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 가야바의 집과 닭 울음 교회(Gallicantu, 베드로 통곡 교회)

St. Saviour 아르메니아 교회(Armenian Church, Caiaphas의 집)

예루살렘 성의 시온 문(Zion Gate)을 통하여 나와서 서쪽으로 약 50 m정도 가게 되면 시온 산에 있는 아르메니아 정교회당을 만나게 됩니다. 아르메니아의 기독교 전승에 의하면 이곳이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었던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이었다고 합니다.

Courtyard of the House of Caiaphas The Armenian Orthodox Church

이곳이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이었다고 하는 정확한 고고학적인 증거는 없지만, 1971년까지 진행 되었던 고고학 발굴에 의하여 이곳의 집 지하실에서 예수님 시대 당시에 그려졌다고 하는 Fresco화 그림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비잔틴 시대에는 시온 산에 여러 교회들이 세워졌었는데 그 때 세워졌던 교회당의 폐허에서 모자이크와 Fresco화 그림들이 많이 발굴되었습니다.

이러한 발굴들과 함께 가야바의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던 돌계단들도 발굴되었습니다. 이 돌계단을 다 올라가면 예수님께서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 될 때, 무서워서 도망갔던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가야바의 집에 예수님이 잡혀 갔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하여 그곳으로 갔다가 대제사장 집 하녀의 증언에 대하여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였다고 하는 곳에 이러한 사건을 기념하여 세웠던 “베드로의 닭 울음 교회”가 길 아래로 보이는 곳에 이르게 됩니다.

대 제사장 가야바의 집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던 곳에 세워졌던 교회당은 AD 7 세기에 있었던 아랍과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인하여 다른 모든 교회의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약 500년이 흐른 AD 12 세기까지 폐허로 남아 있다가 AD 14 세기가 돼서야 비로소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이었다고 알려진 곳에 아르메니아 정교회와 Saviour 수도원이 세워졌습니다.

베드로의 통곡 교회, 닭 울음 교회(Gallicantu)

시온 산 남동쪽 키드론 계곡(Kidron Valley)과 게헨나(Gehenna)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비탈길의 옆에 있는 교회당입니다. “갈리깐뚜(Galli=닭, cantu=노래하다, 울다)”라고 하는 “닭 울음” 교회, 또는 “베드로 통곡” 교회가 이 교회당입니다. 이 교회(Gallicantu)는 예수님을 고소하였던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터로 여겨지는 곳의 바로 옆에 세워졌습니다.

Assumptionist 신부들은 전통적으로 이곳이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터라고 하는 곳에 세운 “닭 울음 교회”

(마태복음 26:69~75) “베드로가 대제사장 공관 마당의 바깥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때, 어떤 여자 하인이 와서 말했습니다. “당신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그러자 베드로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라며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대문 있는 데로 나가자, 다른 여자 하인이 거기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이에요.” 또다시, 베드로는 “나는 그 사람을 모릅니다.”고 맹세를 하며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잠시 후, 서 있던 어떤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분명히 너는 그들과 한패다. 네 말씨를 보니 틀림없다.” 그러자 베드로는 저주를 하며 맹세했습니다. “나는 저 사람을 모릅니다.” 그러자 바로 닭이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지난번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 몹시 울었습니다.”

“Gallicantu”는 라틴어로 “닭이 운다.”라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3 번씩이나 예수님을 누군지 모른다고 부인 하였던 것을 기념하여 세워진 교회입니다. 이곳에는 비잔틴 시대에 “베드로가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여 그의 잘못을 회개하면서 눈물을 흘렸던 것”을 기념하여 AD 457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1010년에 무슬림들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그 후 1102년에 십자군에 의해서 교회가 같은 장소에 다시 세워졌는데 그 때 당시에 붙여진 교회의 이름이 “Gallicantu(닭 울음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1320년에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이 다시 예루살렘을 정복 했을 때 또 다시 이 교회당은 파괴되었고, 그 후 오랫동안 폐허로 변한 채 그대로 남아 있다가 1931년에 다시 재건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심문했던 대제사장인 가야바(the High Priest Caiaphas)의 집터로 여겨지는 이곳에 1931년에 프랑스 Augustinians of the Assumption 수도회가 베드로의 배반과 회개의 사건을 기념하여 교회당 “St. Pietro in Gallicantu”을 세웠습니다.

이곳에서 Assunzionisti(Augustinians of the Assumption) 수도회가 주도하여 고고학적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었습니다. 그 발굴 작업에 의하여 이곳에서 거의 완전한 히브리식 측정자와 연자 맷돌, 안 뜰, 하인들을 위한 주거 동굴과 물 저장 시설 그리고 감옥으로 사용하였던 지하 동굴들 그리고 비잔틴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많은 교회 유적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발굴되었던 지하 동굴 중의 하나는 예수님을 체포하여 가야바에게 재판을 받기 전에 예수님을 가두어 두었다고 하는 동굴로 추정되고 있는 동굴입니다.

