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Via Dolorosa (고통의 길, 십자가의 길) 제 1 지점~제 9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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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a Dolorosa (라틴어 Way of Grief, Way of Suffering)

라틴어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는 말은 “Way of Grief(고통의 길)”, “Way of Sorrow”로 “슬픔의 길”, 또는 “Way of Suffering”, “Painful Way”로 “고통의 길”이라는 의미로 번역됩니다. 이  Via Dolorosa(십자가 고통의 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형 언도를 받으신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기까지 걸어가신 사건을 기념하여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 가는 길입니다.

자기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왕이고 메시아(Messiah, Christos)라고 주장하는 예수는 대제사장, 산헤드린 공의회원, 바리새파, 등의 유대인들에 의해서 신성 모독죄로 고발되어 사형 언도를 받았던 본디오 빌라도의 법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십자가가 섰었던 골고다 언덕과 예수님을 장사지냈던 곳이며 부활하셨던 바위무덤까지의 약 800m의 길을 그리스도 예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셨던 길로서 14 개의 지점으로 나뉘어서 기념하고 있는 길이 “Via Dolorosa”길입니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바에 따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신 길을 따라 순례 길을 따라가는 순례행진은 여러 가지의 기원설이 있지만 가장 오래된 기원설은 신성 로마 제국 시대인 비잔틴(Byzantine) 시대부터 시작되었다라고 하지만, 다른 주장에 의하면 1517년경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에 의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걸어가셨던 길을 따라가는 십자가 행진을 시작하여 그 전통이 이어져 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 1731년에 클레멘스 12세 교황은 십자가의 길 14처를 승인하여 오늘날과 같은 약 800m의 “십자가의 길(Via Dolorosa)”가 확정되었다고 합니다.

순례자들은 올리브 산에서부터 시작하여 게세마네 동산이 잠깐 멈춘 후에 “사자 문”을 통하여 옛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간 후, 지금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예수님이 묻히셨던 바위무덤에 세워진 “성묘 교회(Ecclesia Sancti Sepulchri)”에 이르기 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이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에 대하여 사형 언도가 확정된 빌라도 법정에서부터 시작하여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의 전 과정을 모두 14지점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순례자들은 각 지점을 통과할 때마다 발길을 멈추고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그 길을 따라갑니다. 당시 예수께서 실제로 걸어가셨던 길과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이 길을 걷는 우리에게는 무한한 감동과 의미를 안겨주는 길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길은 예수님에게는 고난과 고통의 길이요, 슬픔의 길이었지만, 우리들에게는 “생명의 길”이었고,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십자가 지시기 전 예수님의 행적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지금은 정리되어 있지 못하고 지저분하고 오래된 도시의 좁은 길, 그 양쪽으로 밀집하여 상점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기념품과 같은 물건을 팔기 위하여 분주한 상인들이 순례자들과 엉켜서 밀고 밀리는 그야말로 도떼기시장과 같은 Via Dolorosa 길을 조용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걷는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드는 매우 흥미로운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복잡하고도 혼란스러운 “Via Dolorosa”는 십자가를 등에 지고 이 길을 걸어가셨던 예수께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이 세상길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또 다른 깊은 의미를 주고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 ❶ station(지점) : 유대 지도자들로부터 고발을 당하신 예수께서 재판을 받은 곳이었던 빌라도의 법정.

제 ❷ station(지점) : 사형언도를 받은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희롱을 당하며 채찍질을 당하신 곳.

제 ❸ station(지점) :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처음으로 쓰러진 곳.

제 ❹ station(지점) : 예수께서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나신 곳.

제 ❺ station(지점) : 리비아 출신 시몬이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걷기 시작한 곳.

제 ❻ station(지점) : 베로니카라고 불리는 여인이 땀과 피로 범벅이 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준 곳.

제 ❼ station(지점) :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두 번째로 쓰러진 곳.

제 ❽ station(지점) : 예수께서 슬퍼하는 어머니 마리아를 위로하신 곳.

제 ❾ station(지점) :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세 번째로 쓰러지신 곳.

제 ❿ station(지점) : 예수께서 골고다에서 옷 벗김을 당하신 곳.

제 ⓫ station(지점) : 예수께서 골고다의 십자가에 달리시고 손과 발에 못 박히신 곳.

