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예루살렘 성전 산의 역사
성전 산의 역사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 1 성전 시대 (BC 1000~BC 586년)
성서에 의하면 BC 1,000년경 유다의 왕 다윗 왕이 이곳을 함락한 후 성벽을 쌓고 “다윗 성”이라고 부르고 유다 왕국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다윗 왕은 유대인의 전통에 의하여 아브라함이 그의 나이 100세에 얻은 아들 Isaac을 번제의 제물로 바치려 하였던 모리아 산 정상의 제단 바위라고 알려진 곳을 중심으로 제단을 쌓았습니다.
(대상 21:26~22:10) “다윗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태워 드리는 제사인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다윗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자 여호와께서는 하늘로부터 번제물을 바치는 제단 위로 불을 내리사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천사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자기에게 대답해 주신 것을 보고 그 곳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의 성막과 번제단은 기브온 언덕에 있었습니다. 그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 모세가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의 천사와 그의 칼이 무서워 그 성막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 볼 수 없었습니다. 다윗이 말했습니다. “이 곳에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번제단을 쌓을 것이다.” 다윗이 이스라엘에 사는 모든 외국인을 불러 모으라고 명령했습니다. 다윗은 그들 가운데서 석수들을 뽑아 성전을 짓는 데 필요한 돌을 다듬게 했습니다. 다윗은 쇠를 굉장히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 쇠는 문짝에 쓸 못과 돌쩌귀를 만드는 데에 쓰였습니다. 다윗은 또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많은 놋쇠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백향목도 준비했습니다. 그 백향목은 시돈과 두로 사람들이 다윗에게 가져온 것입니다. 다윗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위해 짓는 성전은 세상에 이름을 떨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아름다워야 한다. 그런데 내 아들은 아직 어리고 배워야 할 것도 많으므로, 내가 성전 지을 준비를 해 놓아야겠다.” 그래서 다윗은 죽기 전에 필요한 것을 많이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런 다음, 다윗은 자기 아들 솔로몬을 불러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해 성전을 지으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나는 하나님 여호와께 예배드릴 성전을 짓고 싶지만, 여호와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전쟁을 많이 치르는 동안, 사람을 수없이 죽였으므로, 너는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지을 수 없다. 그러나 너에게 아들을 줄 것인데, 그는 평화의 사람이 될 것이다. 내가 사방의 모든 원수로부터 그를 지킬 것이며, 그에게 평화를 주도록 하겠다. 그 이름은 솔로몬이라 하리니, 그가 왕으로 있는 동안, 이스라엘은 평화와 안정을 누릴 것이다. 그가 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지을 것이다. 그는 나의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의 나라를 강하게 하며 그의 자손 가운데서 이스라엘 왕을 세우고 그 보좌가 영원히 이어지게 할 것이다.’”
그 후 솔로몬 왕은 이 다윗 왕이 쌓았던 제단을 지성소로 하여 “솔로몬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번제 제사를 드렸습니다.
(대상 22:11~19) “다윗이 또 말했습니다.“내 아들아,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하시기를 바라고, 너를 번영케 하시기를 바란다. 여호와께서 너를 두고 말씀하신 대로 네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기를 바란다. 또한 여호와께서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주실 텐데, 아무쪼록 여호와께서 너에게 슬기와 깨달음을 주셔서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잘 지킬 수 있게 하시기를 바란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모세에게 주신 규례와 율법을 잘 지켜라. 지키기만 하면 성공할 것이다. 강하고 용감하여라. 두려워하거나 용기를 잃지 마라. 솔로몬아, 내가 어려운 가운데서 여호와의 성전을 짓는 데 필요한 금 십만 달란트 와 은 백만 달란트 와 무게를 달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구리와 쇠를 준비해 놓았다. 또한 나무와 돌도 준비해 놓았다. 그러나 네가 보태야 할 것들이 있다. 너에게는 일꾼이 많이 있다. 채석공과 석수와 목수가 있고, 온갖 일을 잘하는 기술자들이 있다. 그들은 금과 은과 구리와 쇠로 만드는 일을 잘 한다. 기술자는 셀 수도 없이 많다. 이제 일을 시작하여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하실 것이다.””