지금 이곳은 예루살렘 성 바깥에 있지만 예수님 시대 그 당시의 이곳은 예루살렘 성 안에 위치해 있었던 곳입니다. “닭 울음 교회”가 있는 곳에서 특별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은, 위 도시(Upper City)에서 아래 도시(Lower City)로 내려가면서 키드론 계곡으로 이어지는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돌계단 길입니다. 이 돌계단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있었던 때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돌계단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나서 제자들과 함께 이 계단을 걸어 내려가 겟세마네로 기도하러 내려가셨던 계단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율법학자들과 원로(장로)들의 고발로 인하여 체포된 후에 예수님께서 이 돌계단 길을 통하여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 올라갔다고 하는 계단 길이기도 합니다.

베드로의 “닭 울음 교회”의 정문으로 가는 길옆에는,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기 위해 돌계단을 걸어서 키드론 계곡으로 내려가는 예수님의 모습과 함께 가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부조되어 있는 조각품과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신 후 돌계단으로 걸어 올라가시면서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가고 있는 모습이 부조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의 닭 울음 교회”의 4 면의 벽면 창에는 서로 다른 모자이크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 쪽의 건물 벽의 창에 있는 모자이크는 예수님을 줄에 묶어 지하 동굴로 가두는 장면들을 모자이크 그림으로 장식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면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맡기시는 장면이 모자이크되어 있습니다.

교회당 안에는 예수님의 마지막 날에 일어났었던 일들이 묘사되어 있는 성화들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중앙 제단의 후면에 있는 모자이크 벽화는 심문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모자이크되어 있고, 천정의 Dome에는 스테인 그라스를 십자가 모양으로 장식하였습니다. 천정에 스테인 그라스로 장식된 십자가의 중앙에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 놓았습니다.

중앙 현관의 문에 부조되어 있는 장면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마치고나서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부인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입구 위쪽에는 “나거나 들거나 주님께서 너를 지키신다.”(시편 121:8)는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교회당의 작은 앞마당에는 그리고 어떤 여자 아이가 베드로도 예수를 따라다니던 사람이라고 말하자, 아니라고 부인하는(누가 22:56~57) 베드로의 조각상이 서 있습니다.

(누가 22:54~62) “그들은 예수님을 체포하여 대제사장의 관사로 데리고 갔습니다. 베드로도 그들과 멀찍이 떨어져서 뒤따라갔습니다. 사람들이 정원 한가운데 불을 피우고 둘러앉았습니다. 베드로도 그들과 함께 앉았습니다. 하녀 하나가 모닥불 곁에 앉아 있는 베드로를 보고 노려보며 말했습니다. “이 사람도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 베드로가 부인하며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나는 예수를 모르오.” 조금 후에 또 다른 사람이 베드로를 보고 말했습니다. “당신도 그들과 한 패요.” 그러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나는 아니야.” 약 1시간 후에 다른 사람이 주장했습니다. “분명히 이 사람도 예수와 한 패요. 이 사람도 갈릴리 출신이니까.” 그러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오.” 베드로가 말하고 있을 때, 닭이 울었습니다. 주께서 돌아서서 베드로를 보셨습니다. 베드로는 주께서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다”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서 몹시 울었습니다.”

이 교회당에는 예수님을 가두었던 감옥이 지하에 있습니다. 제단과 신자들이 앉는 좌석들 사이의 왼쪽에 팔각형으로 만든 유리관 안에는 둥그렇게 뚫린 구멍이 있는데 이곳을 통하여 예수님을 밧줄에 묶어 아래에 있는 구덩이 감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 지하 감옥의 돌기둥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 돌기둥의 구멍에 죄인들을 쇠사슬로 묶어 놓은 후에 가두어 놓았던 것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이 지하 동굴로 안전하게 내려 갈 수 있도록 돌계단을 만들어 놓았지만, 원래는 한사람이 겨우 들어 갈 수 있는 구멍을 파서 밧줄로 죄인을 묶은 다음에 이 구멍을 통하여 지하 동굴로 내려졌던 것입니다.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문에 부조되어 있는 “예수님과 베드로”

가야바 집의 지하 감옥의 작은 입구

지하 감옥으로 내려가는 곳에 있는 작은 제단의 후면에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나서 통곡하면서 울고 있는 베드로의 모습을 모자이크로 그려 놓았습니다.

닭 울음 교회의 시간 스케줄 : 월요일~토요일 08:00~11:45 14:00~17:00 일요일은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