제 ⓬ station(지점) :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운명한 곳.

제 ⓭ station(지점) : 예수님의 시신을 염하기 위해서 놓이셨던 곳.

제 ⓮ station(지점) : 예수께서 묻히셨다가 사흘만인 안식일 다음 날에 부활하신 곳.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 (Via Dolorosa) Station 1~2

대제사장 가야바는 유대인들에 의해서 고발당한 예수님을 심문한 후, 제사장들, 유대 지도자들, 장로들과 의논하여 결국 죽이기로 결정하고 사형 선고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us)에게 끌고 갔습니다.

(마 27:1-2)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논의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묶어, 총독인 빌라도에게 데려가, 그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이스라엘을 총괄하는 로마 총독부의 관저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가이사랴에 있었으나, 예수님이 사형 언도를 받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그 당시에 유대 총독이었던 본디오 빌라도는, 그때가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 기간이었기 때문에 그 기간에 자주 일어났던 반(反)로마 시위를 감시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의 로마 군대의 요새였던 안토니오 요새에 와 있었던 것입니다.

(마 27:11~26) “예수님께서 총독 앞에 서셨습니다. 총독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예수님께서 “네가 말하였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고발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너를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 것이 들리지 않느냐?”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게 단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는 이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원하는 죄수 한 명을 총독이 사면해 주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당시 감옥에는 바라바라고 하는 아주 악명 높은 죄수가 한 명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였을 때, 빌라도가 말했습니다. “너희는 누구를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아니면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냐?” 빌라도가 이렇게 말한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시기해서, 자기에게 넘겨 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아 있을 때,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 말했습니다. “저 죄 없는 사람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마세요. 어젯밤 꿈속에서 제가 이 사람 때문에 몹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군중들에게 바라바를 놓아 주고, 예수님을 죽이도록 요청하라고 시켰습니다. 빌라도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두 사람 중에 누구를 석방시켜 주기를 원하느냐?” 사람들이 대답했습니다. “바라바요!” 빌라도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그들이 모두 대답했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시오!” 빌라도가 물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그가 무슨 악한 일을 했느냐?” 그러자 사람들은 더 크게 소리쳤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시오!” 빌라도는 자기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잘못하면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물을 떠다가 사람들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이 없다. 너희가 알아서 해라.” 사람들이 한 결 같이 대답했습니다. “그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지겠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바라바를 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채찍으로 때리게 한 후, 십자가에 매달도록 내어 주었습니다.”

빌라도의 법정이 정확하게 어디에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상반된 주장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당시 헤롯의 궁에 빌라도가 머물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면 그의 법정도 그 안에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과 당시 총독관저로 사용하던 하스모니안 궁전에 법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성경학자들에게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빌라도의 법정이 있었다고 공식적으로 결론지어진 곳은, 예루살렘 성전의 북서쪽 모퉁이의 외곽에 있었던 로마 군대의 주둔지인 “Antonio 요새”가 있었던 곳,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1540년경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의해 정해진 것으로서 본디오 빌라도의 법정이 있었던 “안토니오 요새”로부터 시작해서 “골고다” 언덕까지 약 800 m 거리의 길을 “십자가의 길(Via Dolorosa)”로 정하여 성지로 삼은 것이 오늘날까지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 온 것입니다.

Via Dolorosa 1st Station                                                     1910년에 촬영된 Vis Dolorosa 1st Station

제 1 지점 (First Station) “엘 오마리오” 학교 교정

다마스커스 문(Lion Gate)을 통하여 Old City 안으로 들어가서 약 20m 앞에서 양쪽으로 갈라지는 길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왼쪽에 있는 길을 따라 약 50 m 쯤 내려가서 다시 왼쪽으로 돌아갑니다. 그 다음에, 또 다시 약 50 m 쯤 걸어 올라가면, 오른편으로 카펫 가게, 기념품 등을 파는 가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가게들을 지나가면서 오른쪽으로 약간 경사진 비탈길 끝에 파란색 철문을 만나게 됩니다. 이 문 안쪽이 바로 “비아 돌로로사”의 제 1 지점(First Station)가 되는 곳입니다.

