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도와 이슬람교도도 이곳에 많이 살고 있으며, 관광객들은 물론 순례자들을 위한 호텔, 레스토랑, 그리고 기념품 상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유대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유대교도 구역(Jewish Quarter)”, 기독교인들이 모여 살고 있는 “그리스도교도 구역(Christian Quarter)”, 아르메니안 정교회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지역인 “아르메니안 구역(Armenian Quarter)” 그리고 대부분 아랍인들로 구성된 무슬림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무슬림 구역(Muslim Quarter)”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렇게 크게 4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특별한 경계선도 없이 잘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지리
사해(死海)로부터 북서쪽으로 25 km, 지중해 연안으로부터 동쪽으로 55 km, 고도 800 m의 산 위에 위치하고 있는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중앙산맥의 분수령 위에 있습니다. 이곳은 지중해성 기후와 사막 기후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북위 31°41’에 위치하지만 겨울에는 몹시 춥고, 눈이 오는 때도 있으며, 봄, 가을에도 이따금 37℃의 더위를 겪기도 합니다.
산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예루살렘은 지형적으로 남서쪽에 힌놈 아들들의 골짜기(Gehennom)가 있고, 그 골짜기를 따라 계속 내려가면 키드론(Kidron) 골짜기와 감람산의 겟세마네 지역과 만나게 됩니다. 이곳에는 기원전 약 3,000년부터 사람들이 부락을 이루면서 살아왔습니다. 산악 지형이 가진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었던 예루살렘은 외부 침입을 쉽게 막을 수 있는 성채를 건설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전 산 (Temple Mount)
성전 산은 예루살렘에 약 3,000년 전(BC 1,000년경)인 솔로몬 왕 시대에 유대인들의 성전이 처음으로 세워졌었던 산을 말합니다. 이 성전 산을 중심으로 하여 솔로몬의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는 일은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원래의 성전 산은 꼭대기가 성전이 들어서기에 충분하지도 넓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평평하지 못하였던 산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세울 터를 평평하게 하기 위해 약간 높은 곳은 깎아 내거나 또는 낮은 곳은 돌 벽돌로 기초를 쌓아올려서 성전 터를 평평하게 만들어야만 했는데 이와 같은 공사를 위해서 수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 터 다윗 성 성전 산의 솔로몬의 예루살렘 성전 터
(왕하 24:8~17)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을 때의 나이는 열여덟 살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세 달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느후스다입니다. 느후스다는 예루살렘 사람인 엘라단의 딸입니다. 여호야긴은 그의 조상들처럼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 무렵,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의 신하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쌌습니다. 느부갓네살 왕도 그의 신하들이 그 성을 에워싸고 있는 사이에 그 성에 왔습니다. 유다 왕 여호야긴이 자기 어머니와 신하들과 장교들과 관리들과 함께 느부갓네살 왕에게 항복했습니다. 그러자 바빌로니아 왕이 여호야긴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때는 느부갓네살이 왕으로 있은 지 팔 년째 되던 해였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에 있는 보물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성전에서 쓰려고 만든 금 그릇들을 다 깨뜨렸습니다. 이 모든 일이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모든 관리와 모든 용사와 모든 기술자와 대장장이들을 데려갔는데, 그가 잡아 간 사람은 모두 만 명에 이릅니다. 그 땅에는 가장 천한 사람만이 남았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을 바빌론으로 사로잡아 갔을 뿐만 아니라, 여호야긴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 그리고 왕의 관리들과 그 땅의 지도자들도 데려갔습니다. 바빌로니아 왕은 군인 칠천 명도 사로잡아 갔습니다. 그들은 모두 강하고 용감한 군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술자와 대장장이들 1,000 명도 사로잡아 갔습니다. 바빌로니아 왕은 여호야긴을 대신해서 여호야긴의 삼촌 맛다니야를 왕으로 세우고 이름을 시드기야로 고쳤습니다.”
