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독립 선언(The Declaration of the Establishment of the State of Israel)과 정착민(Aliyah)
AD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적으로 민족주의(Nationalism)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동안 심한 박해를 받아오던 러시아의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이면서 그들의 조상들이 살았던 땅인 가나안으로 돌아와 조국을 다시 세워야만 박해가 끝이 나게 될 것이라는 “시온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 데오도르 헤르첼(Theodor Herzl)이 스위스의 바젤에서 1897년 8월 29일부터 8월 31일까지 개최되었던 ZO(Zionist Organization)의 창립 대회를 계기로 하여 시작된 시온주의 운동은 정치 운동으로 주도하면서 발전시켰습니다. Theodor Herzl, 그는 유대인 나라를 다시 세우는 비전을 가진 지도자였습니다.
Theodor Herzl과 David Ben-Gurion (이스라엘의 첫 총리)
1948년 5월 14일 Tel Aviv에서 열린 제 21차 시온의 대표단 총회에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하는 David Ben-Gurion. (왼쪽)
New Jersey의 Princeton에서 Albert Einstein과 David Ben-Gurion (오른쪽)
1881년부터 시작된 Aliyah(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들어오는 유대인들)는 다섯 번에 걸쳐서 대대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924년에 시작된 4 번째 Aliyah 때에는 100,000명이 이주하여 들어오게 되었고, 제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에 영국은 당시의 군사적 기지의 역할을 맡고 있었던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의 나라를 재건할 수 있도록 하는 약속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유명한 “밸푸어 선언(the Balfour Declaration)”입니다.
1934년 Aliyah로 팔레스타인의 Ein Harod로 들어오고 있는 유대 청년들과 1899년의 Aliyah 집성촌
이 후에도 동유럽에서는 유대인들에 대한 압박이 더욱 심해져 갔고 1930년대에 와서는 독일의 히틀러의 나치즘이 등장하면서 시오니즘 운동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해 온 유대인들의 수가 약 40만 명 정도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유대인수의 증가는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과의 항쟁과 분쟁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오랫동안 자신들의 조상들이 살아왔던 땅을 지키려는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은 자신들의 땅을 되찾기 위해 게릴라전과 테러 전쟁을 펼치기 시작하였습니다.
1948년 5월 14일, 영국의 위임통치가 끝이 나고 영국군 철수가 완료되었습니다. 이 후 유대 국가건국위원회의 의장인 다비드 벤 구리온(David Ben-Gurion)이 마침내 지중해 연안에 있는 텔 아비브(Tel Aviv)에서 이스라엘(State of Israel) 건국을 선언했습니다.
“유대민족의 민족적, 역사적 권리와 국제연합의 ……. 결의에 의하여 우리들은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수립하고, 그 나라를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을 선포한다.”
이스라엘의 건국이 선언되면서 아랍 연합이 팔레스타인으로 쳐들어오면서 제 1차 중동전쟁이 시작되었고 이 전쟁은 1949년에 정전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그들의 갈등은 더욱 깊어지면서 마침내 1956년 10월 제 2차 중동전쟁(수에즈 전쟁), 1967년에 제 3차 중동전쟁(6일 전쟁)이 있었으나 모세 다얀 장군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의 승리로 마쳤습니다.
“Exodus 1947″ 이라는 표시가 보이는 Aliyah를 태운 배
이스라엘에 대하여 복수를 다짐하던 이집트 대통령인 안와르 사다트가 취임하면서 이곳에 다시 전쟁의 긴장감이 고조되었으며 1973년 10월 6일, 드디어 이집트는 유대인들의 가장 커다란 절기 중의 하나인 욤 키푸르(Yom Kippur, 속죄일)에 이스라엘을 향하여 기습공격을 함으로 제 4차 중동전쟁(10월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이집트 동맹군 중에서 비교적 약한 시리아군이 포진한 곳을 공습하면서 전쟁의 전세를 역전시켰으며, 마침내 제 4차 중동전쟁(10월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내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 또한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놀라운 속도로 전쟁의 상처를 회복하였습니다.
오랫동안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이 계속되어 왔지만 1993년에는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PLO(팔레스타인 독립기구)와 라빈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이 미국의 중재안을 받아들임으로써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가자(Gaza) 지구와 웨스트뱅크(West-Bank)에 세워지기도 하였습니다.