 

“엘 오마리오” 학교로 들어가는 문                              el-Omariye college 교정

당시에 유대의 지도자들의 고발로 인하여 예수를 재판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몰려 왔었던 곳, “안토니오 요새”가 있었던 곳의 지금은 아랍 어린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el-Omariye college로 사용되고 있는 곳인데, 이 학교의 운동장이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 군대의 안토니오 요새가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이곳이 유대 총동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하였던 곳이며, Via Dolorosa의 출발점이 되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당시에 재판관이 앉았다고 하는 박석(얇게 뜬 돌 판)이 있고, 빌라도가 이 재판에서 자기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면서 손을 씻었다고 전해지는 돌로 만든 물그릇의 모형이 남아 있습니다.

빌라도 법정 자리였다고 믿어지는 “엘 오마리오” 학교 마당에서부터 평일에는 수업 때문에 문을 열어주지 않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채찍을 맞으며 가셨던 고난의 길을 기념하기 위하여 매주 금요일마다 오후 3시가 되면, 이곳에서 시작되는 “십자가의 길”을 가는 행렬 시간에 맞추어 문을 열어줍니다. 이때에 비로소 십자가 행진이 시작될 수 있게 됩니다. 프란체스코 수도회 사제들이 주관하여 진행되는 이 행진 가운데는 종종 큰 십자가를 손수 메고 따라가는 순례자들도 볼 수 있습니다. Via Dolorosa에는 모두 14곳 장소로 지정된 의미있는 Station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각 장소에 이를 때마다 순례자들은 잠시 머물러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면서 따라갑니다.

“엘 오마리오” 교정에 있는 1 st Station Sign

제 1, 2의 장소는 출발점인 빌라도 법정이었던 안토니오 요새에 있고, 제 10 ~ 제 14의 장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골고다 언덕에 있는데, 지금 그곳에는 The Holy Sepulchre(예수님의 거룩한 무덤 교회)가 위치해 있습니다.

현재의 Via Dolorosa가 지나가는 길에는 많은 아랍 상인들의 가게들이 들어서 있어서 매우 복잡합니다. 더욱이 골목길의 생김새도 비슷비슷하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길가에 늘어서 있는 가게들도 비슷하게 생기고 팔고 있는 상품들도 거의 다 비슷비슷해서 주위 깊게 행렬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린 미아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제 2 지점 (Second Station) 에체 호모 아치(Ecce Homo Arch)

유대인이었지만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사제가 된 프랑스의 Marie Alphonse Ratisbonne는 1855년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을 묵상하며 Ecce Homo Arch를 방문하였는데 그때 그는 원래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서 건설되었던 Hadrianus Arch의  폐허로 남아 있었던 “에체 호모 아치(Ecce Homo Arch)”를 보고 크게 매료되었습니다.

 1864년에 촬영된 Ecce Homo Arch                                           1856년에 촬영된 Ecce Homo Arch(Hadrian Arch)

1857년에 촬영된 Ecce Homo Arch                              1888 년에 촬영된 Ecce Homo Arch (Photo by Shadbolt)

1903년 11월에 촬영된 Ecce Homo Arch와 현재의 모습

2년 후, 그는 예루살렘으로 다시 와서 오랫동안 폐허로 버려져 있었던 이곳 주변의 토지를 구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Ecce Homo 시온 수녀회”를 설립하고 1868년에 시온 수녀회의 수도원과 교회당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리고 Ecce Homo 시온 수도회에서는 1931년~1933년과 1934년~1937년, 두 번에 걸쳐 이곳에서 고고학 발굴 작업을 계속하였습니다.

시온 수녀회 지하에서 발굴된 Lithos Trotos(Gabbatha)