(왕하 25:1~16) “시드기야가 왕으로 있은 지 구 년째 되는 해의 열째 달 십 일에 시드기야가 바빌로니아 왕에게 반역했으므로,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모든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왔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성을 공격하기 위해서 그 주변을 에워싸고 흙 언덕을 성 둘레에 쌓았습니다. 성은 시드기야가 왕으로 있은 지 십일 년째 되던 해까지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그 해 넷째 달 구 일이 되자 성 안에 기근이 심해졌습니다. 백성들은 먹을 것을 하나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때맞춰 성벽도 뚫리고 말았습니다. 모든 군대가 밤중에 도망쳤습니다. 그들은 왕의 정원 곁에 있는 두 성벽 사이에 있는 성문 길로 빠져 나갔습니다. 그 때까지도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성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시드기야와 그의 군대는 아라바 길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바빌로니아 군대가 시드기야 왕을 여리고 평야에서 붙잡았습니다. 시드기야 왕의 모든 군대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바빌로니아 군대가 시드기야 왕을 사로잡아 리블라에 있는 바빌로니아 왕에게 끌고 갔습니다. 바빌로니아 왕이 시드기야를 심문했습니다. 그들은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그의 눈을 뺀 뒤 쇠사슬로 묶어 바빌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이 왕으로 있은 지 십구 년째 되던 해의 다섯째 달 칠 일에 경호대장인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느부사라단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에 불을 지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불태웠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물은 다 불타고 말았습니다. 바빌로니아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의 성벽을 헐어 버렸습니다. 그 군대는 왕의 경호대장이 지휘했습니다. 경호대장인 느부사라단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빌로니아 왕에게 항복한 백성과 나머지 백성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그러나 그 땅의 가장 천한 사람들은 남겨 두어 포도밭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했습니다. 바빌로니아 군대는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놋기둥과 놋받침대와 바다라고 부르는 커다란 놋대야를 깨뜨려 그 놋쇠를 바빌론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들은 또 성전에서 제사드릴 때 쓰는 솥과 부삽과 불집게와 접시와 온갖 놋 기구들도 가져갔습니다. 왕의 경호대장은 화로와 대야들도 가져갔고 금이나 은으로 만든 것도 다 가져갔습니다. 또 놋 기둥 두 개와 커다란 놋대야 하나와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해 만든 놋 받침대도 모두 가져갔습니다. 경호대장이 가져간 놋은 너무 많아서 무게를 달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바빌로니아 느부갓네살의 정복에 대하여 BC 597년 3월에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10년이 지난 후에 바빌로니아에 의하여 남 유다의 왕으로 세워진 시드기야 왕은 바빌로니아에 항거하는 반역을 사건을 BC 587년에 일으키게 되었을 때 느부갓네살은 또 다시 예루살렘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때에 예루살렘 성과 솔로몬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의 예루살렘 성전 헤롯 성전
(에스라 3:7~13) “그 뒤에 그들은 돌 다듬는 사람과 나무를 다루는 사람에게 돈을 주어 일을 시켰습니다. 시돈과 두로의 여러 성에 음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보내 주고, 레바논에서 욥바 항구까지 백향목을 실어 오게 했습니다. 그 일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허락하였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돌아온 지 이 년째 되는 해의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동료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과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모두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십 세 이상 된 레위 사람을 뽑아서 여호와의 성전 짓는 일을 맡겼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짓는 일을 맡은 사람은 예수아와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 호다위야의 자손 갓미엘과 그의 아들들, 그리고 헤나닷의 아들들과 손자들과 형제들로, 모두 레위 사람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일꾼들이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는 일을 마치자, 제사장들이 제사장 옷을 입고 나팔을 들었습니다. 레위 사람들과 아삽의 아들들도 제금을 들고 모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곤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말한 대로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그들은 찬양하고 감사하며 여호와께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은 영원하시다.” 그러자 모든 백성도 성전의 기초를 놓은 것을 보고,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나이 든 제사장과 레위 사람, 각 집안의 지도자들은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솔로몬 왕 때에 처음 지었던 아름다운 성전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 놓여진 이 성전의 기초를 보고 큰 소리로 울었고, 다른 백성들은 기쁨에 겨워 소리를 질렀습니다. 백성이 내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웠으므로, 기쁨에 겨워 지르는 소리와 슬퍼서 우는 소리를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그 소리는 멀리서도 들렸습니다.”
헤롯은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던 Roman Empire의 힘을 등에 업고 BC 37년부터 유대 땅을 다스리게 된 Herodian Kingdom의 왕이 되었습니다. 혈통적으로 유다 사람이 아닌 이두메(에돔)사람이었던 헤롯 대왕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확장하는 건설공사를 시작하였는데, 이때에도 성전의 터를 2 배로 늘리기 위해서 성전 산 주변에 더 넓은 축대를 쌓아 기초를 닦은 다음에 안 쪽에서 흙이나 돌로 메우는 방식으로 성전 확장 공사를 하였습니다. 오늘날 흔히 “통곡의 벽(Western Wall)”이라고 불리는 성전의 서쪽벽도 당시에 헤롯 대왕에 의하여 확장된 성전의 광장을 지탱하기 위해 쌓아진 벽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