그 후 350여 년 동안 이곳 성전 산위의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에서 희생 제사가 계속해서 드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BC 586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과 이 솔로몬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성전의 모든 성물들과 함께 수많은 유대 백성들은 바벨론의 노예로 또는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제 2 성전 시대 (BC 538~AD 70년)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점령하였던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 의해서 BC 538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다시 건축할 수 있는 허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전을 재건하는 공사가 시작되기 전 예루살렘 성벽을 쌓는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BC 516년에 비록 초라한 모습의 성전이지만 예루살렘 성전이 새롭게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학개 1:3~8) “예언자 학개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성전이 아직도 폐허로 남아 있는데 너희가 그렇게 멋진 집에서 사는 것이 옳으냐?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가 말한다. 너희가 한 일을 생각해 보아라. 너희가 심기는 많이 심었으나 거두기는 적게 거두었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셔도 여전히 목마르며, 옷을 입어도 따뜻하지 않으며, 돈을 벌어도 마치 구멍 난 주머니에 넣은 것처럼 모두 잃어버리고 만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한다. 너희가 한 일을 생각해 보아라. 산에 올라가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지어라. 그러면 내가 그 성전으로 인해 기뻐하고 영광을 받겠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학개 1:12~15)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인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살아남은 백성과 함께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복종했습니다. 그리고 예언자 학개의 말에도 복종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께서 학개를 보내셨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두려워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은 유다 총독이었고,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는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주께서는 살아남은 나머지 백성의 마음도 움직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와서 만군의 여호와의 성전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는 다리오가 페르시아 왕으로 있은 지 이 년째 되는 해 여섯째 달 이십사 일이었습니다.”
(학개 2:2~4)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이며 유다 총독인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이며 대제사장인 여호수아와 살아남은 백성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희 살아남은 백성 가운데 저 성전의 아름다웠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느냐? 지금은 그 성전이 어떻게 보이느냐? 하찮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그러나 스룹바벨아, 용기를 내어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용기를 내어라. 이 땅의 모든 백성아, 용기를 내어라. 여호와의 말씀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할 테니 일을 하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다.”
(에스라 6:15~18) “성전을 다 지은 때는 다리오가 왕이 된 지 육 년째 되던 해의 아달 월 삼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기뻐하며 성전을 하나님께 바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제사장들이나 레위 사람들이나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다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하나님께 바치면서, 수소 백 마리와 숫양 이백 마리와 어린 양 사백 마리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의 죄를 씻기 위한 제물로 숫염소 열두 마리를 바쳤습니다. 이스라엘의 각 지파대로 한 마리씩을 바친 것입니다. 그런 뒤에 그들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여러 무리로 나누었습니다. 각 나누어진 무리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정한 시간 동안 하나님을 섬겨야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모세의 책에 적힌 대로 되었습니다.”
제 3 성전 시대 (BC 20년 ~ AD 70년)
(학개 1:14~2:3) “여호와께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은 유다 총독이었고,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는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주께서는 살아남은 나머지 백성의 마음도 움직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와서 만군의 여호와의 성전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는 다리오가 페르시아 왕으로 있은 지 이 년째 되는 해 여섯째 달 이십사 일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일곱째 달 이십일 일에 예언자 학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이며 유다 총독인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이며 대제사장인 여호수아와 살아남은 백성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희 살아남은 백성 가운데 저 성전의 아름다웠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느냐? 지금은 그 성전이 어떻게 보이느냐? 하찮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바벨론의 포로 생활로부터 돌아온 이스라엘의 살아남은 백성들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하여 BC 515년경에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였지만 파괴되고 없어진 솔로몬 성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성전의 초라한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다니엘 11:31~32) “북쪽 왕이 군대를 보내어 예루살렘 성전을 부정하게 만들 것이다. 백성이 날마다 바치는 제물을 바치지 못하게 하며, 멸망의 역겨운 것을 세울 것이다. 언약을 어긴 사람들은 아첨으로 더럽혀질 것이지만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강해질 것이고 용감해질 것이다.”
다니엘의 예언처럼 헬라(그리스) 제국의 4대 분할 왕국 중 하나였던 시리아 왕국의 셀류쿠스 왕조의 왕인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유대 민족을 억압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聖殿)에 돼지를 제물로 바치게 하는 등의 수많은 모독(冒瀆)을 받기도 하였던 예루살렘의 두 번째 성전은 강한 신흥 제국인 로마의 장군 Pompey가 예루살렘을 침공하였을 때(BC 63년)에 또 다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로마 원로원에 의해 유다 왕으로 즉위하게 된 헤롯 대왕(BC 37~AD 4년)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위하여 스룹바벨 성전이 너무 작고 초라하다는 이유로 BC 20년 그곳에 성전을 재건축하는 공사를 약 7년에 걸쳐 대대적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이 성전이 바로 3 번째 예루살렘 성전인 “헤롯 성전”입니다.