이 발굴 작업의 결과로서, (요한복음 19:5)에서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 사람을 보시오!(Ecce Homo!)”라고 말하였던 곳과, 재판관이었던 본디오 빌라도가 앉았던 재판석을 발견하였으며, 그곳에 있었던 곳에 아람어로 “가바타(Gabatha)”라고 불리는 돌 판으로 깔린 로마식 도로인 “리토스 트로토스(Lithos Trotos)”를 발굴하였습니다. “Lithos Trotos”라는 말은 “돌 판”이라는 뜻이었는데 그것은 로마시대에 도로나 광장을 조성하기 위해 바닥에 깔았던 크고 넓은 돌 판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발굴의 결과에 따라, 이곳이 바로 안토니오 요새에 있었던 빌라도의 법정이 있었던 자리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빌라도 법정이 있었던 그 자리에 있었던 시온 수녀원 지하에는 당시에 발굴된 Lithos Trotos인 돌 판 바닥의 일부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사람이나 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홈을 파놓은 것들과 당시의 로마 군인들이 놀이를 하기 위해서 새겨놓은 장기판 등의 흔적들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Via Dolorosa”의 제 1 지점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하고 사형 언도를 내렸던 곳이었고, “Via Dolorosa”의 제 2 지점은 로마 군사들이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홍포를 입혀 놓고 희롱하였던 곳입니다. 이때 빌라도는 조롱당하는 예수님을 보고 “보시오, 이 사람이오!”라고 말하였습니다. “에케 호모(Ecce Homo)”란 말은 “이 사람을 보라!”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채찍질을 당한 후에 도시의 거리를 지나 골고다로 향했으며,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며 조롱하였습니다.

(요 19:4~7) “빌라도가 또다시 관저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자, 내가 예수를 당신들에게 데리고 나오겠소. 내가 그를 고소할 아무런 죄도 발견하지 못한 것을 당신들은 알게 될 것이오.”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줏빛 옷을 입고 나오시자,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보시오, 이 사람이오!”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병들이 예수님을 보고 목소리를 높여 외쳤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빌라도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이 사람을 데리고 가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소.” 유대인들은 “우리의 법대로 하면 그는 당연히 죽어야 합니다.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니 말입니다”라고 우겼습니다.”

AD 135년에 제 2차 유대인 폭동을 진압하고 도시의 이름을 “알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로 바꾸었던 로마의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이곳에 Hadrian’s Arch를 세웠는데 그곳에는 크고 작은 Arch 3 개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모양으로 만들어 세웠습니다. 그 Arch들 중에 왼쪽의 작은 아치 부분은 지금의 Ecce Homo 교회 내부로 연결되어 중앙 제단으로 사용되고 있고, 중앙에 있었던 큰 아치(Arch)는 지금도 Via Dolorosa 길 위에 2/3 정도가 걸쳐 있는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Ecce Homo Arch (Hadrian’s Arch)                             Ecce Homo Church의 제단(Hadrian’s Arch의 중앙 부분의 Arch를 활용하여 꾸몄다.)

Lithos Trotos가 있는 교회당의 지하실에는 약 2,000년 전에 축조하여 사용하였던 지하 저수조가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에 안토니오 요새가 있었던 이곳의 북쪽 부분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선고 받았던 곳인 그 자리에 그때의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선고 교회(Condemnation Church)”가 건축되어 서 있습니다.

선고 교회(Condemnation Church)

“선고 교회(Condemnation Church)”는 “채찍질 교회”와 같은 정원에 서로 마주보고 있는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채찍 교회에서 회랑을 따라 조금 옆을 보면 왼쪽에 “사형 선고 교회”를 만나게 됩니다. “선고 교회(Condemnation Church)”는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준 것을 기념하여 1904년에 비잔틴식으로 재건된 교회당입니다.

이 교회가 있는 곳은 원래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교회당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랍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었을 때에는 이 교회당 건물이 이슬람 사원(mosque)로 사용되어 오다가 1904년에 가톨릭교회 성당으로 개조하면서 비잔틴식으로 건축되어진 것입니다.

선고 교회(Condemnation Church)

가톨릭교회 전통에 따르면, “Santa Scala(거룩한 계단, Holy Stairs)”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을 받으실 때, 본디오 빌라도 총독의 재판정으로 재판을 받으러 올라가셨던 길에 있었던 계단이었습니다. 선고 교회 실내의 제단에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 계단을 내려오는 성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성화에서 예수님께서 걸어 내려오고 있는 계단은 “거룩한 계단(Santa Scala)”이라고 불리는 계단입니다.

기독교 전승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황녀 헬레나가 AD 326년경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Santa Scala”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 계단을 “Scala Pilati(빌라도의 계단)”라고 불렀습니다. 오래된 설계도에 따르면 이때 예루살렘으로부터 로마로 가져온 이 계단은 성 실베스터 예배당 근처에 있던 Laterano Basilica의 복도로 이어진 그곳에 설치되었는데 그 위에는 특별히 제작된 지붕으로 덮여 있었다고 합니다.

1589년 교황 Sixtus 5세는 당시 오래되어 매우 낡은 모습의 Laterano Basilica 건물을 철거하고 새롭게 건축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지금 성 베드로 대성당 옆에 있는 Basilica di San Giovanni in Laterano는 로마에서 매우 중요한 교회당 중의 하나입니다. San Giovanni In Laterano 대성당에는 교황이 직접 Missa를 인도하였던 옛 예배당인 Sancta Sanctorum(지성소)이 있습니다. 이곳에 “성스러운 계단(Scala Santa)”과 “성스러운 문(Porta Santa)”이 있습니다.

“Santa Scala”는 양쪽에 2개씩 총 4개의 계단이 있습니다. 이 “거룩한 계단”을 순례할 때에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 방법은 “거룩한 계단”의 아래 계단부터 시작하여 28개의 계단을 올라갈 때 무릎을 꿇어 무릎으로 올라가는 것이 전통적인 순례 방법이었습니다. 1724년에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는 수많은 순례자들로 인하여 시간이 지나면서 대리석 계단이 상당히 마모되었기 때문에 대리석 계단을 보호하기 위해 나무로 덮었습니다.

이 계단은 2019년 4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잠시 동안 덮여 있었던 나무 덮개를 제거한 적이 있었습니다. 2019년 4월 11일에 계단이 다시 개방되었을 때 순례자들은 거의 300년 만에 처음으로 노출된 대리석 계단을 무릎을 꿇고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계단은 2019년 4월부터 2019년 7월까지 계속 노출되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원 작업을 한 후에 또 다시 나무로 덮었습니다.

이 “성스러운 계단(Santa Scala)”은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 황후의 명령에 따라 예루살렘의 본디오 빌라도의 총독 법정에서 로마(Rome)으로 옮겨진 대리석 계단입니다. 성스러운 계단의 28개 계단은 예수께서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사형을 선고받으시던 날 여러 번 오르셨던 계단과 정확히 같은 계단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보이는 Santa Scala(거룩한 계단)과 아래에서 위로 무릎으로 올라가는 Santa Scala

선고 교회(Condemnation Church) 옆에는 1868년에 봉헌된 시온수녀원의 건물이 있는데 이곳에는 지하에서 발굴된 로마시대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903-1904년에 작은형제회 소속 고고학자인 벤데린 기에르릭(Vendelin Gierlich of Mandel)이 발굴 작업을 하면서 교회당의 동쪽 끝에 있는 반원 부분에서 사방 10m 정사각형의 비잔틴 시대의 유적이 발굴되었습니다. 그때에 이곳에서 폐허로 남아 있던 이슬람 사원의 미흐랍(Mihrab, 무슬림들이 기도할 때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하는데 이때 Mecca의 방향을 알려주는 움푹 파인 형태의 구조물)이 발견되어 이곳이 한때에는 이슬람 사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옆에 예수님께서 채찍질 형을 선고 받았던 곳에 세워진 “채찍질 교회(The Flagellation Church)”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신 것을 기념하는 채찍질 교회는 현재 가톨릭 소속의 성경학교 교정 안에 있습니다.

채찍질 교회(The Flagellation Church)

채찍질 교회당의 모습                                                       교회 입구 위에 있는 Arch

이 교회는 1839년에 지어졌고, 1929년 십자군 시대의 건물로 개조된 것으로 내부의 돔 천정은 가시관이 아름답게 모자이크 되어 있는데, 남쪽 창에는 예수님 대신에 사면을 받아 풀려나게 된 바라바라는 죄수가 그의 사면을 기뻐하는 장면이 스테인 그라스로 그려져 있으며, 북쪽 창에는 빌라도가 손을 씻는 모습이 Stained Glass 그림으로 그려있으며, 가운데 제단 뒤에는 예수님이 채찍질 당하시는 모습이 있습니다.

빌라도가 손을 씻는 모습                                            그의 사면을 기뻐하는 바라바

빌라도 법정을 나와서 “채찍질 교회”로 들어서면 교회의 정문 위에 가시면류관 형상을 한 돌조각 작품이 아치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고 10 m X 30 m 정도 크기의 아담한 교회당은 우울하고 침울한 색채를 띠고 있기 때문에 그 분위기가 매우 어두운 것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채찍은 8 가닥으로 된 가죽 줄의 끝자락에 납을 매달아 놓아서 이 채찍으로 한 번 칠 때마다 살점이 파여져 나가고 피가 범벅이 된다고 합니다. 십자가형의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채찍으로 반 혼수상태로 만들어 놓으면 좋을 것이라고 하는 일종의 배려로 채찍질 형을 집행하였다고 합니다.