그 후 헤롯 대왕에 의하여 시작된 성전의 확장과 재건은 외형적으로는 약 9년이 지난 후에 완성되었지만 성전의 모든 세부 공사는 AD 63년에 헤롯 아그립바 2세에 의해 완공되었습니다. 이때 재건축되어진 예루살렘의 헤롯 성전은 성전 산을 중심으로 하여 북쪽과 남쪽, 그리고 서쪽 부분을 확장하였는데 이곳에 서 있었던 스룹바벨의 성전 보다 더 크고 아름답게 건축되었습니다. 성전 산으로 올라가는 문들을 몇 개 더 건설하였고 지하 터널과 계단들과 육교를 통하여서도 성전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답게 재건축되었던 예루살렘 성전은 또 다시 무너지게 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AD 66년에 Greece계 로마인과 유대인의 종교적 분쟁으로부터 시작되어 마침내 폭동이 되어 로마 제국을 대항하면서 독립항쟁으로 발전된 “유대 독립전쟁(Great Jewish Revolt)”을 진압하기 위하여 AD 70년에 로마로부터 온 진압군의 Titus 장군의 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은 함락되었습니다. AD 73년까지 유대인 저항군을 진압하는 과정 중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아직까지 그 폐허의 잔해로 남아 있다가 발굴되어 지는 유적들은 헤롯 성전의 잔해입니다.
로마의 Foro Romano에 있는 Titus의 개선문에 보조로 조각되어 있는 장면으로써 예루살렘의 헤롯 성전의 성물들을 운반하고 있는 로마 군인들의 모습입니다. 그 후 AD 132년에 있었던 “Bar Kokhba의 반란(Revolt)” 사건의 결과로 예루살렘 도시는 로마의 황제 Hadrianus의 군대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성전이 서 있었던 성전 산 위에는 Jupiter 신전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새로운 이름으로 “아엘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라는 로마식 이름을 새롭게 갖게 되었고, 나라를 잃어버린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 전역으로 흩어지게 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시대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후 약 2,000년 동안 계속되어 왔습니다.
로마의 황제 Hadrianus는 예루살렘을 “Aelia Capitolina”로 바꾼 이후부터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성의 출입을 완전히 금하였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 900년 동안 그들의 성전이 있었던 예루살렘 도성으로 들어 갈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AD 313년 밀라노 칙령에 의해서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로마 제국의 국교로서 기독교를 공인하였고 이로 인하여 예루살렘 성은 가장 거룩한 기독교 성지가 되었습니다. 이때에도 유대인들은 이곳 예루살렘에 들어 올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성전 산 위에 세워졌던 Jupiter 신전은 그리스도교 건물로 사용되었다가 AD 614년 페르시아의 침공을 받으면서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Flavius Valerius Constantinus 황제에 의해서 기독교가 공인된 후, 비잔틴(신성 로마 제국) 시대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산과 그의 무덤이 있었던 곳에 “성묘 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가 세워졌으며, 예수께서 탄생하신 곳인 베들레헴에는 “성탄 교회”가 세워지기는 하였지만, 수 세기 동안 비잔틴(신성 로마 제국)의 기독교인들은 성전 산이 폐허가 되어 있는 모습 그대로 방치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전 산에 관하여서는 관심을 크게 기우리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성전 산위의 성전이 있었던 곳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언이 이루어진 곳이었기 때문에 다시 재건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3:1~2) “예수님께서 성전을 떠나실 때, 한 제자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보십시오! 정말 아름다운 돌이지요, 정말 아름다운 건물이지요!” 예수님께서 “이 큰 건물을 보느냐?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기 아랍 시대 (AD 638~1099년)
AD 638년 이슬람의 칼리프 우마르(Umar)가 예루살렘 성을 정복하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성전 산의 남쪽에 오래 전 로마에 의해서 파괴되어 버려져 있던 성전 산의 돌들을 다시 사용하여 그의 왕궁을 건설하고, 옛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가 있었던 커다란 바위를 중심으로 하여 AD 691년에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이라고 불리는 이슬람의 기도처를 건축하였습니다. 그 후 AD 1099년 유럽의 기독교도들인 십자군을 결성하여 예루살렘 회복 전쟁으로 인하여 성전 산은 다시 기독교의 성전 산이 되었습니다.
십자군 시대 (AD 1099~1187년)
비잔틴의 기독교인들은 성전 산을 폐허로 방치하였지만, 십자군은 예수의 성전 파괴 예언이 이루어진 곳인 성전 산을 거룩한 장소로 이해하였습니다. 또 성전 산은 예수께서 그의 공생애 기간에도 여러 번 방문하였던 곳이고, 예수님이 메사야임을 선포하였던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 십자군은 이슬람의 건축물들을 기독교화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였던 무함마드(Muhammad)가 승천하였던 곳이라는 전승에 의하여 무슬림의 기도처로 건축됐던 “Dome of the Rock”은 십자군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기독교 성전으로 사용하였으며, “알 악사(al-Aksa)” 사원은 십자군 사령관의 숙소로 사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