(요 19:1~3) “그래서 빌라도가 예수님을 데리고 가서 채찍질하게 했습니다. 군인들은 가시나무로 왕관을 만들어 예수님의 머리에 씌우고 자줏빛 옷을 입혔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여러 차례 예수님께 와서 “유대인의 왕 만세!”라고 말하며 얼굴을 때렸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이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이런 고통과 조롱과 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십자가 위에서 피를 모두 쏟아내시는 고통의 죽음에 이르면서 우리들의 죄의 값을 철저히 지불하시면서 죽으셨습니다. 이토록 죄에 대한 값은 크고 처절한 고통인 것입니다.

이 교회가 있는 곳은 “리토스 트로토스”가 시작되는 곳으로써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를 짊어지고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도 매주 금요일의 오후 3 시에 시작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신 사건”을 재연하면서 골고다를 향하여 “수난의 길(Via Dolorosa)”을 따라갑니다. 순례자들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던 “고통의 길(Via Dolorosa)”을 찬양하면서 따라가다가 마침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무덤에 계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곳에 세워진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 앞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Via Dolorosa) Station 3~9

Station 3 : 첫 번째로 쓰러지심 (Jesus falls the first time under His Cross)

예수님께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언덕으로 올라가시다가 처음으로 쓰러지신 곳입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처음으로 쓰러지셨다고 하는 이곳에 그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1856년에 세운 작은 예배당은 아르메니안 정교회에 의해서 처음으로 건축되었습니다.

 

왼쪽의 Station 마크가 있는 곳이 제 3 지점이고 오른쪽의 Station 마크가 있는 곳이 제 4 지점입니다.      Via Dolorosa  3rd Station

1945년에 촬영된 제 3 지점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처음으로 쓰러지시는 예수님

그 후 1947~1948년에 폴란드 군대의 도움으로 다시 수리(Renovation)되었습니다. 이 아르메니안 정교회의 예배당은 기념품 가게를 지나 계단을 통하여 지하로 내려가면 그곳에 있는데 실제적으로는 폴란드 가톨릭교회의 안에 있습니다.

Station 4 : 성모 마리아와 마주하신 예수님 (Jesus meets Mary His Mother)

“비아 돌로로사”의 4 번째 지점은 3 번째의 지점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의 바로 뒤에는 아르메니안 정교회(Armenian Church of Our Lady of the Spasm)가 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십자가를 지고 가시던 예수님이 이곳에서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마주쳤던 곳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첫 번째로 쓰러지실 때 어머니 마리아는 바로 옆에서 매우 안타까운 마음으로 있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그의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은 복음서에 기록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야기는 기독교의 전승에 의해서 전해져 오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왼쪽에 있는 제 3 지점이 다시 수리(Renovation)될 때 제 4 지점도 함께 수리되었습니다. 아르메니아 가톨릭 예배당의 문 위에 부조로 조각되어진 작품은 폴란드의 작가 T. Zielinski에 의해서 제작된 작품입니다.

Station 5 : 리비아(구레네) 출신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지다 (Simon helps Jesus)

(마가복음 15:21) “그 때, 시골에서 온 구레네 출신의 시몬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입니다. 군인들은 시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했습니다.”

(누가복음 23:26) “예수님을 끌고 갈 때, 시골에서 오던 구레네 출신 시몬을 붙잡아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게 하였습니다.”

5 번째의 지점은 Via Dolorosa 길과 “El-Wad(The Gai)” 길의 모퉁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길의 모퉁이를 오른 쪽으로 돌아가는 길은, 언덕길을 올라가는 계단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쓰러지신 예수님을 대신하여 구레네(Cyrenia, Lybia)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지고 언덕길을 올라갔던 것을 일을 기념하여 1895년에 건립된 프란체스카 가톨릭교회의 성당이 세워졌습니다.

가톨릭의 프란치스코회(작은형제회)가 성지에 온 것은 13세기 초, 그들이 비아 돌로로사에 있는 작은 집에 거주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의 프란치스코회 예배당은 1229년 예루살렘에 그들이 처음으로 지은 집이 있던 자리에 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이 지점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가 이곳에 손을 짚으시면서 쓰러지셨던 곳이라고 하는데 그때 이곳에는 그의 손자국이 나타났다고 하는 돌을 벽에 붙여 놓았습니다.

Station 6 : 한 여인이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주다 (Veronica wipes the face of Jesus)

제 6 지점은 성 베로니카(St. Veronica)라고 불리는 여인이 물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는 곳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이곳은 다시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예수님의 얼굴을 옆에서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던 한 여인이 작은 천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주었던 곳이라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성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는데 이때 돌려받은 손수건에 예수의 초상이 새겨졌다고 하는 전승에 따라 그리스 정교회가 1882년에 이 지점에 기념교회를 세웠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신비하게도 그 천에 예수님의 얼굴의 형상이 찍혔다고 합니다.

그 여인의 실제 이름은 알 수가 없지만, “Veronica(“참된 형상”이라는 뜻의 라틴어)”라고 그 여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또 어떤 전승에서는 (마가복은 5:25~34)에 소개된 혈루병을 앓았던 여인이 바로 이 여인이며, 그녀의 이름이 “베로니카”였다고 합니다. 현재 이곳에는 성 베로니카 교회(Church of St. Veronica)가 세워져 있어서 이 사건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또 이곳에 “The Holy Face” 라고 불리는 작은 그리스 정교회가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문은 언제나 닫혀 있고, 오른쪽의 파란 문 뒤에는 Little Sisters of Jesus에서 운영하면서 성상들(Icons)을 팔고 있는 작은 상점이 있고, 또 오른 쪽으로 돌아서 들어가면 긴 동굴과 같이 생긴 “The Holy Face Chapel”이라는 작은 예배당이 있으며, 이 작은 동굴을 밝히고 있는 작은 촛불들은 밖의 분주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엄숙한 분위기를 더 자아내고 있습니다.

Station 7 : 예수님이 두 번째로 쓰러지다 (Jesus falls the second time)

제 7 지점은 지금의 Via Dolorosa 길과 Khan es-Zeit(the Oil Market)가 마주치는 곳, 전승에 의하면, 이곳은 예수님 당시의 Cardo Maximus 길과 Roman Aelia-Capitolina 길이 서로 가로 질러갔던 4 거리 길로써 예루살렘에서 가장 복잡한 길이었다고 합니다. 이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보면 갈라지는 지점이 나오는데 이곳이 제 7 지점입니다. 약간 언덕진 이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두 번째로 쓰러지셨습니다.

이곳에는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쓰러지신 것을 기념하는 작은 교회당이 하나 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 쪽으로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있지 않는 2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이 교회당은 1875년에 프란체스카 가톨릭에서 소유하게 되었으며, 제단의 뒷면에는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십자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신 예수님의 모습을 부조하여 놓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곳에는 성 밖으로 이어지는 문 하나가 있었다고 합니다. 1875년에 이곳에 두 개의 예배당이 세워졌습니다. 두 번째 예배당은 첫 번째 예배당 입구의 오른 쪽에 있는 3 개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그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신성 로마 제국 시대(비잔틴 시대) 때부터 있었던 붉은 돌로 된 기둥 2 개가 남아 있습니다. 이 붉은 로마식 기둥이 있는 곳이 바로 두 번째 교회당입니다. 이곳에는 두 번째로 쓰러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조각된 황금색의 조각이 벽에 걸려 있고 작은 십자가가 놓인 제단이 있습니다.

Station 8 : 예수님이 여인들에게 말씀하시다(Jesus speaks to the women of Jerusalem)

제 7 지점에서 왼쪽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 약 10 m 정도 올라가게 되면 쉽게 지나쳐 버릴 것 같은 곳에  제 8 지점을 표시하는 작고 둥근 표시판이 박혀 있습니다. 제 8 지점은 예수님께서 울고 있는 여인들에게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들의 자녀들을 위해서 울라.”고 말씀하신 곳입니다.

(누가복음 23:27~29)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 중에는 슬퍼하며 우는 여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뒤를 돌아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울어라. 보아라. ‘자녀를 낳지 못한 사람들 곧 아기를 낳지 못한 배와 젖을 먹인 적이 없는 가슴이 복이 있다’고 말할 때가 올 것이다.”

기념품 가게 반대편에 있는 Aqabat al-Khanqah이라는 곳의 계단을 올라서면 상가 건너편이 제 8 지점입니다.  그리스 정교회의 St. Charalambos 수도원의 벽에는 제 8 지점 표시판과 함께 둥그런 돌 판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고 그리스어로 “IC-XC NI-KA”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그 뜻은 “예수께서 이기셨다”라는 의미입니다.

Station 9 : 예수님이 세 번째로 넘어지다 (Jesus falls the third time)

이곳의 언덕을 올라서면서 골고다의 십자가가 세워졌던 곳까지 거의 다 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로 쓰러 지셨던 곳인  제 9 지점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예수님의 무덤이 있었던 곳에 세워진 “Church of the Holy Sepulchre(예수 성묘 교회)”와 매우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Coptic 교회의 건물을 따라 나있는 좁은 골목을 따라 가면서 예수님의 무덤이 있었던 곳에 세워진 “예수 성묘 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의 북서쪽 벽을 따라 가게 되면 예수 성묘 교회로 들어 갈 수 있는 작은 초록색으로 된 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기둥에 십자가로 표시되어 있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제 9 지점입니다.

제 9 지점 옆에는 아르메니아 정교회 소속의 “St. Helen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큰 지하 물 저장소가 나오는데 이곳의 물을 사용하여 AD 4 세기의 예수 성묘 교회(Holy Sepulchre)에 물을 공급하였다고 하는 물 저장소입니다. 위의 왼쪽 사진에서 보이는 흰색 작은 기둥 옆에 있는 초록색 문을 들어서게 되면 위의 오른쪽 사진에서 보이는 모습과 같이 건물의 지붕 위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 지붕위에서 중간의 오른 쪽에 보이는 둥근 Dome 지붕은 예수님께서 달리셨다고 하는 십자가 나무가 발견되었다고 하는 “Armenian Chapel of St. Helen”의 지붕 Dome이고, 그 지붕 Dome 왼쪽으로 보이는 곳에는  “Ethiopian Church of St. Michael”의 입구가 있으며, 그 왼쪽에는 Ethiopian 승려들이 생활하고 있는 그들의 숙소가 있습니다.

(왕상 10:1~10)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솔로몬을 시험해 보기 위해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왔습니다. 스바의 여왕은 수많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향료와 보석과 금을 실은 낙타도 매우 많았습니다. 스바의 여왕은 솔로몬에게 와서 마음속에 있는 모든 생각을 솔로몬과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솔로몬은 여왕의 질문에 빠짐없이 대답해 주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스바의 여왕은 솔로몬이 매우 지혜롭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왕은 솔로몬이 지은 왕궁과 솔로몬의 식탁 위에 놓인 음식과 솔로몬의 신하들과 왕궁 관리들과 그들이 차려 입은 옷, 식탁에서 시중드는 종들의 모습, 그리고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드리는 번제를 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여왕이 솔로몬 왕에게 말했습니다. “내 나라에서 들은 왕의 업적과 지혜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군요. 거기에서는 믿을 수 없었는데, 여기에 와서 내 눈으로 보니 듣던 것보다도 더 놀랍군요. 왕의 지혜와 부유함은 내가 듣던 것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언제나 왕을 섬기면서 왕의 지혜를 들을 수 있는 왕의 백성과 신하들은 행복할 것입니다.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을 좋아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히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언제나 이스라엘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을 왕좌에 앉게 하시고 정의를 지키면서 공평하게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스바의 여왕은 솔로몬 왕에게 금 백이십 달란트 와 많은 향료와 보석을 주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에게 가져온 것보다 더 많은 향료를 가져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에티오피아(콥틱) 정교회는 마당의 계단을 통하여 들어 갈 수 있는 문이 있는 작은 교회당인데, 위 사진의 왼쪽 사진은 그 교회당에서 기도하고 있는 순례자들의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에티오피아 승려들의 모습입니다. 그곳에는 (열왕기상 10장)에 기록된 솔로몬 왕이 시바 여왕을 맞이하는 장면과 그때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벽화로 장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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